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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억 리뷰 - 꿈에서 전생을 볼 수 있다면

by 밀리멜리 2021.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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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은 언제나 그 상상력과 소재에 놀라게 된다. 처음 <개미>를 읽었을 때, 개미의 시선으로 인간 세계를 바라본다는 상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이번에 읽은 <기억>도 역시 상상력의 기발함이 돋보인다. 주인공이 꿈과 최면을 통해 자신의 전생과 소통한다는 소재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 자기 전마다 몇 챕터씩 들었다. 주인공 르네가 최면으로 전생체험을 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눈을 감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최면을 하는 기분을 즐겼는데, 그러다 잠이 들어버리는 게 문제였다. 잠이 깨어 다시 오디오북을 들어보면 내가 잠들어버린 동안 스토리가 한창 진행되어서 다시 책으로 읽어야 했다. 오디오북으로는 옴니버스식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리디셀렉트로 읽은 기억 1,2권

 

 

 내 전생은 무엇이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은 주인공 '르네'가 친구와 최면 퇴행 공연을 보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판도라의 상자'라고 불리는 이 공연에서 르네는 우연히 피험자로 선택되고, 매력적인 최면사 '오팔'의 안내에 따라 최면을 시작한다. 

 

가장 영웅적인 삶을 살았던 전생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르네는 1차 세계 대전에서 싸운 군인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생에서 르네는 영웅적으로 싸우다 죽었지만, 전쟁에서 싸운 불쾌한 경험 때문에 괴로워한다. 최면에서 깨고도 고통스러웠던 르네는 공연이 끝나고 길거리에서 칼을 휘두르는 노숙자를 상대하다 그를 죽여버린다. 정당방위였지만 살인을 했다는 두려움에 르네는 센 강에 시신을 버리고 두려움에 떤다.

 

부유한 백작부인이었던 전생

군인이었던 전생을 알아버린 탓에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한 르네는 오팔을 졸라 다른 전생체험을 한다. "평화롭고 자연사로 죽은 인생"을 선택했더니 부유한 귀족 백작부인으로 살았던 전생을 보게 된다. "쾌감의 절정을 맛보았던 전생"을 선택했더니 고대 로마 갤리선의 노예가 되어 있다. 카르타고의 습격을 받고 노예에서 해방된 그는 처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자유와 쾌락을 느낀다.

 

로마 갤리선 노예였던 전생

총 111번의 전생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가장 처음의 생을 살았던 인물을 만난다. 여유롭고 행복하며 노동을 모르고, 정신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살았던 첫번째 전생, 까마득히 오래 전에 살던 그는 누구였을까? 르네가 보는 전생은 진짜일까 아니면 그저 정신병의 증상일까? 살인을 저지른 르네의 현생은 어떻게 흘러갈까?

 

 

 

 기억과 판도라의 상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억>의 원제는 '판도라의 상자(La Boîte de Pandore)'인데, 나는 '기억'이라는 번역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인 프로메테우스를 벌주기 위해 신이 만든 여인, 판도라라는 신이 내린 축복과 아름다움, 재능을 가진 최초의 인간 여자이다. 판도라에게 주어진 신비한 상자에는 인류의 모든 불행이 담겨 있었고,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열자 노화, 질병, 기근, 전쟁 등과 같은 끔찍한 것들이 모두 이 세상으로 빠져나왔다. 상자를 급히 닫았지만 남아 있는 것은 희망 뿐이었다. 

 

상자를 여는 판도라

이 책에서 '판도라의 상자'는 주인공 르네가 전생 체험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 유람선 공연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기억'이라는 번역 후 제목이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주인공이 현생에서 역사 교사로 일하면서 인간의 삶이 기억되는 것이 중요하며, 누가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 말살형'이라는 처형방법에 대한 대목이 재미있었다. '담나티오 메모리아이'라고 불리는 이 처벌은 죄인의 사후에 죄인에 대한 기록을 모두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의 연인), 칼리굴라, 네로, 콤모모두스 등의 황제들, 이집트의 파라오 아크나톤 등이 망각의 형벌을 받았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실들이 드문드문 변형된 기억일 수도 있다는 점은,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우게 한다. 그 와중에 왕실 기록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썼다는 조선 왕조 실록이 새삼 대단스럽다. (본문 중에 조선 왕조 이야기는 없다.) 

 

주인공이 역사 교사이다 보니 스토리와 상관없이 뜬금없이 역사적 사실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간단한 역사 스토리를 엿보는 재미도 있다. 이집트 문명, 1차 세계대전, 고대 로마와 카르타고 해전, 프랑스 왕실 이야기 등 흥미롭고 찾아볼 만한 이야기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며 검색했던 이야기

 

전생을 만난다는 스토리 자체도 재밌었지만, 역사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많아서 읽으면서 구글 검색을 많이 해보았다.

 

 

1. 페르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공주, 타지 살타네

 

페르시아 타지 살타네 공주

19세기 페르시아에서 최고의 미녀로 꼽혔던 타지 살타네 공주 때문에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145명의 남자가 그녀에게 반해 프로포즈를 했고, 13명은 사랑을 이루지 못해 목숨까지 끊었다고 한다.

 

 

2. 아람어 

 

아람어는 기원전 1000년 전후부터 아라비아 반도에서 쓰인 언어로, 갈릴리 지방에서 생활했던 예수가 썼던 언어라고 한다. 현재는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 부족만이 사용한다.

 

 

3. 살바도르 달리 - 기억의 지속

 

살바도르 달리 - 기억의 지속

시계가 녹고 있는 것을 표현한 이 그림은 달리가 햇볕에 녹는 카망베르 치즈를 보고 영감을 얻어 그렸다고 한다. 기억도 시계처럼 단단하고, 무르고,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변화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기억의 지속>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대목이 본문에 나온다.

 

 

4. 크레타 조각상

 

본문 중 "크레타 문명의 조각에 등장하는 여성들처럼 딱 붙는 상의를 입고 있다"는 표현이 나와서, 크레타 조각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검색해 보았다.

 

크레타 문명 조각상

딱 붙는 게 아니라 상의를 안 입으신 것 같은데... 아무튼.

 

이외에도 이집트 쿠푸 왕의 이야기, 안토니우스와 클레오 파트라의 이야기, 로마와 카르타고 이야기 등 짤막하면서도 흥미로운 대목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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