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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파이자 백신을 맞고 화가 난 퀘벡 할머니

by 밀리멜리 2021.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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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약을 사러 약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몬트리올에는 보통 두세개의 유명한 대형 체인 약국이 있고, 구비된 물건도 비슷비슷해서 어느 약국을 가나 비슷하다. 이날은 시내 중심의 대형 건물 안의 약국을 갔다.

 

약국 입구

출구 쪽에 무인 계산대가 있고, 복도마다 약, 의료보조기구, 위생용품, 샴푸, 염색약, 간식거리 등등이 진열되어 있다. 약사는 맨 안쪽 구석에서 간단한 상담을 하거나 처방전을 받고 약을 준비해 준다. 나는 처방약을 받으려고 약사 상담 창구에서 줄을 섰다.

 

어느 할머니가 이미 약사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약사와 이야기하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할머니의 눈가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약사에게 말했다.

 

"내 눈좀 보라구. 이걸 어떻게 해야 해?"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어요?"

"내가 토요일에 파이자 백신을 맞았어."

"그럼 토요일부터 눈이 빨갛게 되었나요?"

"그래, 그 백신을 맞고 눈이 빨갛게 되었다구.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약사는 할머니의 눈을 살펴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약사도 영문을 알 리가 없었다.

 

"의사한테는 상담해 보셨어요?"

"... 그래!"

 

할머니가 머뭇머뭇하는 대답을 보니, 병원에 가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그래!"는 거짓말인 게 분명했다. 병원에 이미 다녀왔다면 처방전을 가지고 왔을 테고,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치료가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병원에 다녀오지 않은 것은 아마 병원에 예약하고 방문하는 것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알러지 증상인 것 같아요. 이렇게 된 지 4일이 지났나요?"

"토요일에 맞았다니까!"

"네, 그래요, 그래요. 백신 속 성분에 알러지가 있었을 수도 있어요. 의사와 상담하셔야 하는데..."

"이 눈을 보라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할머니가 계속해서 역정을 냈지만 약사는 무덤덤하게 대응했다.

 

"그럼 일단 알러지 약을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약사는 핑크색 박스의 알러지 약을 가지고 왔다. 그 약을 할머니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하루에 두 번 드시면 되요. 그런데, 이 약을 드시면 잠이 올 거예요."

"뭐라고! 잠이 온다고? 난 24시간 내내 일주일 내내 잠만 자는 사람이라고! 어이가 없군. 24/7.... 잠을 자는데... 24/7!"

"아, 잠오는 약이 싫으시면 다른 걸 드릴게요."

 

하고 약사가 다른 약을 찾는 동안 할머니는 계속해서 24/7... 24/7을 중얼중얼거렸다.

 

"이건 졸리지 않은 약이에요. 이걸 먹고도 나아지지 않으면 꼭 병원에 가서 의사를 봐야 해요."

"이건 얼마야?"

"8~9달러 정도네요."

"말도 안돼! 여긴 퀘벡이라고(This is Quebec!!)!!"

 

할머니의 "This is Quebec!!"이 넓은 약국 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외국인인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겠지? 나는 약 하나에 10만원 넘게 내야 하는데...ㅠㅠ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시안인 나 대신에 퀘벡 본토 토박이가 있었어도 할머니는 그렇게 소리쳤을 테고, 아마 더 크게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사실 할머니들이 여기는 퀘벡이라며 소리치는 것은 예전에도 자주 들어본 적이 있다.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노인들은 도심 젊은이들이 영어를 쓰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영어를 쓰지 말고 프랑스어를 쓰라며 소리칠 때는 꼭 "여기는 퀘벡이야!"하는 말을 덧붙인다. 

 

아무튼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이건 참 퀘벡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겠구나 싶어 블로그에 꼭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보통 할머니 정도 나이의 노인들은 대부분 치료를 무료로 받기 때문에 알러지 약에 8,9달러를 쓰는 건 용납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할머니의 큰소리에도 약사는 지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맞아요. 여기는 퀘벡이니까 의사를 보고 오세요. 그럼 다 무료잖아요."

 

할머니는 약사의 그 말엔 대응할 말이 없었는지 흥 하고 약을 받아 돌아갔다. 약사가 다음 순서의 나를 알아보고 민망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짓고 슬그머니 첫번째 핑크색 약을 한쪽으로 밀어치웠다.

 

 

할머니가 싫어한 졸린 알러지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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