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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휩쓸리지 않는다

by 밀리멜리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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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요즘 트럼프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나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뭐가 스트레스인데?"

"있잖아, 트럼프! 그리고 뉴스들 보면 그렇지."

"나처럼 뉴스를 끊어 보든가."

"아, 그럴 수가 없어. 봐야 해."

 

트럼프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고 했다던데, 터무니없는 소리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그의 발언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의외로 크다. 사람들은 화가 난다. 정말로.

 

그런데 나는 별로 느껴지는 게 없다. 우리나라 정치도, 캐나다 정치도 잘 모르고, 솔직히 관심도 없다.

 

요즘은 더욱 그렇다. 회사에서도 큰일이 많았으니까.

 

수백억을 투자한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 직원들은 일자리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방송사에서는 취재 요청까지 왔다.

 

게다가 상사들끼리의 정치 싸움까지 직접 목격하게 됐다.

 

리더들이 싸우는 건 처음 본다.

 

통계 자료를 들고 와서 논리적인 척하지만, 그 속에 숨은 비꼬는 말투가 예술이다. 예의 바르게 칼을 휘두르는 것 같다.

 

외국어로 소통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내용 자체보다 말투나 숨겨진 의도를 더 잘 파악하게 된다.

 

어쩌면 말보다 더 많은 것이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싸움도 아닌데 뭐. 

 

이런게 철밥통 공무원 마인드인가?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내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사무실을 옮겨야 할 수도 있다는 정도다.

 

그건 좀 아쉬운데. 점심시간마다 산책하는 이 공원이 너무 예뻐서 그렇다.

 

그렇지만 다른 사무실에도 산책할 만한 곳은 있겠지, 뭐.

 

지금 사무실에 있던 동료들은 하나둘 떠나고, 이제는 로비안이라는 친구 한 명하고만 인사하고 지낸다.

 

로비안은 커뮤니케이션 쪽에 일한다. 우리 부서의 떠들썩한 소식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너네 부서 어떡하니?"

"어떡하긴.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다음 프로젝트를 해야지. 나랑 내 상사는 사무실을 옮길 수도 있다고 들었어."

"네가 여기 좀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여기 좋잖아, 조용하고."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 오늘 오후에 큰 회의가 있어서 그때 뭐가 결정날 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다 화나 있고..."

"난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서 물어본 거야."

"나도 그래. 고마워."

 

로비안이 두 번이나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변화가 올 지 아닐지 모르지만, 오면 오는거고, 아니면 말고. 더 중요한 건 사람들과 이렇게 마음을 나누는 순간인 것 같다.

 

 

찬이는 요즘 응원하는 몬트리올 하키 팀이 잘했다 못했다를 반복하면서, 이기면 소리지르며 방방 뛰고, 지면 축 늘어져 풀이 죽기도 한다. 

 

어제는 몬트리올 팀이 졌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I will not let my hockey team affect my mental health. (나는 하키 팀이 내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두지 않을 거야.) 라는 문장이 인터넷에서 핫하게 밈이 되었다.

 

찬이는 팀이 지고 나서도 "I will not let my hockey team affect my mental health."라고 중얼거리며 턱걸이를 했다. 그 말이 무색하게 입꼬리는 축 처져 있었다.

 

이미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마음은 조각 난 것 같지만, 그래도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게 중요하니까.

 

 

나도 외부의 일로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요즘은 화도 나지 않고, 걱정하거나 불안한 일도 별로 없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 끝내놓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못했다거나... 휴대폰을 너무 많이 봤다고 생각할 때 그렇다.

 

그것도 뭐 곧 방법을 찾겠지.

 

아님 말고.

 

PS. 제목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휩쓸리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 어, 한강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나도 모르게 따라한 것 같다. 주말에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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