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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리메이크 괜찮을까?

by 밀리멜리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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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제>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이 생소하다 느끼면서도 '혹시, 그 일본영화의 조제?'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의 리메이크작이 맞다고 한다. 리메이크작 <조제>가 지금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라는데, 원작도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원작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3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를 보게 되었다.

 

 

 

 독특한 제목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 독특한 제목으로도 눈길을 끈다. 도대체 조제는 뭐고, 로맨스 영화에 뜬금없이 호랑이는 왜 나오고, 물고기들이 왜 나온단 말인가. 주인공이 물고기자리이기라도 한건가?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감성도 감성이지만, 이 제목때문에 더 유명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 리메이크작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호랑이와 물고기를 뺀 걸까? 

 

 장애인의 삶, 터부시되는 주제

 

영화의 주인공 '조제'는 하반신 마비를 앓는 장애인이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좀 껄끄러운가? 그들의 삶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면 안될 것 같고, 조심스러워진다.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감정이 값싼 동정으로 오해받을까 싶어 아예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장애인과 눈을 마주칠까봐 외면한다. 도와주어야 할지 아닐지조차 혼란스럽고, 그런 생각을 하기 싫어져 아예 판단을 보류해버린다.

 

 

하지만 그 판단을 보류하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편견을 만들어낸다. 외면하면 할수록 조제처럼 심해로 침잠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주인공이 장애인이라는 점이 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며, 꼭 집고 넘어가야 하는 주제이고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편견에 가득차 있든,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선이든 상관 없이 일단 들여다봐야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신체가 불편하면, 그 삶은 어떻게 변하는가?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저 보통 사랑 이야기, 그냥 로맨스 영화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개성이 독특한 조제가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세상 밖으로 나오는 성장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조제와 호랑이

 

조제를 돌보는 할머니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두려워 새벽에만 산책을 한다. 하지만 조제는 그런 시선들을 별로 상관하지 않는 듯하다. 조제에게 더 중요한 것은 산책 바로 그 자체이다. 조제에게 이 산책시간은 무엇보다도 귀중하고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저 꽃, 고양이 정도를 보는 게 전부이지만, 그런 하찮은 세상조차도 조제에게는 너무나 신기하고 달콤하다.

 

누군가는 조제에 나오는 호랑이가 조제의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호랑이는 조제 그 자체이다. 야생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 중의 맹수인 호랑이처럼 조제는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제처럼 강하지만 갇혀있는 호랑이

유모차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져 넘어지더라도 조제는 산책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장애인만 찾아 폭력이나 성추행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마주치게 되더라도 조제는 물러서지 않는다. 조제는 그런 사람들을 오히려 역이용하려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맹수같은 단단함도 동물원 철장에 갇힌 신세로는 쓸모가 없다. 호랑이가 동물원에 갇힌 모습은 조제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서 집안에 갇히고, 유모차에 갇힌 신세와 비슷하다. 정신적으로는 맹수처럼 강한 사람이지만, 신체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조제는 갇힌 호랑이에 자신을 투영한다. 

 

 

 아름다운 사랑과 일방적인 희생 사이

 

남주인공 츠네오는 솔직히 말해 여자친구를 두고 바람이나 피우고 다니는 별 생각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오히려 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조제를 편견 없이 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츠네오는 그저 조제와 함께하는 시간이 재미있고 행복하며, 그녀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맛있어서 그녀와 연인이 된다. 

 

주워온 책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는 조제

조제는 책을 좋아한다. 아무 책이든 길거리에 버려져 있으면 뭐든지 주워 오고, 하도 읽어서 내용을 다 외울 지경이다. 특히나 프랑수아 사강의 책을 좋아해서 그 책에 나온 '조제'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는다. 버려진 교과서에 쓰인 어느 고등학생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를 보고 바보같다며 웃는 조제를 보고 츠네오는 조제의 세상에 푹 빠지게 된다.

 

 

프랑수아 사강의 다른 책을 찾는 조제를 위해서 중고 서점을 뒤져 절판된 책을 구해주고, 유모차에 킥보드를 달아 낮시간에 미친듯이 길거리를 달리는 것은 츠네오가 조제를 위해 해줄 수 있는 환상적인 선물이기도 하다. 츠네오가 조제를 위해 해준 것 중에 가장 사려깊은 것은 그 바보같은 고등학생을 집으로 직접 초대한 일이다. 글자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일까? 

 

장애인을 돌보는 삶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역시 장애인을 돌보는 삶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별 생각이 없는 츠네오는 그 삶이 그렇게 힘들 줄 미처 몰랐을 것이다. 당당하게 부모님께 조제를 보여드리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이를 포기하고 괴로워한다. 그 사정을 아는 츠네오의 동생이, "이제 지쳐?"라고 묻고, 정말 지쳤던 츠네오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는지 조제를 붙들고 그녀를 오랫동안 안는다. 

 

 

 조제와 물고기들 (스포일러)

 

츠네오는 부모님께 조제를 소개시키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그들은 여행을 떠난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조제를 위해 수족관을 가기로 한다. 조제가 물고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츠네오를 만나기 전까지 조제의 삶은 홀로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사는 심해어의 삶 같았고, 조제는 이 물고기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기 떄문이다. 그러나 고생해서 도착한 수족관은 닫혀 있고, 여행은 엉망이 된다.

 

조제는 수족관은 그만두고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한다. 홀로 갇혀있던 느낌으로 삶을 살아가던 조제는 이 바다여행을 기점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마치 수족관을 벗어나 바다로 향하는 물고기처럼.

 

세상 밖으로 나온 조제

결국에는 연인인 츠네오도 그녀를 떠나가지만, 조제는 호랑이처럼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자친구 없이도 잘 살아간다.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에서 담담히 고등어를 구우며 잘 먹고 잘 살아간다.

 

반면, 조제를 돌보는 것이 부담스러워 도망쳤던 츠네오는 조제가 그리워서 엉엉 운다. 그것도 재회한 옛 여자친구 앞에서... 정작 조제보다 나약한 사람은 바로 츠네오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공감을 받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바로 이 점에 있다. 사람들은 연인을 만나 사랑을 하지만, 항상 그것이 성공적이고 안정된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사랑은 실패하기 쉽고, 그래서 더욱 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패한 사랑에서도 우리는 배우는 점이 있고, 지나간 사랑도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마음 아픈 경험이지만, 그 아픔으로 인해 우리는 성장한다.

 

 

 한국영화 <조제>를 기대하며

 

막 개봉한 한국 리메이크 영화 <조제>를 아직 감상하진 못했지만, 신문기사의 리뷰나 예고편을 보니 이렇게 강한 성격의 조제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호랑이와 물고기가 정말 중요한데,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왜 제목에서 그걸 빼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주인공 역할을 맡은 남주혁의 연기가 기대된다. 그리고 한국 감독은 츠네오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도 궁금하다. 예고편을 보니 츠네오보다 성격이 더 좋은 남자로 나오는 것 같은데, 남자친구과 성격적으로 완벽하면 조제는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결점도 좀 있고 별 생각 없는 츠네오와 강하고 굳은 심지의 조제를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나는 몸이 불편해 갇혀있다시피한 장애인의 삶을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비유한 것 같아 이 작품이 특히나 좋다. 그러나 리메이크작 <조제>의 예고편을 보니 바다 대신에 수족관이 나오던데, 갇혀 있는 조제의 삶이 계속 갇혀 있을 거란 의미일까? 나는 바다가 나오는 편이 더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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