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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외국에서 자라는 한국 아이들의 언어장벽

by 밀리멜리 2021.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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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은 영어와 프랑스를 둘 다 말하는 곳이다 보니, 이민 2세 아이들은 언어적으로 꽤 어려움을 겪는다. 보통 이 아이들이 언어를 접하는 상황을 정리해 보고 싶다.

 

일단, 이민 2세 아이들의 모국어는 영어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그렇듯이 몬트리올 부모들도 자식을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한다. 아무튼 영어를 잘 해야 대학도 잘 가고 더 좋은 직장을 잡는다. 아무리 두 언어를 쓰는 환경이라지만, 누구나 모국어는 있고 모국어가 아닌 언어는 좀 더 노력해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쓰는 부모들은 아이를 영어를 쓰는 유치원, 초등학교에 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모두가 영어 유치원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퀘벡에는 특이한 법이 있는데, 부모가 모두 퀘벡사람이라면 무조건 프랑스어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 중 한명이 다른 국적이거나 캐나다의 다른 지방에서 온 경우만 아이를 영어학교에 보낼 수 있다.

 

부모에게서만 한국어를 듣는 아이들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 영어 유치원과 영어학교를 보낸다. 커가면서 학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며 말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아이들이 부모가 말하는 한국어를 점점 잃어버리고 영어가 더 편해진다. 

 

"영어로 말하는 게 더 편해요!"

"한국어는 엄마아빠랑 이야기할 때만 편하고,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려면 불편해요."

 

집에서 엄마아빠와는 한국어로 말하지만, 형제자매들과는 영어로 말한다. 형제자매와는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서툰 한국어가 틀릴까봐 조바심을 느낀다는 점이다.

 

난 한국사람인데, 한국어 틀리면 어떡하지? 한국어 어색한 게 싫어! 

 

이 아이들이 더 자라서 중학교에 가면 또 더 큰 언어혼란이 온다. 중학교 친구 또래들은 다 서로 프랑스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학교를 나왔다고 해도 프랑스어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약간은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업이 아니라 친구들과 서로 어울려야 할 때 프랑스어로 말하려면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하루에 언어를 세 개나 해야 해!

 

이런 과정을 겪으며 한국어는 점점 뒷전이 된다. 그러다 한국어를 자꾸 잊어버리게 되면 '나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거야...' 하고 종종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곳뿐 아니라 이민자 가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나이스라는 친구는 부모님이 홍콩 출신인 퀘벡 사람이다. 부모가 북경어와 광둥어를 둘 다 할 수 있어서 아나이스도 두 언어를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모국어는 프랑스어이고, 직장에서 일할 땐 영어를 쓴다.

 

어느 날 친구들 여럿이서 화상전화를 하며 놀다가 누군가 아나이스에게 이건 중국어로 뭐라고 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잘 모르겠다고 말했고, 갑자기 침울해져서 자리를 떠났다.

 

함께 이야기를 하던 우리는 당황했다. 아무래도 아나이스가 가장 걱정하던 점을 자극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아나이스만 겪은 게 아니었다. 아나이스의 남자친구는 부모가 남미 출신이다. 부모님은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만 스페인어 억양이 섞여 있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거의 들어보지 못한 그는 스페인어가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다고 한다.

 

"내 스페인어는 정말 엉망이야. 배워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편한 언어로 대화하고 싶지만, 한 두마디 말고는 모두 영어로 대화한다고 한다.

 

난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지?

 

이 말을 듣던 마크도 끄덕끄덕했다. 마크는 중국-네덜란드 혼혈인데, 중국어도 네덜란드어도 자신이 없고, 나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체성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고 한다. 이민 2세라면 흔히 겪는 일인가 보다, 싶었는데 마크가 나에게 말한다.

 

"넌 한국인이니까 이런 거 모르겠지. 넌 그냥 백퍼센트 한국인이잖아!"

"그치, 난 백퍼 한국인이야. 그래서 정체성이 혼란스럽거나 한 적은 없었어. 한국에 놀러온 교포 친구들도 이런 문제로 많이 고민하고, 한국어를 잘 못해서 힘들어하더라. 하지만 정체성이 확실해도 쉬운 게 아냐. 난 일상 회화할 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나서 말해야 해! 만약에 내가 여기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애가 이런 고민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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