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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몬트리올에 처음 도착한 날, 낯선 유학생에게서 도움받은 일

by 밀리멜리 2021.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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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8년 6월, 내가 몬트리올에 갓 도착했을 때였다. 시간은 오전 11시쯤이었고, 오랜 비행과 14시간의 시차 때문에 무척 피로했다. 생소하고 북적거리는 캐나다 대도시 거리의 모습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이민 가방과 캐리어를 끌고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해 놓은 집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주소에 적힌 곳을 가보니 쓰러지기 직전의 엉망인 낡은 집이었다. 게다가 위치는 몬트리올에서 가장 번화한 술집과 바 거리가 있는 곳이어서 항상 시끄럽고, 설상가상으로 도착하자마자 벽화 축제가 한창이었다. (몬트리올에는 6월부터 9월까지 매주 축제가 있다.)

 

예약했던 집 근처의 벽화 거리 축제
사람들도 많이 몰리는 지역이었다
어딜 가나 벽화가 있다

아무튼 그 집에서는 묵을 수가 없었다. 소음 이전에 집이 너무 오래되었는지 재채기가 나고 보이진 않지만 곰팡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집 광고를 올린 사람은 이미 다른 도시로 떠났고, 집주인의 친구인 루시라는 여자애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 친구에게 이 집을 계약할 수 없다고 말하자 알겠다며 그대로 전달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당장 오늘 밤 어디서 묵어야 하지? 일단 호텔이나 에어비엔비를 예약하려고 폰으로 이리저리 찾아보는데, 설상가상으로 배터리도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때 집을 대신 소개해주었던 루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집에서는 알러지 때문에 못 있겠는데, 새 집을 찾아야 하거든. 잠깐 휴대폰 충전만 부탁할 수 있을까?"

"걱정 마. 당연하지. 우리 집 바로 옆이거든. 휴대폰도 충전하고 잠깐 쉬다가 가. 내가 짐도 옮겨줄게."

 

이런 천사가 다 있을까! 알고보니 루시도 유학생이었고, 집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해 주었다. 루시가 사는 집은 방이 다섯 개였고, 학생들이 4,5명씩 함께 살고 있는 쉐어하우스였다. 방학 시즌이라 빈 방이 있어서 루시는 원한다면 이곳에서 하룻밤 자도 된다고 흔쾌히 말해 주었다.

 

루시: 집 구할때까지 하룻 밤 자고 가도 돼!

결국 하루종일 뒤져도 적당히 묵을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에어비엔비 하나를 찾았지만 당일 예약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루시네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캐나다에 온 첫 날,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 그렇게 친절해서 다행이었다.

쉐어하우스는 루시네에서 처음 봤지만, 정말 깔끔하고 좋아 보였다. 식기 세척기와 큰 아일랜드식 카운터, 커다란 드럼 세탁기가 있는 곳이 공용 공간이었고 방도 깨끗했다. 이 집의 방 한 곳을 계약하고 싶었지만, 역시 좋은 곳은 이미 다 임자가 있었다.

 


그날 밤 늦게까지 루시와 거실에서 수다를 떨었다. 학교 이야기, 인생 이야기 등등. 루시는 프랑스 사람이지만 중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대학은 캐나다에서 다닌다고 했다. 루시의 영어가 너무 완벽해서 프랑스인이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루시는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쉐어하우스의 다른 학생들은 모두 방학이라 고향으로 돌아갔고, 루시만 학교 근처에서 사는 셈이었다. 루시는 텅 빈 쉐어하우스에 남은 것이 마치 해리 포터가 크리스마스 방학 때 혼자 기숙사에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깔끔한 쉐어하우스 거실


다음 날 아침, 집을 보러 다니기 위해 일찍 조용히 나왔다. 괜히 자고 있는 루시를 깨우고 싶진 않아서 고맙다는 인사만 남기고 나왔다. 얼마 안있어서 루시에게 답장이 왔다.

"뭐야! 차 한 잔도 안 마시고 갔어? 날 깨웠어야지. 내가 짐 옮기는 것도 도와줄 수 있는데. 우리 제대로 굿바이 인사도 못했잖아. 너무 늦게까지 자서 미안해. 네가 피곤해서 오후 한시까지 나처럼 퍼져 잘 줄 알았어! 좋은 집 구하면 나 꼭 초대해 줘야 해!"

결국 루시와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낯선 곳에 오자마자 루시처럼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루시는 그 이후로도 혼자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는데, 한국에서도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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