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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몬트리올에서 병원가기

by 밀리멜리 202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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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에 온 지 2년이 되었는데, 처음으로 치료를 받기로 결심하고 병원을 알아보았다. 영주권이 없고 주치의도 없는 입장에서 병원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워크인 프라이벳 클리닉에 가서 예약을 했더니 한 달 후에나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 달이라니! 고맙게도 내 파트너가 대학병원의 유명한 의사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더니 1주일만에 가장 좋은 의료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아침 8시 예약이라 새벽같이 일어나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예약확인전화를 받을 때, 초진이라 병원카드를 만들어야하니 30분 일찍 오라고 해서 7시 반에 도착했다. 카드 만드는 창구의 중국계 비서는 짧고 강렬한 어조로 3분만에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내 주소를 확인할 증명서가 필요했는데, 운전면허증도 없고 여권엔 내 주소도 나오지 않아 당황했다. 다행히도 파트너가 다른 병원의 카드를 가져오라고 말해준 덕에 다른 병원의 카드를 주었더니 퍼펙트, 하고 쉽게 카드를 만들어주었다.

 

레지던트 의사가 와서 나한테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내 병력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오랫동안 대화를 했다. 의사는 너무나도 친절했고, 나에게 힘들지 않았냐, 우울증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다면 도와줄 수 있다고 하며 잘 견뎌내고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레지던트의 그 질문이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내가 신경쓰지 않던 정신건강까지 물어봐 줘서 눈물이 찡하게 나올 뻔 했다.

 

얼마 기다리다 보니 담당 교수가 다른 레지던트를 데리고 진료실로 들어왔고, 자신은 이 분야만을 연구하는 전문가이며 학생의사들에게 가르치면서 내 병에 대해 서로 배워가자고 말했다. 의사는 무척 말이 빨랐는데, 나한테 질문을 하는건지 레지던트들에게 질문을 하는건지 정신이 없었다. 

 

"이 케이스를 보면, 어디를 먼저 살펴봐야 하지?"

"저라면 림프선을 확인하겠습니다."

"정확해, 한번 누워보겠어요?"

 

하더니 림프선의 뭉친 부분을 찾아내라고 레지던트들에게 주문했다. '그레이 아나토미' 초반 시즌에서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의사들은 친절하면서도 프로페셔널했다. 모든 치료과정을 설명하고 내게 그 동의를 구하면서도 질문이 있으면 얼마든지 하라고 했다.

 

"면역 억제 치료를 한다니까 제가 과거 병력이 있어서 걱정되네요."

"아, 정말 그러네요. 면역과 의사와 협진을 해봐야겠어요."

 

하더니 피 검사가 대기시간이 늦어지는 걸 보고는 교수 본인이 직접 가서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건 아마도, 내 피 검사 결과를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동의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여하튼 교수와 15분 진료를 예상했던 나로서는 자신이 퇴근할 때까지 내 옆에서 치료과정을 설명해 주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여담이지만, 의사선생님들이 다 예쁘게 생기셨다. 프로페셔널하고 당당하게 행동해서인지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데도 멋있고 패션 센스도 좋았다. 퀘벡이 워낙 여성 파워가 큰 지역이라서 그런지, 병원 건물 자체에 일하는 사람이 여성이 더 많았다. 한국에서라면 남자의사가 많고 간호사들은 여자였던 반면, 이곳에서는 여자 의사가 더 많고 남자 간호사들도 꽤 많았다.

 

피검사를 받는 곳에서, 내 피를 뽑는 임상 간호사는 내가 뽑아야 하는 혈액채취병 개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미 다른 간호사가 혈액 채취하는걸 수어 번 실패하고 난 뒤였다. 한국에서도 혈액검사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이번 간호사도 그렇게 잘 할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피를 많이 뽑는다고? 휴우. 너 혈관도 숨어있는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만."

"미안해요, 내 혈관에서 피 뽑는게 쉬운 게 아니죠? 다른 병원 간호사들은 다 포기했어요."

"걱정 마요. 이 채취병들이 다 몇개야? 이건 연구용이구만. 연구용은 제쳐둬야지. 내 주사바늘로 널 고문하지는 않을거야. 이 치료용이 우선이고 연구용은 피 뽑든 말든 내 알바 아니야."

 

라고 말하는 간호사가 너무도 고마웠고 감동적이었다. 내 혈관을 손가락으로 몇번 만져보더니 물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물을 마시면 혈액 채취가 더 잘 될것이라고 했고, 몇 분 지나서 간호사가 바늘을 찌르고 채취병을 가져다 꼽더니 피가 잘 나오기 시작했다. 완전 프로페셔널했다.

 

그 다음, 협진을 위해 다른 방으로 갔는데, 면역과 의사는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였다. 면역과 의사 선생님은 영어로 한마디 시작하다가 곧 프랑스어로 말했기 때문에 나도 프랑스어로 말했다. 

 

"그게, 그게 한국말로 뭐였죠. 오 마이 갓! 같은 건데."

"음... 오 마이 갓은 그냥 오 마이 갓이라고 하는데요."

"아니 아니, 한국말로 하는 게 있어요. 많이는 모르지만. 요새 내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거든. 미국 드라마는 별로예요. 한국 드라마가 잘 만들어졌지."

"어떤 걸 주로 보세요?"

"있는 건 다 봐요. 음,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이것저것 검사를 다 해봅시다."

 

하더니 내가 맞을 수 있는 백신 종류를 다 설명하며 독감을 포함해 백신을 맞자고 했다. 그 중에 어떤 백신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어서 네이버에 검색해가며 대화를 해나갔다.

 

"그럼 이건 빨리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예약을 해두고요. 아, 오 마이 갓을 뭐라고 하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혹시, 아이고! 아닌가요?"

"아이고! 맞아요! 아이고!!!"

 

아이고를 말하며 면역과 의사는 엄청 즐거워했다. 

 

"자세하게 다 설명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 악수하고 싶지만 코로나때문에 힘들겠네요."

"그럼 이렇게 한국식으로 고개숙여 인사하죠."

"그래요. 고마워요. 바이!"

 

검사와 의사면담이 끝나니 거의 오후 3시였다. 비서에게 의료비를 어디서 내야할지 물어보니 주 정부 보험으로 모두 지불되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럼 다 지불되었다고요?"

"네, 특별히 내야한다고 하는 게 없으면 다 끝났어요. 처방전 가지고 약국 가면 됩니다."

 

피 검사, 엑스레이, 길었던 면담 등등 몇백달러를 예상했던 나로서는 깜짝 놀랐다. 다 무료라고?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물론 약국에 가니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 보험과 약 보험이 따로였고, 영주권이 없는 사람은 약 보험을 들 수가 없어 약값은 보험 없이 다 내야만 했다. 결국엔 몇백달러가 들었다. 아, 영주권 빨리 받았으면 좋겠다.

 

전반적으로, 병원도 깔끔했고 믿을만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너를 도와줄 방법이 있다. 네가 낫는 걸 빨리 보고싶다고 자신있게 말하던 교수님의 말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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