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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새들과 춤을(2019) - 너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면...

by 밀리멜리 2021.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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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성격이 한결같아서, 한번 정한 마음은 바꾸지 않지"라는 대사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래도 모든 새가 그럴까 의문이 든다. 

 

새들도 새들 나름이지 않겠는가. 새들이 상대의 마음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새들과 춤을'에서 본 새들의 구애활동은 아름답고도 재미있으며, 귀여우면서도 존경심이 들 정도이다.

 

암컷 앞에서 춤추는 수컷 새

다큐멘터리 '새들과 춤을'은 남태평양 뉴기니 섬의 새들을 보여준다. 뉴기니 섬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먹이가 풍부하고 큰 포식자가 없다. 등 따시고 배 부르고 무서울 게 없으니 새들은 자연스럽게 구애활동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우리 주변에서 보는 새들은 암수 비슷하게 생긴 것이 비해, 뉴기니의 새들은 수컷이 압도적으로 화려하다. 대부분 암컷 새는 수수한 갈색이나 나무색인데, 수컷 새는 색깔이 알록달록하면서도 선명하다. 검은 깃털은 벨벳같이 부드러워 보이고, 푸른 깃털은 어떻게 자연에서 이런 예쁜 색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나레이션이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한 마디를 한다.

 

"가장 매력적인 새만이 구애활동에 성공한다." 

 

어깨털의 용도?

수 년간, 이 새가 거추장스러운 어깨털을 왜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생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뉴기니 섬의 새들은, 생존이 별로 우선 사항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신경쓰고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새가 거추장스러운 어깨털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춤을 출 때 우아하고 윤기나는 털을 모아 최대한 아름다운 형태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새들은 털을 한껏 단장하고 백날이고 천날이고 춤 연습만 한다. 이 새가 밟고 서 있는 나뭇가지는 이 근방에서 유일하게 암컷 관객의 눈에 잘 띌 수 있는 최적의 스테이지다. 영상을 실제로 보면 이 새가 하늘하늘 유혹하듯이 춤을 추는데, 역시 베테랑이구나 할 정도로 움직임이 유연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어린 수컷이 나타나 베테랑 새가 잠시 스테이지를 비운 사이 몰래 춤을 따라하며 연습한다. 이 어린 수컷은 털갈이를 다 마치지 않아서 그런지 어깨털도 보잘것없고 깃털도 윤기가 없어 푸석푸석하다. 암컷 새 중에 누구도 이 푸석푸석한 어린 새에게 관심이 없을 게 분명하지만, 주인이 자리를 비운 동안 열심히 이 춤을 따라한다.

 

글쎄, 몇 분 연습하지도 못했는데 다시 스테이지의 주인 베테랑 새가 돌아왔다. 베테랑 새는 "에잉! 어디 어른 연습하는 곳에서 감히 춤을 춰? 썩 물러나거라" 하듯 어린 수컷을 위협하며 내쫓는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어쩌면 인간 같기도 해서 유심히 보게 된다. 인간도 상대의 마음을 구하기 위해 별 짓을 다하니 말이다. 새들의 기준은 수컷의 아름다움 단 하나뿐이지만, 인간의 기준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재력, 성품, 문화, 상황 여러가지가 더 복잡할 뿐이라는 점이 다르다.

 

1미터 넘는 구조물을 만든 맥그레거 새

이 새는 확실히 건축 기술과 예술 감각이 뛰어나다. 항상 이 구조물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뭇가지를 모아 1m넘게 쌓고, 나무 진액이나 열매, 꽃으로 트리 장식하듯 구조물을 장식한다. 자두 진액으로 한참 장식을 하다, 장식이 너무 과한 것 같으면 빼버릴 정도의 디테일한 예술적 감각을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맥그레거 새는 성대모사의 달인이다. 구조물을 파헤치는 멧돼지에게 같은 멧돼지 소리를 내고, 개 짖는 소리를 내어 멧돼지를 쫓아내버린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나,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를 모두 정확하게 흉내낼 수 있다. 

 

암컷이 구조물에 관심을 갖고 근처에 앉으면, 맥그레거는 구조물 사이에 두고 암컷과 숨바꼭질을 하며 놀기 시작한다. 알콩달콩한 숨바꼭질이 끝나면, 지금까지 연습해왔던 성대모사 레파토리를 멋지게 개인기를 선보이고, 그러다 노란 깃털을 부풀려 춤을 추면서 공연을 한다. 물론 새 입장에서는 절박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지만, 이 장면을 화면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이 춤이 얼마나 웃긴지, 직접 보시기를 권한다.

 

정신없이 춤추는 새

새들이 도구를 이용한다는 점도 놀랍다. 어떤 새는 춤과 화려한 깃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예쁜 파란 열매를 입에 물고 춤을 춘다.

 

파란 열매를 물고 유혹하는 새

이 새들 중에서도 위대한 쇼맨이라고 불리는 새가 있다. 바로 카롤라여왕극락조인데, 이 새는 공연장을 청소하고, 관객석까지 예쁘게 이끼로 장식한다. 암컷이 오면 9개의 정해진 춤을 추는데, 그걸 어떻게 다 연습하고 기억해서 똑같이 추는지 감탄이 나온다. 카롤라 새가 6번째 춤까지 추자 암컷이 큰 관심을 보이고, 그러자 주변의 다른 수컷들이 질투를 해서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한다.

 

한창 암컷을 위해 춤을 추려는데 옆에서 시끄럽게 방해를 하니, 모두가 정신이 사나워진다. 결국 수컷 카롤라 새는 춤을 잠시 멈추고, 나뭇잎을 가져와 입에 물고 공연장을 천천히 걷는다. 누가 보스인지 보여주는 셈이다. 정말 놀랍게도, 다른 수컷들은 이 나뭇잎을 보고 저 멀리 도망가버린다.

 

어이, 여긴 내 무대입니다. 잡상인 사절!

새들은 이 나뭇잎이 무슨 경찰 뱃지인 것처럼 반응한다. 한껏 질투하던 수컷들이 떠나자 카롤라 새는 계속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런 장면도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새들의 행동이 인간과 닮아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닮아있는 모습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이 장면을 꼽고 싶다. 

 

이 다큐멘터리는 51분 정도인데, 보는 내내 귀엽기도 하고 웃겨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새들이 이렇게 웃길 줄이야... 이 다큐멘터리가 "고양이용 뽀로로"라고 불릴 정도로 고양이들이 좋아한다던데, 사람들이 봐도 재밌고 웃기다. 그렇지만 그렇게 웃긴 새들의 행동이 인간과 별다른 점이 없다는 것도 역시 흥미롭다. 유전자가 종족의 보존을 위해서 하는 일들은 정말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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