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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

사생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작품은 감상하지 말아야 할까?

by 밀리멜리 2021.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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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갈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길을 걷다 보니 더워져서 잠시 서점에 들렀다. 집에 아직 다 읽지 못하고 모셔놓은 책이 몇 권 있어서, 오늘은 책 사지 말고 구경만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집에 있는 거 다 읽고 책을 사야지! (그러나 그 다짐은 왜 항상 지켜지지 않는가 모르겠다)

 

요즘은 무슨 책이 인기있으려나 궁금했는데, 1층 가장 큰 코너에 전시된 <Educated>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 Educated

 

타라 웨스트오버의 에듀케이티드... 배움의 발견... 어디서 들어봤더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책인데,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어디서 들어봤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빌 게이츠 다큐멘터리에서 빌 게이츠가 이 책을 추천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빌 게이츠가 추천하는 책이라면 괜찮겠지, 게다가 제목도 'Educated'라니, 제목이 멋있구나 생각해서 기억에 남아 있다. 빌 게이츠 다큐를 보고 포스팅한 기억이 난다. (포스팅한 글: 인사이드 빌 게이츠 - 빌 게이츠의 두뇌는 어떻게 돌아갈까?)

 

다큐 안에서 그는 일주일에 수십 권씩 책을 읽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물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재단활동을 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불륜으로 이혼한 빌 게이츠

 

그러나 얼마 전 있었던 불륜 스캔들 이후로는 빌 게이츠를 언급하기가 망설여진다. 불륜 스캔들 전이라면 별 생각 없이 무조건 빌 게이츠가 추천한 책을 사서 읽었을 텐데, 지금은 아무래도 고민하게 된다는 점이 웃기다. 또한 빌 게이츠가 쓴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도 이전엔 서점에서 가장 큰 코너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불륜 스캔들로 이혼한 게이츠 부부

 

다큐 안에서 자선활동 부분을 보면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의 역할이 대단하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세심한 자선활동은 불가능했을 정도로 멜린다가 재단을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불륜으로 이혼이라니! 그것도 2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야 이혼을 발표했다니,

 

다큐를 보고 계속 빌 게이츠를 좋게 보고 있던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니, 그 다큐 찍을 때 이미 이혼 준비하고 있던 거잖아!

 

그렇지만 불륜 사건으로 이 사람이 쌓은 업적과 공헌까지 폄하되어야 할까? 물론 멜린다 게이츠가 큰 역할을 했지만, 빌 게이츠가 없었다면 그 정도 규모의 엄청난 사업은 역시 불가능했을 것이다.

 

 

 범죄와 광기, 그리고 예술

 

어떤 사람의 업적을 평가할 때 그의 사생활을 함께 봐야 할까? 이 질문은 명쾌한 답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답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질문이 더욱 재미있다.

 

예를 들어, 친일파 문인의 책을 읽어도 좋을까? 이광수, 서정주의 작품은 한국 문학의 보배로 여겨지지만, 그들의 친일 행적은 종종 묻혀진다. 나라를 뺏은 일본을 찬양하고, 민족을 배반한 사람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친일파 문인이라 하니 김동인의 <광염소나타>가 떠오른다. 광염소나타는 어느 천재 작곡가가 주인공인데, 그가 방화를 저지르고 나서 작곡을 하면 엄청난 걸작이 탄생한다는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의 광기, 범죄를 용인해 주어야 할까? 김동인은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이런 천재를 사회 윤리 때문에 말살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불지른 후 걸작을 만들어내는 음악가 이야기, 광염소나타

 

피카소는 또 어떤가?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 유명한 작품을 남기고 입체파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유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피카소는 작품을 그리기 전에 자신을 따르는 여성들을 유린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피카소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은 이런 작품들을 전시해도 될 것인지, 어떤 것은 전시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 묻어두어야 할지, 그 기준은 무엇일지 사람들에게 되묻는다. 만 여 점이 넘는 그의 작품들 중에는 엄청난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이 많지만, 그것이 범죄 행위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피카소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렇게 논란이 되는 주제는 다들 할 말이 많아서 재미있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걸작을 남긴 예술가의 작품이 범죄 행위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사실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름다운 작품과 추한 스캔들을 동시에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욕의 역사도 역사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이 간다.

 

스캔들을 일으킨 예술가들은 의외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아름다운 작품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고,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게 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 칭한다면, 그것이 곧 추한 것이라는 노자의 말을 알 것도 같다. 

 

어느 한 사람을 성급하게 우상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알고는 있지만 깨닫기가 힘들다. 아무래도 빌 게이츠가 그 점을 톡톡히 알려준 것은 사실이다. 돈 많고 똑똑하며 자선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도 성급하게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아무튼 서점에 갔다 여러 생각이 드는데, 결국에는 그가 추천한 <Educated>를 샀다. 읽다 만 책들과 함께 이 책도 잘 끝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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