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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AI가 감정노동을 대신할 수 있으니까 - 철학토론 이야기

by 밀리멜리 2025. 5. 11.

토요일엔 철학 토론 모임에 다녀왔다.

 

이제 자주 오다 보니 익숙한 얼굴들도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호스트인 마리오가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어서 와! 너를 보면 항상 기분이 좋아져.”

 

“나도 그래, 마리오.”

 

마리오는 약간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제 정규 멤버가 되었구나! 자리가 거의 다 찼으니까 어서 앉아.”

 

나는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양옆에 앉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왼쪽엔 인도에서 온 레일리, 오른쪽엔 동유럽 출신의 발레리. 낯선 이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설렌다.

 

 

이날의 주제는 근면성실함은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 였다.

 

한국 사람들이 진짜 근면성실하긴 하지.


한 사람이 말했다.


“그냥 앉아 있다고 해서 생산적인 건 아니잖아요.”


또 다른 누군가는, “AI 덕분에 노동시간이 줄어든 건 맞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나도 말을 보탰다.


“생산성에만 몰두하다 문제가 생긴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사람을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인적 자원’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니 쉽게 번아웃이 찾아오죠.”

 

그러면서 예전에 봤던 영화 다음 소희 이야기를 꺼냈다.

 

한 여고생이 대기업 콜센터에 실습 인턴으로 들어가는데, 해지 방어 업무를 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리고 결국 세상을 떠난 이야기다.

 

다음 소희 - 캐나다 한국 영화제

 

다음 소희 - 캐나다 한국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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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바탕의 이 영화는, 우리가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 

 

“그래서 저는 요즘 AI가 감정노동을 대신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AI는 화를 내지도 않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잖아요.”


내 말에 몇몇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날 나는 마지막 발언자였다.


그래서였을까. 토론이 끝나고 뒷풀이 이야기 시간에서 내 말이 화제가 되었다.


여러 사람이 다가와 “그 영화 제목 뭐였더라?” 하고 물었고,


제이라는 친구는 바로 영화를 검색해 보더니 “한국은 영화든 드라마든 끝내주게 잘 만드네! You guys are killing it, huh?”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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