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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영화 동주(2016) - 맑은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와 삶

by 밀리멜리 202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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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삶과 그의 친구 독립운동과 송몽규의 삶을 함께 그린 흑백영화이다. 흑백 느낌이 더 큰 여운을 주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며 인상깊게 남은 장면을 몇 가지 추려보고 싶다.

 

 

 맑은 시어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름다운 화면과 함께 배우가 윤동주의 싯구를 읊는 장면이다. 그의 시가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윤동주가 죽는 장면이나 고통받는 장면이 아닌, 담담한 목소리로 그의 시가 낭독되는 순간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시는 여러 편이 있는데, '흰 그림자', '참회록', '눈 감고 간다', '병원', '별 헤는 밤', '아우의 인상화', '쉽게 쓰여진 시', '사랑스런 추억', '바람이 불어', '새로운 길', '자화상', '서시'가 있다.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 모금에서
하루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 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육첩방은 남의 나라

 

 

 형무소와 학생 시절을 교차 반복

 

영화는 처음부터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본어로 혹독한 심문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심문받는 윤동주 시인

윤동주 시인은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고 해방되기 겨우 6개월 전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런 형무소의 심문 장면과 윤동주의 고향이었던 북간도의 모습, 일본 유학 시절이 시간 순서와 관계없이 교차 편집되어 보여진다. 윤동주 시인은 혈액 대체제를 찾는 생체실험에 이용되어, 정체 모를 주사를 맞고 29세의 나이에 숨을 거둔다. 그의 생애를 생각해보면 이 심문장면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중, 제국주의 압박과 창씨개명 요구가 점점 거세진다. 당시 많은 문학인들이 친일파로 변절을 했지만, 단 한 번도 변절을 한 적 없던 윤동주 시인은 살기 위해 '히라누마 도주'로 창씨개명을 한다. '도주'는 동주의 일본식 발음으로, 억지로 이 이름을 써서 일본 대학에 유학하고 도항 증명서를 발급받지만 그 이름을 싫어하고 자신을 평생 '윤동주'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참회록'은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하기 바로 닷새 전 쓴 시이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독립운동가 송몽규

 

영화 동주에서는 그의 친구이자 사촌형이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삶도 영화 속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고향 친구인 윤동주와 송몽규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더 열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윤동주와 함께 문학을 공부하던 그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최후에는 윤동주와 같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역시 정체 모를 주사를 맞고 숨을 거둔다. 

 

연희전문학교의 송몽규

민족주의 교육을 하던 연희전문학교에도 점점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가 들어오고, 학교 대표로 상장을 받은 송몽규는 '일본 대동아'라는 문구를 보고 크게 노하며 이런 상장은 필요없다고 찢어버린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영화 속에서는 윤동주가 존경하는 릿쿄 대학의 교수의 딸인 '쿠미'가 윤동주 시집 출판을 돕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쿠미는 영화 속 허구의 인물이라고 한다. 영화 말미에 쿠미가 시집의 제목이 무엇이냐고 묻고,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대답한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바라본 밤하늘

그 장면을 끝으로 윤동주는 투옥되고, 모진 옥중 생활을 하다 건강이 허약해져 결국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마지막에는 그가 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화면에서 형무소 창살 사이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장면이 전환되며, 유명한 '서시'가 나레이션으로 낭독된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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