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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파닉스와 책읽기, 어떻게 영어를 배우는 것이 효과적일까

by 밀리멜리 202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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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이 처음 영어를 배울 때에는 학원에 가든 가정방문 선생님을 모시든 파닉스부터 시작한다. 영어강사로 일할 때, 3세부터 19세 연령의 아이들을 다 가르쳐 보았지만 가장 까다로운 수업을 꼽으라면 파닉스 수업을 꼽겠다.

 

물론 파닉스 수업은 크게 수업준비를 할 것도 없고, 영어로 말하며 아이들을 재밌게 해주면 별로 어려울 게 없다. 요즘은 영어교재가 워낙 잘 나와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2개월 정도 과정의 파닉스를 스펀지처럼 잘 흡수한다. 영어 노래를 부르고 단어를 발음하다 보면 어느새 파닉스는 자동으로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교재를 끝내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문장을 읽기 시작한다.

 

다만 까다롭다고 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계속해서 재밌게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집중력이 짧은 편이어서 이거 재밌지, 아니면 저거 재밌지 하는 식으로 몰입시켜야 하고, 또한 아이들이 눈을 못 뗄 정도로 화려하고 큰 리액션과 칭찬, 재미있는 게임 등이 필요하다.

 

선생님이 아니라 개그맨이 될 각오가 필요하다

 

 

 파닉스가 어려운 이유

 

한국어에서도 두음법칙이나 사이시옷 등 어려운 법칙들이 있지만, 그래도 한글표기법이 명확해서 단어를 보고 발음을 어떻게 하는지 헷갈릴 일은 별로 없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뛰어난 글자인지는 외국어를 배우다보면 느끼게 된다.

 

성인이 한글을 떼는 데 이틀 정도밖에 걸리지 않고, 집중공부하는 사람들은 몇시간만에 끝내거나 유튜브 영상만으로 혼자 한글을 깨우치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도 연령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한글 떼는 데 몇 주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파닉스를 떼는 데에는 한글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가 학원에서 가르쳤던 파닉스는 보통 2~3개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아이가 너무 어리거나 문장 읽는 것을 어려워하면 일년 내내 파닉스만 가르치는 경우도 흔했다. 

 

그도 그럴것이, C라는 알파벳 하나만 보더라도 '크' 소리가 난다고 배우지만, 사실 문장 안에서 C는 크/스/쓰/취/쉬 비슷한 소리를 모두 낸다. C를 k sound라고 알고 있던 아이들 입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배우는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영어에 음운규칙과 예외사항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다.

 

Wednesday가 웬즈데이라고요?! 웨드네스데이 아니예요?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배우게 되더라도 파닉스를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파닉스를 떼지 못하고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몇개월이 걸리든 일년이 넘게 걸리든 기초를 탄탄히 세우고 영어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교재만 따라하면서 배우면 금방 문장을 읽게 되는데...

 

ABC 파닉스부터 가르친 아이가 처음으로 문장을 읽는 걸 보면 정말 짜릿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다. 호들갑을 떨면서 빅 칭찬을 하면 아이들도 배시시 웃는다. 그런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런 순간들 덕분에 "이게 선생님 하는 보람이지!" 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읽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총체언어학습(Whole language)"이라는 것이 유행해, 파닉스의 비중을 줄이고 총체언어 학습을 섞어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는 모국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읽기와 쓰기를 중점적으로 가르쳐 자연스럽게 총체적으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문맹 퇴치를 위한 여러 방법

 

이 학습법에서 주로 강조하는 것은 세세한 단어 뜻에 매달리기 보다는 전체적인 맥락 파악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에서 일일이 찾기보다는 몇 가지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거침없이 읽어내려가 이야기의 주제를 파악하고 줄거리에 집중한다는 학습방법이다.

 

"He crossed the street.(그가 길을 건넜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들은 he(그)라는 단어도 알고, the street(길)라는 단어도 알지만 cross(건너다)라는 단어는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아이들이 뜻을 몰라 끙끙거리면 선생님은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되묻는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에는 길을 건너고 있는 소년이 그려져 있고, 아이들은 조금 눈치를 보다가 "길 건너는 거!"하고 대답한다. 이런 방식이 총체언어학습법이다.

 

단어를 몰라도 줄거리로 유추하며 읽어나가는 방식

 

모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방법이고, 파닉스에 억지스럽게 집착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 학습법은 지금까지도 꽤 유행하는 학습법이 되었고, 실제로 미국의 학교에서도 파닉스와 총체언어학습을 섞어 가르치고 있다.

 

 

 

 파닉스로 성적 올린 미시시피 주

 

하지만 이런 교수법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문맹률은 아직까지 심각한 상태이다. 2017년 현재 미국 성인의 48%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고 하니, 미국의 교육법은 어딘가 잘못된 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 미시시피 주는 총체언어학습법을 버리고, 파닉스 집중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전통적인 파닉스 방법을 고집한 것이긴 하지만, 파닉스에 집중한 결과는 놀라웠다.

 

미시시피는 문맹률이 높은 주이다. 초등 4학년의 학습 성취도가 50개 주 중에 49등일 정도로 아이들의 성적수준은 원래 좋지 않았다. 하지만 파닉스 집중교육을 시작한 이후 아이들의 성취도가 29위로 올라갔고, 2019년에는 유일하게 성적이 오른 주로 꼽혔다. 

 

성적이 쑥쑥 올랐대요

 

 

 

 파닉스가 더 효과적인 이유

 

단어를 유추하는 학습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파닉스가 좀 더 아이들을 똑똑하게 만든 이유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파닉스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요즘은 파닉스 책이 정말 잘 만들어져 있어 교재를 따라하고 노래를 듣고 부르기만 해도 재미있다. 선생님인 나도 아이들과 함께 노래부르며 신났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학습활동도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파닉스 시간엔 꺄르르 웃고 서로 손을 들려고 경쟁을 한다. (다만 조금 나이가 많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아이가 파닉스를 배울 땐 별로 신나하지 않아서 조금 더 힘든 경우가 있었다.)

 

그렇지만 단어를 유추하려면 재미가 떨어진다. 한창 흥미로운 이야기책을 읽고 있는데, 주인공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빨리 봐야겠는데, 모르는 단어가 나와 흐름이 끊겨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선생님은 바로 딱딱 정답을 주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에게 맞춰보라고 한다.

 

이 꼬부랑글씨가 뭔지 맞춰야 한다니! 힌트도 별로 없는데... 한창 생각하다 어거지로 답을 맞추게 되어도 별로 신나지도 않다. 그러다 무슨 이야기책을 읽고 있었는지 이야기도 까먹게 되고, 흥미가 뚝 떨어진다. 오히려 이야기가 없는 파닉스보다 이야기가 있는 책이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느 학습방식이든 장단점이 있겠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아이가 즐거워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단어를 유추하는 방식은 머리를 좀 더 써야하지만, 아이가 집중력이 좋고 흥미있어 한다면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아이의 표정을 잘 관찰하자. 어느 방법이든 아이가 웃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재미있는 게 더 기억에 잘 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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