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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2018), 더글라스(2020) - 빵 터지는 충격적 코미디

by 밀리멜리 2021.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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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즐겨 보고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즐기려면 서양문화 특유의 배경 지식을 이해하고 비꼬는 걸 즐길 수 있어야 더 웃기다. 한국인인 나는 서양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볼 때면 구글을 켜놓고 자주 정보를 검색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해도 관객들은 와하하하 자지러지게 웃는데 나만 혼자 웃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스탠드업 코미디 쇼는 볼 가치가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한 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텅 빈 무대에서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엄청난 수의 관객들을 웃겨야 한다. 혼자서 마이크만 가지고 사람들을 웃기다니, 그 자체가 너무 대단하지 않은가? 진정으로 똑똑하고 재치있는 사람들이다.

 

넷플릭스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 - 뭘 골라야 재밌을까?

최근에 들어서야 스탠드업 코미디에 입문한 나는 넷플릭스에 올라온 코미디언들을 잘 모른다. 그냥 알고리즘의 추천을 믿고 아무 정보 없이 선택하는 편인데, 최근에 봤던 공연들 중에서는 트레버 노아, 대니얼 슬로스가 재미있었고 어제 시청했던 해나 개즈비의 쇼가 뒤통수를 딱 때리는 듯한 충격을 주었다.

 

 

 코미디인지 강연인지

 

해나 개즈비의 쇼는 넷플릭스에 두 가지가 올라와 있는데, 하나는 2018년에 발표된 <나의 이야기(Nanette)>과 2020년에 발표된 <나의 더글라스(Douglas)>가 그 둘이다. 나는 최근 쇼인 나의 더글라스를 먼저 봤는데, 시작하자마자 해나 개즈비가 어떻게 알고 자신의 쇼를 보러 왔냐며 톡 쏘아 묻는다. 그냥... 그냥 클릭했는데요?

 

왜 자기의 쇼를 보러 왔냐고 묻는 해나 개즈비

알고 보니, 해나 개즈비의 '나의 이야기(2018)'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관객들은 대부분 그 쇼를 너무 좋아해서 다시 그녀를 찾은 것이었다. 나처럼 그 이전 쇼를 보지 못한 관객도 있었는데, 해나는 그 관객들에게 더욱 놀라워하며 도대체 왜? 자기 쇼를 보냐며 농담을 던진다.

 

이렇게 시작하자마자 이전 쇼를 보고 와야하나 망설여졌지만, 해나의 입담이 너무 좋아서 푹 빠져 보게 되었다. 이전 쇼를 굳이 보지 않아도 즐기는 데에는 별로 상관이 없다.

 

하지만 충격인 트라우마와 중요한 말은 이미 다 했다며, 이 쇼에서 뭘 더 기대하느냐고 퉁명스러워하지만 해나는 앞으로의 쇼가 어떻게 될지 살짝 소개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정말 웃긴 조크가 남아있다며,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웃겨서 그걸 생각해낸 날은 편히 쉬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관객의 기대치를 마음대로 높였다 낮췄다 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마지막엔 진짜 웃긴 조크가 있다

해나의 쇼는 미국인을 까는 것으로 시작한다. 트럼프나 미국을 까는 것은 스탠드업 코미디의 단골 소재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인 해나의 시각은 확실히 들을 만한 가치가 있고 무척이나 신선하다. 이 와중에 웃긴 해프닝이 발생해서 시작 5분만에 큭큭큭 하고 엄청 웃어버렸다.

 

스웨터와 월리

미국인들은 이 옷을 스웨터(Sweater)라고 부르는데, 스웨트(Sweat)는 땀이라는 뜻이다. "호주 사람들은 이걸 점퍼라고 부르는데, 땀옷이라니... 옷이 땀흡수를 하겠네요"

 

"우리는 월리(Wally)를 월리라고 부르는데, 미국 사람들만 왈도(Waldo)라고 부르죠? 왜 그러는 거예요?"

 

그러다 그녀는 여러 가지 자신의 스토리를 풀어나가며 가부장제에 대한 일침을 가한다. 계속해서 농담에 농담이 더해지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서양 예술사 강의를 듣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서양 예술사를 들을 수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라니! 그런데, 조크보다 강의가 더 재미있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일까?

 

이런 게 바로 강의죠

이 유명한 그림을 보고 웃은 적은 처음이었다. 

 

이 그림은 왜 웃길까?

해나는 여러 장의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여자 셋이 숲속에서 나체로 천을 들고 춤을 추는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이 제일 웃겼다. 왜 웃긴지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이니, 꼭 보시길 바란다.

 

 

 호불호가 갈리는 평점

 

해나 개즈비가 이런 식으로 코미디에 강연을 섞은 이유가 있다. 2018년의 쇼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맞지만, 그녀의 안티팬들도 꽤 많아졌기 때문이다.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2018)>의 구글 평점을 보면, 관객들의 열렬한 칭찬 가득한 별 다섯 개 리뷰들 중에 간간히 별 한 개짜리 혹평들이 섞여 있다.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는 별 한 개 혹평 리뷰

이런 안티팬들에 대해 해나 개즈비는 정말 쿨하게 대처한다. 그런 비난이 가득한 코멘트들은 오히려 자기 삶에 백신처럼 도움을 준다고 말하며, 안티팬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인다.

 

이렇게 웃긴 강연은 처음이야

이전 쇼가 재미없고 테드 강연 같았다고? 진짜 강연이 뭔지 보여주지!

 

 

 끝까지 보면 해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쇼 초반에 해나는 한 가지 약속을 한다. 그녀의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게 될 쯤에는 관객들이 초반보다 훨씬 더 호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시원하게 호언장담을 한다.

 

해나가 귀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더 호감이 느껴질 거라고? 처음엔 그녀의 말에 회의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역시 공연을 다 보고 나니 해나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곧이어 해나의 이전 공연인 <나의 이야기>도 단숨에 시청했고, 다 보고 나서는 충격에 멍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해나의 쇼가 몇 개 더 있었으면 싶었다.

 

해나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 독특하고 신선하다. 세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싶어 충격적이다. 이 쇼를 보다보면 해나가 왜 그렇게 독특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피카소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서양 예술사가 이렇게 재밌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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