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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조이스에게 정의를 - 원주민이기 때문에 모욕당하고 죽은 여인

by 밀리멜리 2020.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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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스타 피드에 충격적인 영상이 하나 떴다. 예전에 잠깐 봉사활동을 하던 환경단체에서 올린 포스팅이었는데,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클릭해 보았다.

 

 

조이스에게 정의를 - 인스타 피드

 

 

한 여자가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고, 그 뒤로 신경질적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Esti d’épaisse de tabarnouche... C’est mieux mort, ça. As-tu fini de niaiser... câlisse? T’es épaisse en câlisse...», «T’as fait des mauvais choix, ma belle. Qu’est-ce qu’ils penseraient, tes enfants, de te voir comme ça? Pense à eux autres un peu... C’est meilleur pour fourrer qu’autre chose, pis on paie pour ça. Qui tu penses qui paie pour ça?»
"이 뚱뚱한 XX...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이제 걸치적거리는 거는 다 끝났어, XX? 망할 뚱뚱한 년 같으니...",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자기. 이런 니 모습을 니 애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애들을 생각해 보라고... 그런 걸 쳐먹고 탈이 났으니, 우리 세금으로 그걸 고쳐야 하잖아! 누가 널 고치기 위해서 그 세금을 낸다고 생각해?"

 

이 조이스라는 원주민 여성은 배탈이 나서 입원을 했고, 간호사들의 욕설이 페이스북의 라이브로 방송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단순 배탈로 입원한 이 여자가 '나는 너무 많은 약을 투여받은 것 같다', '나를 찾아줘, 나를 찾아줘'라는 말을 남긴 후 사망한 것이었다. 현재 이 죽음에 대해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간호사들은 이미 해고를 당한 상태이다.

 

지난 목요일에 SNS에 퍼진 이 영상은 일순 퀘벡 전역을 휩쓸었고, 토요일에 당장 '조이스에게 정의를'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시위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언론 기자회견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Ma conjointe a vécu ses derniers jours dans l’agonie entourée de gens méprisants. Les derniers mots qu’elle a entendus avant de mourir, de ceux qui étaient supposés la protéger : des insultes, l’humiliation.»
“제 부인은 생의 마지막 날을 고통과 경멸 속에 보냈습니다. 당연히 환자를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내뱉은 욕설과 모욕이, 바로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입니다."

 

이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데,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눈물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원주민에게 가해지는 제도적 차별이 이 여자를 죽였다며 집회에 참가했다. 나도 진심으로, 조이스와 같은 원주민에게 정의로운 사회가 되길 바란다.

 

나는 이곳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유학생이기 때문에, 현지인 입장에서 나는 외국인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나를 외국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Nouvelle arrivante"라고 부른다. '새로 도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병원이나 은행에 가서 신분증을 확인할 때, 내게 외국인이냐고 묻지 않고 "새로 도착한 분이시죠?" 라고 묻는다.

 

'새로 도착한 사람' 이라는 말에 나는 조금이나마 덜 외로움을 느꼈는데, 프랑스계 조상의 후손인 백인들은 퀘벡 땅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고 그에 비해 나는 '나중에 도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너나 나나 이 땅의 주인이 아니고, 원래 살던 원주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을 '오똑똔(autochtone)'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원주민 외에 이 말을 번역할 말을 딱히 찾을 수가 없다.

 

이 원주민들이 현대화된 퀘벡 땅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 힘들어 보인다. 나는 이 원주민의 역사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모른다. 다만 길거리에 있는 노숙자들은 대부분 오똑똔이다. 나는 도시 중심가에 살기 때문에 노숙자들을 자주 본다. 정말 약에 중독되어 삶이 망가진 노숙자들은 백인들이 많고, 심신 멀쩡해 보이는 오똑똔 노숙자들은 중독자도 아닌데 그냥 길거리에 서로 모여 산다. 왜 그런 거지?

 

너무나 이 주제가 민감하고 조심스럽기 때문에, 이 뉴스가 나온 오늘까지도 나는 감히 누군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다. 퀘벡 역사/가치 수업에서 백인 선생님조차 이 주제를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었고, 논란이 되고 복잡한 주제이며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설명한 것만 기억이 난다. 수업 들을 때 물어봤어야 하는데.

 

또 한 가지 오똑똔에 관해 기억나는 것은, 이곳에서 알바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였다. 이력서를 보낼 때, 항상 오똑똔인지 아닌지 체크하는 란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채용하는 회사들은 모두 그랬다. 오똑똔을 우대해서 채용하는 법이 있는 것 같았다.(정확하지는 않다) 일단 그런 규약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캐나다인들은 보통 자신들이 미국인보다는 덜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하며, 미국에서 벌어진 흑인인종차별을 비난하고 미국에서만큼이나 크게 BLM 시위를 벌였다. 캐나다 사람들이 외국 이민자들에게 누구보다도 더 친절한 것은 맞다. 이민자가 없으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정도로 이민자가 많고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날까지도 나는 인종차별을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으며, 가장 예민하게 느낀 적은 코로나 때문에 동양인을 피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게 다였다.

 

그런 캐나다에서 아직까지 원주민을 향한 제도적 차별이 남아있으며,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모욕적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일 따름이다. 아직 그 제도적 차별이라는 것이 뭔지, 이 사건이 개인을 향한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 왜 인종차별인지 더 공부해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깨우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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