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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넷플릭스 다큐 - 기억의 궁전(Memory Games, 2019) 리뷰

by 밀리멜리 2021.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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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율 파이를 몇백 자리까지 외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3.1415926535... 이 무작위의 숫자들을 어떻게 몇십, 몇백 자리까지 외울 수가 있을까? 태생적으로 기억력이 좋은 사람만 가능한 게 아닐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기억의 궁전>에서는 매년 열리는 세계 기억력 챔피언십 출전자들이 나온다. 이 기억력 천재들이 어떻게 무작위 정보들을 빠르게 기억하는지, 그들이 사용하는 '기억의 궁전'이라는 자신들만의 기법을 살짝 소개한다.

 

기억의 궁전이라니! 여러 미디어에서 본 적이 있는 훈련방법이다. 미드 <멘탈리스트>나 영드 <셜록>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많은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 기억의 궁전 기법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

 

BBC <셜록>에서의 기억의 궁전

 

 기억의 궁전 원리

 

<기억의 궁전>은 세계 기억력 대회에 참가하는 네 명의 선수를 다룬다. 얀자, 요하네스, 넬슨, 사이먼이다. 이들은 모두 각각 자신만의 기억의 궁전을 갖추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자체 애니메이션으로 이 선수들의 기억의 궁전이 어떠할지 엿볼 수 있다.

 

영어로는 메모리 팰리스(Memory Palace)라고 불리는 이 기억의 궁전은 복잡해 보이지만 선수들의 설명은 모두 엇비슷하다. 숫자나 글자 알파벳에 자신이 친숙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백조는 숫자 2를 연상시킨다.

기억의 궁전에 있는 모든 인물, 가상캐릭터, 동물, 가구들은 모두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를 조합하면 기억해야 하는 숫자나 글자가 연상되는 식이다. 

 

이 영상을 보면서 나도 기억의 궁전을 시도해 봤지만 어떤 이미지와 어떤 글자를 연상시켜야할지 혼동스러웠다. 역시 쉽지가 않지만, 아마 관련 서적을 좀 더 읽어보면 더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의 궁전 기원

 

이 기억의 궁전이 처음 알려진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시인, 시모니데스의 이야기로 올라간다. 어느 신전에서 축제가 열렸고, 시모니데스가 이곳에 초대되어 시 낭송을 했다고 한다. 시모니데스는 낭송을 마치고 신전을 벗어났는데, 그 후 신전이 무너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사람들은 축제에 참석했던 시신의 신원을 알아볼 수 없어서 시모니데스를 불러왔다. 시모니데스는 각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 눈을 감고 누가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를 시각화시켰다. 이것이 기억의 궁전 기법의 탄생이다. 

 

무너진 신전에서 누가 어떤 자리에 앉았는지 떠올린 시모니데스

이 기법은 고대 그리스 시절에 크게 유행하여, 연설과 시 낭송, 철학적 담론을 외우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런 말을 듣고 나니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생각난다. 문헌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쓴 책은 하나도 없고, 모두 제자인 플라톤이 그의 말을 외웠다가 책으로 써낸 것이 다라고 한다. 플라톤도 기억의 궁전을 사용했을까?

 

 

 

 세계 기억력 챔피언십 대회

 

이 다큐멘터리가 세계 기억력 챔피언십 대회의 참가자를 다루는 만큼, 이 대회의 종목과 룰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기억력 대회의 종목은 10가지나 되는데, 선수들마다 자신의 특기가 다르다.

 

이를테면 무작위 숫자를 5분동안 500개 넘게 외운다든지, 무작위로 섞여진 카드의 순서를 외운다든지, 여러 사람의 이름과 직업, 주소, 전화번호, 좋아하는 음식 등을 외우는 종목이 있다. 각 종목에서 종합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챔피언이 된다.

 

무작위 인물의 전화번호를 외우는 선수들

대회 4관왕을 차지한 넬슨은 이전에는 기억력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넬슨의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기억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기억법 훈련을 통해 실제로 뇌가 변한다는 점이다. MRI로 기억법 선수들의 뇌를 관찰한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해마가 커진 것을 발견했다. 기억력 대회 선수들 뿐만 아니라, 도시 골목을 모두 기억하는 택시기사들의 뇌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람은 장소와 그에 얽힌 감정을 연결시켜 기억을 해내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도 기억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이다. 기억의 궁전이나 기억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1시간 26분짜리 다큐멘터리를 감상한다고 해서 바로 기억술을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이 선수들의 알짜 노하우를 간단하게 공짜로 배울 수는 없는 법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기억술에 흥미를 갖게 되고, <기억의 궁전>에 관해 찾아보고 스스로 훈련하는 동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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