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 반차를 내고 병원에 갔다. 중증 아토피라서 듀픽센트를 맞으며 치료받고 있고, 이제는 많이 좋아서 1년에 한 번만 병원에 가면 된다.
그렇지만 병원 한 번 가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8시 반 예약이라 8시 15분에 도착했는데, 병원을 나온 건 12시였다.
그냥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벌써 듀픽센트를 맞은 지 3년 반이 되어간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아토피가 괜찮아지기 전에는 이것만 나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랐는데, 막상 괜찮아지니 치료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까먹었다.
진료실에 들어서니 의사보다 연구원이 먼저 와서 말을 건다.
"3년 반 전에 치료 시작할 때 피부 조직이랑 혈액을 기부했었는데, 한번 더 기부해 줄 수 있나요?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혹시 부담되면 안 해도 괜찮아요."
"아... 닥터 잭 선생님은 연구 많이 하시는 거 알아서 돕고 싶긴 한데... 그럼 피부 생검이랑 혈액 채취도 오늘 다 하나요?"
"음... 맞아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럼, 할 테니까 대신 빠르게 처리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다시 직장으로 복귀해야 해서..."
"정말 고마워요! 네, 빨리 해드릴게요."
그래서 예기치 않게 피부생검을 또 했다. 잭 선생님이 와서 피부조직을 얼리는 주사를 놔주고 피부를 잘라가고, 빠르게 꿰매주었다.
나도 피부를 잘라내는 건 좀 꺼려졌는데... 그래도 선생님이 나를 받아준 덕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선생님이 재단도 연결해 줘서 비싼 신약(듀픽센트)도 재정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은혜를 받았으니 갚을 수 있으면 갚아야지.
"피부조직은 기부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에요. 치료가 된 환자의 피부조직도 연구에 필요하거든요."
"그렇군요."
"연구에 꽤 많은 진전이 있었어요. 아토피 환자의 피부에서 정상인에게는 없는 특이한 피부세포가 발견되었거든요. 이건 정말 큰 발견이에요. 신경쪽으로도 많이 연구를 하고 있어요."
"역시 아토피가 신경하고도 관련이 많은가 보죠? 저는 예를 들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팔이 마비되는 느낌이에요."
"그럴 수 있어요. 왜냐하면 아토피 환자는 신경조직이 정상인보다 더 많거든요. 아토피 때문에 신경조직이 많아지고, 그 때문에 염증이 심해지고, 또 염증 때문에 다시 신경 조직이 복잡해지고 증식해요."
"그랬군요...? 착각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피부생검 조직을 가져간 잭 선생님은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가운을 입은 채 10분, 20분, 30분을 기다려도 안 와서 화장실에 다녀 왔다. 그래도 선생님이 아직 오지 않았다. 40분쯤 되었을 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피부조직만 홀랑 가져가고, 내 진료는 안 봐주나?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났는데 55분이 되어서야 선생님이 돌아왔다.
선생님이 내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괜찮아요? 뭐가 문제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내가 너무 오랫동안 혼자 둬서 좌절스러워서 그렇지요."
잭 선생님이 자문자답을 했다. 그리곤 친절하게 다독여줘서 나는 곧 기분이 풀렸다.
저번에도 여기서 찔끔 눈물이 났었는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왜 여기만 오면 그렇지?
선생님을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 진료는 3분만에 끝이 났다.
병원에 머문 4 시간 중 3시간 반은 기다림이었다. 엌ㅋ.. 성질급한 한국사람 답답해 못견디겠다.
병원 복도에 큰 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회복한다는 건 좋은 일이야.
진짜 기적을 이루기까지 겨우 몇 걸음 남았습니다.
나도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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