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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임포스터 신드롬(가면증후군)과 학원의존증이 있었던 아이

by 밀리멜리 2021.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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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증후군에 대해 읽다가, 내가 학원에서 가르쳤던 어느 학생이 떠올랐다. 영특하고 사려 깊으며 성격이 밝은 아이였는데, 그 애가 다 크고 나서야 당시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이 나서 안타깝다.

 

 

 가면증후군

 

가면증후군이란, "높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공을 노력이 아닌 운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이 똑똑하거나 유능하다고 믿지 않는 현상"이다. 영어로는 임포스터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임포스터는 사기꾼을 의미하며, 자신이 그만큼 똑똑하거나 능력있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다고 믿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임포스터 신드롬 - 자신의 성취를 가짜라고 믿는 사람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어떤 사람이 가면증후군이 있다 없다 판단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가면증후군이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런 증후군은 자기 자신보다 타인이 판단하기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가면증후군의 뜻을 읽다 보니 내가 예전에 가르친 한 여학생이 생각났다. 지금은 훌쩍 커버려서 대학에도 진학하고, 외국에 나와있는 내가 보고 싶다며 가끔씩 메시지를 보내준다.

 

 

 학원에 오래 다녔으니 당연히 잘해야죠

 

내가 그 학원에서 3년을 일했지만, 그 애는 정말 학원의 터줏대감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일하기 전부터 그 학원에 다녔고, 내가 떠나고 나서도 그 학원에 계속 머물렀다. 학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수년째 계속 같은 학원에 다녔으니, 그 애가 총 몇 년을 같은 학원에 다닌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아이는 학원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반에서 공부했다. 머리가 정말 똑똑해서 중학교 1학년 때 2~3학년 언니 오빠들과 섞여 토익이나 토플, 고등학교 모의고사 등을 공부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렇게 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토플 수업이 가장 많았는데, 외국 대학 강의 수준인 토플 텍스트를 갓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에게 가르친 것이다.

 

과연 중학생에게 토플을 가르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아이들의 뇌가 말랑말랑해서인지 아이들은 어떻게든 따라왔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모르는 단어를 설명해주다 설명이 더 어려워지고, 단어 뜻을 한국어로 설명해줘도 한국어 뜻을 모르는 학생이 부지기수였으며, 대부분 아이들이 영어에 대한 노출량 자체가 부족했는데 어떻게든 꾸역꾸역 배워나갔다. 

 

아이들이 따라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던 토플 수업

그럼에도 그 아이는 어느 정도 꾸준히 토플 수업을 잘 따라왔다. 언니 오빠들에 비해서 처음엔 성적이 저조하다가 결국에는 차근차근 라이팅부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기 수준보다 어려운 공부를 해내고, 결국에는 성적이 상승한 걸 보면 보통내기가 아니다. 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도 항상 좋은 성적을 낸 것은 물론이다.

 

그 애에게 칭찬을 더 많이 해줬어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 원장은 빨리 성적을 높이라고 닦달했고, 성적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이 숙제를 많이 내줘야 했다. 토플 성적이 국제고와 자사고 입학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부담스러운 숙제를 내주었는데, 아이들은 불평하면서도 어떻게든 꼬박꼬박 숙제를 해왔다. 

 

아무튼 숙제를 잘 해오거나 성적이 올라서 칭찬을 해 주면 그 애의 반응은 다른 아이들과 사뭇 달랐다. 정말 넉살 좋고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아이들은 "아, 제가 좀 잘하죠?"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내성적인 아이들은 그냥 씩 웃거나 한다. "진짜 어려웠어요, 힘들었어요!"하고 불평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애는 "아이, 제가 학원에 오래 다녔으니 그렇죠. 잘하는 거 아니에요." 혹은, "이번엔 좀 운이 좋았네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겸손의 표시인가 싶었는데, 그 아이는 자기가 정말로 잘했다는 성취감을 느낀 적이 드물었던 것 같다. 항상 자신은 학원에 오래 다녔으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별로 잘한 게 아니예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칭찬을 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혼 없는 말로 여겼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얻어낸 성적은 오롯이 자기 자신이 이뤄낸 노력의 산물이었다. 학원의 지도가 있긴 했지만, 학원에 다닌다고 저절로 성적이 오를 리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성취조차도 학원의 덕으로 미룬 셈이다. 성취감은 귀한 쾌락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놓치다 보니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는 학원을 그만두었는데, 평생 다니던 학원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니 불안감도 컸던 것 같다.

 

결국 고등학교에 가서는 공부에 흥미를 놓아버렸고, 예전만큼의 놀라운 성적도 나오지 않았다. 자기가 잘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아이가 이제부터 시작되는 대학생활에서 재미를 찾았으면 한다. 학원이 가르쳐주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알아서 흥미가 있는 걸 알아나가는 삶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제부터는 그 아이가 재미있게 살고 원하는 일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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