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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몬트리올에서 프랑스어로 크로와상 사기 첫 도전기

by 밀리멜리 202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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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에서 살기 위해선 영어와 프랑스어를 둘 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이곳에서 살 때 치뤄야 할 대가인 것 같다. 몬트리올에 사는 사람들이 다 이중언어자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외국인으로서 둘 다 해야 좀 살기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로는 대충 말이 통하지만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면 퀘벡 사회에서 이방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좀 더 이곳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몬트리올 시내, 다운타운에서는 영어로 말해도 다 통하지만, 프랑스어로 말하면 더욱 더 환영받는 느낌이 있다. 아무튼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배우고 있으니, 가게에서 물건 살 때 서투른 프랑스어로라도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외국어로 말하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외국어로 물건 사기

2년 전의 일이다. 프랑스어로 처음 물건을 사기로 마음먹고, 프랑스식 빵집에 들어가 크로와상을 사기로 했다.

 

'불랑제리'라고도 부르는 빵집이 프랑스어를 연습하기 아마 가장 좋은 가게가 아닌가 싶다. 제과제빵이 발달한 프랑스의 영향인지, 빵집 점원들은 대부분 프랑스어가 모국어이기 때문이다. 가게 안에 들어가기 전, 해야 할 말을 머릿속으로 연습했다. 먼저 대본을 좀 준비해 봤다.

 

"봉쥬? 싸바비앙? (안녕하세요?)"

"쥬 부드헤 프헝 앙 크호와쌍. (크로와상 하나 주세요.)"

"메흐씨! (고마워요.)"

"쎄 뚜. (그게 다예요.)"

"본 수와레. (잘 가요 - 저녁인사)"

 

빵집 대본은 이 정도면 됐겠지? 좋아, 가서 말해보자!

 

 

이 첫 프랑스어 연습 타겟은 다운타운에 있는 '오 빵 도레'라는 빵집이었다. 이곳 빵은 그렇게 맛있진 않고 값도 비싸지만-- 아무튼 프랑스어 연습하기에는 좋겠다 싶어서 간식으로 먹을 크로와상을 하나 사기로 했다. 점원은 약간 차가워 보이는 키 큰 백인 남자였고, 나는 용기를 내어 프랑스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Bonjour)"

"안녕하세요, 뭐 필요하세요? (Bonjour, qu'est-ce que vous voulez?)"

"크로와상 하나 주세요. (Je voudrais prendre un croissant, s'il vous plaît.)"

"무슨 크로와상 줄까요, 오리지널이요? 치즈? 아몬드? 초콜렛? 미니? (Qu'est-ce que vous voulez, l'original? au fromage? aux amandes? au chocolat? le mini?)"

 

여러 종류의 크로와상

앗, 크로와상이 종류가 이렇게 많다니 당황했다. 그냥 아.. 아무거나...

 

"이거 주세요. (Celui-ci, s'il vous plaît.)"

"이거요? (Celui-là?)"

"네. (Oui.)"

 

사실 점원이 뭘 가리키는지도 모르고 그냥 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원이 또 물었다.

 

"부불레앙싹? (Vous voulez un sac?)"

 

네? 뭐...뭐라고요? 

 

지금 생각하니 웃기지만, 그땐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점원이 갈색종이봉투를 꺼내며 빵을 담아주었다. 아, 싹이 봉투라는 뜻이구나. 물건을 사면 봉투가 필요하니 '싹(sac)'은 쇼핑할 때는  필수용어다. 

 

"에, 마담? 부자베브주앙라 팍뜌? (Eh, Madame? Vous avez besoin de la facture?)"

 

팍뜌는 또 뭐야... 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점원이 알아채고 설명했다. 

 

"라 팍뜌, 르 헛수. 르 헤시트. (La facture, le reçu, le receipt.)"

 

라 팍뜌 (영수증)

라 팍뜌, 르 헛수는 퀘벡 프랑스어로 영수증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말한 마지막 단어 '헤시트'는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수증이라는 영어 단어이다. 

 

나는 헤시트라는 그 단어를 겨우 알아듣고 "위, 실부쁠레." 하고 대답을 했다. 원래 receipt는 '리시-ㅌ'처럼 발음되는데, 프랑스어가 익숙한 퀘벡 사람들은 이 영어 단어를 프랑스식으로 '헤시트!'라고 발음한다. 그 엄청난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 단어가 조금 재미나게 느껴졌다. 퀘벡 사람들이 영어단어를 얼마나 웃기게 말하는지, 이런 걸 소개하면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건 다음에 모아서 포스팅하도록 하겠다.

 

인사를 하고 빵봉투를 손에 들고 빵가게 앞을 나와 심호흡을 했다. 휴, 예상치 못한 질문이 많았어. 그래도 성공했구나.

 

한국에서도 물건을 살 때 필수 질문인 "봉투 필요하세요?", "영수증 필요하세요?"가, 이곳에서도 당연히 필수 질문일 터였다. 

 

또 하나, 이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이때의 나는 지나치게 정중한 표현을 썼다. 몬트리올에서는 슈퍼나 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과도 반말을 쓰고 친근하게 말한다. 처음 본 사이여도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하고, 일상처럼 스몰 토크를 이어간다. 가끔 그런 스몰 토크가 30분, 40분이 넘게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낯선 사람과 대화를 그렇게 오래 한다는 건 나에겐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에도, 

 

"~를 살 수 있겠습니까? (Je voudrais prendre...)"

 

라는 표현 대신에 친구에게 말하듯이,

 

"~가 필요해요. (Je prends...)"

 

라는 간단한 표현을 많이 쓴다. 너무 정중하면 오히려 어색하다.

 

내 생각엔 처음 만나는 상황이니 좀 더 정중한 표현을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방금 사용한 표현은 주로 편지에서 '귀사에서 ~해주시길 바랍니다.' 정도의 존대 표현을 쓴 셈이다.

 

선생님, 직장 상사와도 반말을 하고 이름을 부른다.

맨땅에 헤딩해서 물건을 샀고, 생각만큼 잘 흘러가진 않았지만 아무튼 이 때의 이 경험 이후로는 쉽게 프랑스어로 물건을 살 수 있다. 물론 지금도 못알아듣는 말이 많지만, 이때처럼 긴장하거나 하진 않는다. 그냥 모르면 철판깔고 다시 말해달라고 묻는다. "빠동?(Pardon?)"

 

그래서 몬트리올은 참 특별한 도시이다. 낯선 사람과는 가급적 말을 하려고 하지 않던 나도 철판 깔고 아무에게나 말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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