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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현지인들만 아는 몬트리올 로컬 슈퍼에서 장보기

by 밀리멜리 20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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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퍼는 집에서 조금 멀지만 똑같은 물건을 저렴하게 팔고 있다. 현지인들만 안다고 쓴 이유는 간판도 없이 낡은 건물에 슈퍼인지 뭔지조차 모를 외관 때문이다. 겉은 초라할지 몰라도 거의 100년 가까이 그 자리에 있는 슈퍼이다.

 

슈퍼 출입문

주변에 깨끗하고 넓찍한 프랜차이즈 대형 슈퍼마켓들에도 사람들이 많지만, 이곳은 은근 사람들로 넘쳐난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출입 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에 매번 밖에서 10분~20분은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다.

 

1927년부터 영업을 한 슈퍼

간판에 쓰인 Épicerie는 가게 이름이 아니라 '식료품점'이라는 뜻이다. 무려 1927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간판도 없고 건물도 낡았지만 잘 찾아보면 정말 보물상자처럼 때에 따라 엄청난 할인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과일이나 채소 같은 신선제품은 다른 슈퍼에서 주로 사지만, 이곳에서는 공산품을 주로 산다. 다른 고급 슈퍼에서는 유기농 아보카도 오일이 2만원 정도인데, 이곳에서 똑같은 제품을 12,000원에 파는 걸 보고 바로 집어왔다.

 

포스트잇에 가격표를 붙였다

슈퍼 안은 산만하고 정리가 잘 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제품만큼은 정말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이 사진 맨 윗칸에 보이는 찻잎만 해도 아마존에서 6~7달러에 팔리는 값비싼 유기농 티백들이지만 이곳에서는 3~4달러면 살 수 있다. 포스트잇에 가격표가 적혀 있는데, 그날그날 사장님 기분따라 가격을 정하는지도 모르겠다. 

 

향신료칸

여기는 향신료칸인데, 세상에 나는 이렇게 향신료 종류가 많은 줄 몰랐다. 후추를 비롯해 각종 이탈리안 시즈닝, 강황, 히말라야 소금, 오레가노, 파슬리, 바질, 정향 등등... 종류가 엄청났다. 나는 후추와 큐민, 바질, 파슬리, 칠리 페퍼를 샀다. 종류 상관없이 모두 한 통에 99센트, 900원도 안 하는 가격이다.

 

필라델피아 크림 치즈 1달러

이 날의 대박 아이템은 필라델피아 크림 치즈였다. 큰 사이즈의 크림치즈가 1달러라니! 아니, 사장님... 이거 우리 집앞 슈퍼에서 6달러던데...!!! 유통기한도 넉넉하게 남은 새 제품이었고, 아무튼 대박이라 2개 집어왔다. 집에서 먹어보니 산딸기 휘핑크림이 들어간 거라 더 맛있었다. 좀 더 사올걸...

 

샹달프 잼

샹달프 잼도 종류별로 먹어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잼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사진만 찍고 아무것도 사오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다음엔 무화과 잼을 사와봐야 겠다.

 

이 제품은 굳이 사지는 않지만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한국 김처럼 포장을 했는데 제품명이 '김미(Gimme)'라서 웃기긴 한데... 테리야끼 맛이라니 쯧. 김은 한국 김이 최고야. 이곳 사람들에게는 김이 생소하지 않은지 제품명 밑에 '유기농 해초'라고 적어놓았는데, 그러고 보니 김을 양식할 때 농약을 치지는 않을테니 정말 유기농 식품이네. (맞겠지?)

 

칠면조 햄과 치킨 햄

특이한 햄을 한번 사봤다. 왼쪽은 칠면조, 오른쪽은 치킨 햄인데 다른 햄보다 색이 하얗다. 그리고 먹어보니 맛이 별로 없어서 후회했다. 햄은 그냥 햄이 가장 좋은 것 같아.

 

웨이퍼 롤

간식으로 먹을 과자도 샀다. 롤리폴리 과자같은 웨이퍼 롤인데 속에 피넛버터나 레몬크림이 든 것이 내 입맛에는 맛있었다. 이것도 인기 제품이라 선반이 많이 비어 있다.

 

캐셔도 대부분 학생들인데, 이날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계산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줄이 줄어들지가 않았다. 알고보니 어느 남자 손님이 예쁘장한 금발머리 캐셔에게 한참동안 말을 거느라 계산줄이 길어진 것이다.

 

멀어서 잘 안들렸지만 아마도 손님이 캐셔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것 같았고, 그러고도 한참을 서로 이야기했다. 옆에서 그걸 보던 다른 캐셔가 한숨을 쉬더니 날 보고 자기한테 와서 계산하라고 손짓을 했다. 이야기하던 남자는 곧 떠났고, 캐셔 둘이 대화를 하는 것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아주 바쁘시네?"

"그러게 말야. 같이 밥 먹자는데... 괜찮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갈 꺼야?"

"글쎄, 잘 모르겠어:)"

 

라는 말을 듣자 내 물건을 계산해주던 캐셔가 "그렇다네요. 계산 줄이 늦어져서 미안해요." 하고 말했는데,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괜찮다고 하고 그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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