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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몬트리올 사람들의 김치 사랑

by 밀리멜리 2020.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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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사랑이라니, 이것보다 국뽕이 차오르는 말은 드물겠지만. 내가 겪어본 이분들의 김치 사랑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캐나다, 특히 퀘벡 지방의 음식은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화내겠지만- 내세울 만한 게 없다. 가장 유명한 것이 퀘벡의 '푸틴'인데, 감자튀김과 치즈를 접시에 넣고 소스를 부은 것이 다이다. 무슨 맛이냐면, 감자튀김에 소스를 찍어 먹는 맛이다. 감자튀김이랑 치즈이니 맛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게 가장 내세울 만한 현지 음식이라니 조금 안타까울 정도이다.

 

몬트리올 시를 벗어나 외곽의 메이플 시럽 만드는 오두막에 가면 퀘벡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내가 맛본 것 중 가장 충격적인 음식은 설탕 타르트(tarte au sucre)였다. 설탕 타르트. 이게 음식인지 그냥 설탕 덩어리인지 모르겠다. 원래 타르트는 맛있는 거 아니였냐구! 한국 카페에서 먹던 무화과 타르트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그나마 제일 유명한 퀘벡 식당이 소고기를 스모크해 후추만 뿌려 빵에 끼워주는 식당이다. 영국이 음식 맛없기로 유명하다던데, 퀘벡도 만만치 않다.

설탕 타르트. 갈색 부분이 다 설탕이다.

전통 음식 문화가 이렇다 보니, 동양 음식점에 대한 수요가 높다. 아니, 수요가 높은 정도가 아니라 동양 음식점이 없으면 이 사람들 샌드위치랑 햄버거만 먹고 살아야 할 지경이다. 중동 음식, 인도 카레, 베트남 쌀국수와 반미 식당, 중식당, 일본식 초밥, 라면집이나 한국식당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중앙 아프리카 국가의 식당도 꽤 있지만 가본 적은 없다.

 

특히 한국식당은 영하 15도의 한겨울에도 2시간씩 줄을 서야 할 정도로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처음 이곳 친구들과 한식당에 간 날 덜덜 떨면서 줄을 섰다. 꼭... 한식당이어야 하니? 난 잘 안가서 모르는데, 현지 친구들은 왜 그 맛있는 곳을 안가냐며 의아해 했다. 집에서 먹는 한식이 더 맛있으니깐 그렇지!

 

그리고 퀘벡 사람들은 김치를 잘 아는데, 모로코에서 갓 도착한 유학생들은 김치를 몰랐다. 그 애들은 뭐, 내가 한국인이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캘리포니아 롤과 스시를 보고 너희 나라 음식 맛있다고 할 정도니 뭐... 처음엔 황당했지만 나도 모로코 음식을 모르니 그냥 그건 한국음식이 아니라 하고 웃어 넘겼다. 캘리포니아 롤이 김밥하고 비슷하게 생긴 건 맞잖아?

 

슈퍼에 가도 한국 음식이 많아 반갑다. 한국식품점 뿐만 아니라 보통 슈퍼마켓에서도 김치를 팔 정도이다. 물론 한국 식품점 김치가 싸지만, 보통 슈퍼마켓에서는 소포장해서 비싸게 파는 형식이다. 어느 날 슈퍼에서 장을 보면서 퀘벡인 부부의 대화를 엿들 수 있었다.

 

"아, 이거 김치야! 이거 사고 싶었는데 잘 골라야겠어."

"(제조일자를 확인하며) 제일 최근 거를 살까?"

"아니야, 뭘 모르네! 김치는 조금 익어야 제맛이라고. 조금 시간이 지난 걸 사서 보관해 놨다 먹어야 해. 발효 음식이라..."

 

음, 뭘 좀 잘 아시네요! 이곳에서 학교를 다닐 때, 도시락으로 항상 김치를 싸갔다. 냄새가 날까 걱정했는데, 친구들은 오히려 김치 한 조각만 먹어도 되냐며, 자기 음식과 조금씩 바꿔 먹자고 권했다. 밥 없이 먹으면 매울 텐데, 한 친구는 매일같이 나에게 고기덩이를 넘겨주며 김치와 교환했다. 한식당에서만 김치를 파는 게 아니라, 일식집에서도 김치를 팔고 심지어 비건 프랜차이즈 식당 메뉴에도 김치가 들어간다. 퀘벡 프랜차이즈 식당이 만든 김치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비건 프랜차이즈 <Copper Branch>의 김치 메뉴

그냥 김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김치를 직접 담그는 사람도 많다. 몬트리올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 김치를 어디에서 살 수 있냐는 질문에 구구절절 여러 가게들을 언급한 후에 '사먹는 것보다 만드는 게 좋을거야!' 하고 조언을 해 준다. 물론 우리처럼 많이 만들지는 않고, 배추 한두 통을 사다가 피클통에 담아 먹는다. 내 친구도, 김치를 담궈먹고 싶다며 나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나는 김치 담글 줄 모른다. 나도 사먹는데? 음, 나도 오히려 배워야 할 게 생겼군.

 

피클통에 담긴 김치 (이미지 출처: 캐나다리빙)

마지막으로, 국뽕이 좀 빠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김치 좋은 것은 알아도, 김치가 한국 것인 줄 모르는 사람들은 꽤 있다. 건강에 좋고 또 맛이 좋으니 김치에 관심을 갖지만, 김치가 어느 나라 음식인지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시아 어디 쪽 음식이겠지. 그들이 당연히 김치는 한국 것이라는 걸 알거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뻔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문화를 홍보하는 건 중요하다. 문화적 도용(cultural appropriation)이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이므로,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포스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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