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몬트리올 생활

내가 좋아하는 몬트리올 거리, 뒬루쓰

by 밀리멜리 2020. 10. 11.

반응형

몬트리올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구역을 꼽으라 한다면 누구나 올드 몬트리올을 꼽을 것이다. 다운타운 시내에서 놀다가 예쁜 풍경이 보고 싶으면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된다. 다리 하나를 사이로, 파리 시내로 건너온 느낌이 난다. 관광지로 유명하고 가깝지만, 코로나 경계가 있은 후로 발길을 끊게 되어 안타깝다.

 

올드 몬트리올 (Source: Tripsavvy)

개척시대에 옛 프랑스인들이 이곳에 건물을 짓고 모여 살았고, 그 건물들을 잘 보존해 관광지 겸 거주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보통 3~5층의 낮은 건물들이 많은데, 1층은 기념품점이나 예쁜 가게들이 있고, 그 윗층은 주민들이 산다. 이곳이 너무 예뻐서 렌트 값을 알아보았는데, 오래된 건물들이지만 시내 중심가보다 비쌌다!

 

사실 이곳은 정말 아름답지만,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산책하기엔 좋지 않다. 가게들도 너무 기념품점만 있고, 물가도 쓸데없이 비싼 관광지 중의 관광지이다. 유럽 느낌을 만끽하기엔 좋지만, 그렇게 가까운데도 잘 가지 않게 된다.


관광지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산책로를 소개하고 싶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걷다 보면, 플라토-몽루아얄 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다. 숨겨진 명소인 야외 테라스 카페 상트로폴을 기점으로 쭉 걷다보면 조용하고 예쁜 뒬루쓰(Duluth) 거리가 나온다. 내가 몬트리올에서 가장 좋아하는 거리가 뒬루쓰 거리이다.

 

카페 상트로폴 (핀터레스트)

카페 상트로폴은 엄청난 명소이다. 입구 옆으로 카페 건물이 두 세개 더 있고, 큰 테라스를 숲속처럼 꾸며 굉장히 아름답다. 사람들도 항상 북적북적하고, 자리를 찾아 앉으려면 기다려야 할 정도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하기 때문에 큰 카페가 텅 비어있다. 며칠 전 테라스를 지났더니 조금 쓸쓸한 느낌이 났다.

 

어느 겨울밤에 뒬루쓰 거리를 혼자 산책하던 때의 일이다.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나는 새로 산 스노우부츠가 조금 헐거워서 겨우 발을 옮기면서 눈길을 걷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웠는지 집집마다 예쁜 조명을 달아 장식했지만 가로등이 없어서 거리는 어두웠다. 내 옆에 긴 치마를 입고 곱슬곱슬한 긴 파마머리를 한 여자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너무 아름답고 슬펐는데, 그 순간을 어떻게든 녹음하지 않은 게 안타깝다. 노래는 굉장히 낯설었고, 영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것 같았다. 그나마 제일 비슷한 노래를 찾자면 '라 비앙 로즈'같은 선율이었는데, 목소리가 얇고도 아름다웠다.

 

이곳에 집시의 후손이 있다면 그 여자같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거리에는 나와 그 여자밖에 없었고, 나는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 노래를 계속 듣고 싶어서, 그 여자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금 뒤에서 천천히 걸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걸음이 더 느렸다. 2분 정도였을까?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 걸었다. 지금 만난다면 노래가 너무 좋다고 말을 걸 수도 있을텐데, 갓 캐나다에 도착했던 나는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에는 너무 수줍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황홀했던 순간이라, 이곳에 글이라도 남겨 기억해 놓아야겠다. 

 

이 뒬루쓰 거리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예쁘고 신기한 가게들이 많아서 구경하기에 바쁘다. 이곳으로 산책을 가면, 아프가니스탄, 알제리 음식을 파는 고급 식당 앞에서 서서 신기한 이름의 메뉴들을 구경하게 된다. 맞은편에는 올 블랙으로 인테리어한 와인 바가 있는데, 간판에는 장미가 그려져 있다. 서버들이 안에서 오픈 준비를 하느라 창문을 다 열어 놓아 내부의 바 스툴과 테이블이 다 보인다. 안에서는 유혹적인 재즈 음악이 흘러나와서, 그 노래를 더 듣고 싶어 잠시 걸음을 멈춘 적도 있다.

 

뒬루쓰 거리 (인스타그램 피드)

 

조금 더 걷다 보면 알파카 제품만을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는데, 안에서는 가게 점원이 니트를 입고 앉아서 뜨개질을 하고 있다. 그 옆엔 샛노란색 건물의 미용실이 있는데, 이 미용실은 갈 때마다 닫혀 있지만 커튼과 창문 사이에서 햇볕을 쬐며 조는 고양이를 항상 볼 수 있다. 어느 때는 한 마리, 또 다른 때는 세 마리씩 웅크려 졸고 있는 고양이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날엔 누군가 낡은 피아노를 거리에 두고 가기도 하고, 길거리에 공짜 책을 놔두기도 한다. 낡은 편의점조차도 화려한 벽화로 장식되어 있고 예술적인 감성이 넘치는 곳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