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몬트리올 생활

캐나다 병원에서 폐기능 테스트 받은 후기

by 밀리멜리 2021. 5. 8.

반응형

어제는 병원에 다녀왔다. 4달 전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내 원래 담당 의사 선생님이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호흡기 전문 의사를 연결해 준 것이다. 1시간동안 원격 진료를 받고, 알러지 처방을 해준 뒤 폐기능 검사를 예약했다.

 

예약은 아침 9시였고, 아침 8시 20분쯤에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오늘 병원 예약이죠?"

"네, 맞아요. 지금 나가는 중이에요."

"아니아니, 아니예요. 오늘 오지 마세요."

"네? 오지 말라고요?"

"우리 병원 스태프가 부족해서 그러니, 다음주에 다시 예약을 하세요."

"아..."

"알겠죠? 오늘 오지 말고, 다음주에 여기로 연락해서 다시 예약하세요. 굿바이!"

 

마스크까지 다 챙기고 준비 완료했건만, 다급하게 병원 비서는 연락을 끊었다. 평소라면 좀 기분이 나빴겠지만, 사실 병원 가기 귀찮기도 했고, 코로나 때문에 병원 스태프들이 가뜩이나 힘들텐데 그러려니 하고 다시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어제 병원에 다녀왔다. 입구에 들어서니 경비가 파란색 새 마스크를 주고 원래 쓰고있던 마스크는 버리라고 말했다. 처음 온 병원이라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었더니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동양인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백신 맞으러 왔어요?"

"아뇨. 다른 검사 때문에 왔어요. 백신 맞으러 온 거예요?"

"네, 오늘이 두번째 접종이에요."

"그래요? 백신 맞으니 어때요?"

"별 거 없어요. 파이자 맞았는데, 아무렇지도 않더라구요."

"다행이네요. 아스트라제네카는 부작용 때문에 말이 많던데..."

"이전에 뉴스에 난 아스트라제네카 때문에 사망한 환자 말이죠? 그 사람은 알고보니 백신에 알러지가 있었대요. 저는 백신 종류 상관없이 대체로 다 괜찮을 거라 생각해요."

"그랬군요. 이제 저는 이쪽으로 갈게요. 굿럭!"

"잘가요!"

 

본인은 파이자 맞았으니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모르겠다.

 

 

예약 종이에 적힌 장소로 왔더니, 비서가 폐기능 검사실이 바뀌었다고 안내해주었다. 쭉 가다가 두번째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돌라고... 그 말을 들으니 중학교 영어 듣기평가 1번문제가 생각이 난다. 요즘도 길안내 문제가 있을까? 

 

펙셀 이미지

대기하고 있으니 곧 의사가 와서 몇가지 질문을 하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본 적 있냐는 질문에 한번도 없다고 했더니 의사가 놀라는 눈치였다. 음... 아무래도 폐활량 테스트이니, 코로나를 앓은 환자들이 이 테스트를 많이 받은 걸까? 사실 오래 전부터 나는 이 테스트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담당의가 한국에서 온 나의 의료 기록이 하나도 없으니 테스트를 시킨 것 같다.

 

검사는 45분가량 걸린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총 30분정도가 걸렸다. 아마도 검사받는 사람이 의사의 지시대로 잘 따르면 빠르게 끝나고, 숨이 약해서 못 따라하면 검사도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투명 부스 안에 폐기능 측정 테스트 기계가 있었고, 나는 부스 안에 앉아서 코를 막고 테스트를 시작했다.

 

"안녕, 나는 산드라예요. 이제 테스트를 할 텐데 제 말을 듣고 따라하세요. 푸시! 하면 숨을 크게 내쉬고, 풀! 하면 들이마시는 거예요."

 

입에 기계를 물고 있어서 나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엄지손가락으로 따봉을 했다.

 

"원래대로 숨쉬고, 숨쉬고, 크게, 크게, 슈퍼 크게 들이마셨다가 푸시!!!"

 

숨을 탁 뱉었는데 산드라는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얼굴을 했다. 

 

"너무 약해요. 한번 더 해보죠. 숨을 탁 뱉는 게 아니라 카아아악!!!!! 뱉는거예요. 제일 세게! 위까지 짜내서!"

 

카아아아악!!!

 

산드라가 마스크를 벗고 다른 쪽을 보며 숨을 내뱉는 시범을 보였다. 그대로 따라했더니 이번엔 좋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이 숨 뱉기가 폐활량 테스트에서 가장 힘들었다. 두어번 숨을 내뱉다 보니 꽤나 힘들어서 그냥 빨리 끝내버려야겠다 싶어서 젖먹던 힘을 다 냈다. 숨 뱉을 때 내 얼굴 표정이 참 웃겼을 것 같다.

 

다른 방에서도 다른 사람이 똑같은 폐활량 테스트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의 "원, 투, 쓰리 푸시!!!!" 에 맞춰서 쾅 소리가 났는데, 아마도 환자가 숨을 못뱉으니 의사가 함께 발을 굴러서 힘줘서 뱉으라고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다.

 

20분쯤 테스트를 하고 나니 손도 저리고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숨 쉬고 내뱉고 숨 참고를 반복하다가, 숨을 참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살짝 숨을 내뱉어 버렸다.

 

"내가 숨 참으라고 했는데 왜 뱉었어요?"

 

산드라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물었다. 근데 뱉고 싶어서 뱉은 게 아닌데... 산드라는 검사 내내 프로페셔널하고 친절했는데, 이 때 딱 한번 짜증을 냈다. 테스트하면서 의사의 지시를 어기면 다시 해야 하니 그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숨을 왜 뱉었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다시 잘 해보겠다고 하니 산드라는 다시 친절해졌다.

 

"거의 끝났어요. 지금 기분이 어때요?"

"어... 몸이 약해진 기분이에요."

"머리가 어질어질하죠? (light-headed?)"

"아 맞아요, 네."

"원래 테스트 하면 그래요.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니 걱정 마요."

 

어질어질하다는 게 영어로는 light-headed구나, 하고 영어 단어를 하나 또 배웠다. dizzy도 어지럽다라는 뜻이 있지만, 흔히 말하는 '당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몸이 축 늘어질 땐 light-headed라는 단어가 더 맞는 것 같다.

 

"다 끝났어요, 수고했어요. 2주 후에 전화하면 결과를 알려줄 거예요. 잘가요, 바이!"

"고마워요, 바이!"

 

나는 멍한 채로 검사실을 나왔다. 끝난 건가?

그냥 가면 되나 싶어서 좀 서성거렸는데 역시 그냥 끝난 거였다. 후기도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