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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넷플릭스 <삼생삼세 십리도화> - 그렇게 완벽하지만은 않은 신선의 사랑 이야기

by 밀리멜리 2020.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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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삼생삼세 십리도화>라는 웹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넷플릭스로 보게 되었고, 너무나 푹 빠져 시청한 나머지 그날 밤 신선이 되는 꿈을 꿨다. 원작이 책이라는 말을 듣고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해 읽었는데, 그 책을 또 읽고도 드라마를 한번 더 정주행 할 만큼 좋아하는 작품이다.

 

삼생삼세 십리도화 (구글 이미지)

 

여주인공 백천과 남주인공 야화의 나이차이는 무려 구만 살이다. 수십만 년을 사는 신선들이라면 사랑도 질투도 없이 초연할 것만 같지만, 이 신선들은 마치 몇십 년밖에 못 사는 인간들처럼 뜨거운 사랑을 한다. 나는 항상 이야기의 캐릭터에 먼저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완전무결한 신선들을 가지고 어떻게 작가가 재밌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는지 궁금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이 신선이라는 캐릭터가 언듯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은 어딘가 결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인공 백천의 능력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어마어마하다. 출신부터 귀한 호제의 딸로, 무려 전쟁의 신 밑에서 수련을 받아 성장하고, 고대 상신의 보호를 받으며, 나중에는 여제가 되는 강력한 인물이다. 요즘 웹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세계관 끝판왕 먼치킨 캐릭터나 마찬가지이다.

 

백천은 능력면으로는 세계 최강이지만, 성격적으로는 몇십만 년을 살았어도 고집이 세고 까다로운 편이다. 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거칠 것이 없으며, 이 세상에 백천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고집스럽다. 이렇게 완벽하지만은 않은 그녀의 성격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가도록 만든다. 

 

백천이 사음으로 살아갈 때, 그녀는 존경하는 사부님의 시신을 들고 사라져 제자들 뿐 아니라 신선들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다. 그 이후 7만년 동안 심장에서 피를 내어 그 시신을 보존하고, 끝내는 스승님처럼 자신의 몸을 희생해 악을 봉인한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만큼 말도 안 되게 고약한 고집을 갖고 있다. 이렇게 밸런스가 맞춰지게 되고 이야기가 재밌어진다.

 

자신의 몸을 희생했기 때문에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고 사음은 인간 소소로서 살게 된다. 천족 태자인 야화를 만나 절절한 사랑을 하지만 둘의 신분 차이 때문에 그녀는 궁궐에 갇혀버리고 만다. 여기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180도 바뀌어 버린다. 자기 멋대로, 하고싶은 대로 살던 당찬 사음이 궁궐 시녀들에게까지 시달리는 연약한 인간 여자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신선계 최강의 여자가 기억을 잃고 가장 연약한 존재가 되어 괴롭힘에 못 견뎌 결국 자살해 버리는데, 여기서 오는 안타까움과 복수에 대한 카타르시스로 이야기는 점점 고조에 오른다.

 

이 사건으로 백천은 자신의 정겁을 끝내고 기억과 힘을 모두 되찾는데, 이제 속 시원한 복수극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살살 녹인다. 인간으로서의 삶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리니, 남주인공 야화와의 러브스토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백천은 기억이 없지만 야화는 사랑했던 기억을 모두 소중히 갖고 있다. 몇 백 년 동안 그 기억을 애지중지하며 그녀의 혼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까 결백등을 하루하루 지키며 견뎌내는 야화의 모습을 보면 시청자들이야말로 야화에게 사로잡혀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이후로도 백천만을 위하는 야화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야 말할 필요가 없다.

 

신선 이야기가 대중매체에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 소재 자체로 매력이 있다. 인간은 물론 어느 미물이라도 도를 쌓으면 신선이 될 수 있고, 신선이 되면 어느 국가의 제도나 황제의 권위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나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신선들이 매력적인 단점을 갖고 있지 않다면 갈등 없이 너무나 지루하게 이야기가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삼생삼세 십리도화>가 더욱 사랑을 받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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