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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공부

안동 유교랜드와 유교 가치에 대하여

by 밀리멜리 202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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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문을 열었다는 안동의 유교랜드는 국비 430억 원의 혈세를 들여 조성된 관광단지이다. 건물도 웅장하고, 아름답게 조성된 단지를 보면 돈 정말 많이 썼다는 느낌이 든다. 

 

 

안동 유교랜드

 

문제는 이렇게 큰 비용을 들여 마련된 단지가 개장 이후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두 해동안 10억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고 하는데, 이왕 돈 들였으면 유교 가치를 전달할 만한 좋은 테마 파크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 안동 유교랜드는 무엇이 유교적인 가치인지, 자본주의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유교랜드에 전시된 스포츠카

 

유교랜드의 입구에서는 불량해 보이는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이 전시되어 있고, 유교랜드의 팻말이 붙여진 스포츠카가 전시되어 있다. 불량 청소년들은 도덕이 땅에 떨어졌음을 의미하고, 스포츠카는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를 가장 염려했던 것이 유교 사상 아니었던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상징 스포츠카를 전시해놓은 모습은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 * *

 

내가 어릴 적 가보았던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본 이황의 모습은 이와 정반대였다. 도산서원은 문경새재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겨우 넘어서야 갈 수 있었던, 산 속 깊은 곳의 고요한 서원이었다. 

 

 

도산서원

 

도산서원의 한편에는 퇴계 이황이 썼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전시물은 화려하지 않다. 이황 선생이 가지고 있었던 책들과 문구 용품, 수수한 생활 도자기가 전부였다. 놀라운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끝내 벼슬하기를 사양하고 조용히 은둔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이황 선생은 현대의 유교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에 젖은 서양인의 눈에 유교사상은 지독한 자본주의와 이기심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이기도 하는가 보다. 눈부신 경제성장, 학생들의 교육열, 코로나 19를 효과적으로 막은 한국 성공의 비밀에는 유교 사상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들은 추측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유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편협한 생각이다. 하지만 2천 년을 넘게 이어온 사상을 그저 옛날 생각이라고 치부하기엔, 유교는 우리 생활에 너무 깊이 파고들어 있다. 학생들은 윤리 시간에 유교 사상을 배우고, 서예와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많은 가족들이 제사를 지낸다.

 

한국인이라면 종교를 불문하고 유교 사상에서 피할 수가 없다. 오랫동안 남아 있던 만큼 유교는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정치와 묘하게 결합하면서 많은 부작용도 낳았다. 대학 새내기에게 인사와 예절을 강요하는 연령주의, 권위주의, 성차별, 직장의 지나친 위계질서, 과도한 제사 문화 등, 한국인이라면 어느 누가 이런 문화를 피할 수 있을까?

 

 

어느 대학의 신입생 예절 가이드. 이런 악습은, 유교 탓일까?

 

명절의 제사나 성적 갈등에서 유교 탓을 하는 것은 퇴계 이황의 삶을 생각해 볼 때, 괜히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다. 이황 스스로도 소박한 삶을 살았으니, 그 종손의 제사도 과일 몇 개, 반찬 두세 개를 올리는 간단한 방식이며 추석에는 아예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기름에 전을 부치고 반찬을 열몇 개씩 준비하는 제사는 그의 방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황의 첫째 부인은 일찍 죽고, 갑자사화로 일족이 몰살된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얻게 된 사람을 둘째 부인으로 얻었다. 그는 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해주었다고 한다. 또, 쌀밥에 든 콩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당장에 값을 치르고 사과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존경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카페에서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두고 나갔다 와도 물건이 없어지지 않는 건 아닐까?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되는 나라?

 

글쎄, 어찌 되었든 우리 사회가 유교 탓을 하고 현대의 한국 사회를 개탄해 봤자 소용이 없다. '꼰대'라는 단어가 말해주는 세대 간의 갈등이나, 남성-여성이 서로에게 갖고 있는 혐오가 해답이 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악습을 버리고 어떤 좋은 점만을 취해야 할지는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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