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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가 난장판이 된 이유

by 밀리멜리 2020.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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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시기 전에 경고합니다. 에놀라 홈즈를 재밌게 보고 싶으시다면 제 리뷰를 읽지 말아주세요. 저는 이 영화에 불만이 아주 많거든요. 스포도 있습니다.

 

1. 시도때도 없이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관객에게 이야기를 하는 에놀라

 

'제 4의 벽'이라고도 불리는 이 연출기법은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영화 내내 에놀라가 관객에게 눈짓을 하거나 구구절절 설명을 하는데, 그때마다 몰입이 깨져 영화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었다. 플롯이 가뜩이나 탄탄하지도 않은데, 자꾸 제 4의 벽을 깨고 나와 너무 부담스러웠다. 제발, 나한테 말 좀 그만 걸어줄래? - 이러한 연출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마블 시리즈의 <데드풀> 영화에서 데드풀이 수트를 입고 관객에게 쏘아붙이는 장면은 코믹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건 데드풀이니 가능한 것이다. 그는 세계관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히어로니까.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하지만 이건 아니다. 넌 밀리 바비 브라운이잖아. <기묘한 이야기>의 일레븐이잖아.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가 메가히트를 치고 여주인공 밀리 바비 브라운은 이제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 일레븐의 아이코닉한 얼굴로 자꾸 관객에게 말을 거니, '아, 지금 저 애가 연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2. 영국스럽고 더 영국스럽다. 영국 시리즈들의 오마주?

 

영국 국뽕 영화라고나 할까? 물론,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예술작품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부러울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 많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영화와 티비 시리즈를 다 섞어서 오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셜록 이야기이니 <BBC 셜록> 시리즈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BBC 셜록, 그 셜록이 단서를 관찰할 때 카메라가 슬로우 모션에서 패스트 모션으로 넘어가는 연출기법은 굉장히 상징적이고 유명하다.

 

<에놀라 홈즈>에서도 단 한번, 셜록 홈즈가 단서를 찾는 장면을 <BBC 셜록>처럼 묘사한다. 이 때 또 몰입이 깨진다. 내가 영화가 아니라 BBC 셜록을 보고 있었나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또, 기차에서 튜크스베리 자작을 만나는 장면은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행 급행열차 장면을 생각나게 하고, 빅토리안 드레스를 입고 바람부는 들판을 거니는 장면은 <오만과 편견>을 연상시킨다. 그 외에도, <다운튼 애비>, <피키 블라인더스>, <핑거 스미스> 등 영국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많다 보니 이야기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원래 빅토리안 시대가 다 그저 그랬다고, 원래 비슷하다고 하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그치만, 그런 영국냄새 풍기는 작품들이 생각나는 걸 나도 어떡하란 말인가?

 

3. 이 영화, 장르가 뭐야?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로맨스?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정말 뜬금없다고 느낄 정도로 갑자기 가족간의 사랑과 가족드라마가 강조된다.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는 여성 투표권을 위해 직접 활동하는 여성 운동가이다. 딸에게 사생활을 방해받기 싫어하고, 결국에 자신의 신념을 위해 딸을 버릴 정도로 냉정한 유도리아. 그런 유도리아가 딸과 하하 호호 웃으며 수업을 한다는 건 어쩐지 동떨어져 보인다. 갑분, 모녀간의 사랑. 

 

미스터리에 집중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 영화를 미스터리라고 구분해 놓았지만, 미스터리 없는 미스터리 영화도 있나? 철자 바꿔 낱말을 맞추는 애너그램 정도가 미스터리이다. 에놀라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은 추리가 아니라 거의 우연에 의존하다시피 한다. 에놀라가 직접 추리해서 단서를 찾아야 에놀라의 똑똑함이 빛나는데, 멍청해 보이는 정원사가 저쪽 숲에 가면 단서가 있다고 대놓고 얘기해 준다. 에놀라는 그냥 생각없이 찾아가기만 해서 범인을 찾아내었다.

 

머리싸움하는 장면을 더 보여줬으면....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정말 갑자기 액션씬이 나온다. 킬러가 나올 때마다 갑자기 아슬아슬한 액션신이 전개되는데, 하필 관객들이 한창 미스터리 두뇌게임을 하겠구나 하는 기대에 가득 차 있을 때 쓸데없이 액션이 나온다.

 

19세기 여성 참정권을 부르짖는 페미니스트 영화인가? 음? 그런 얘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근데 애초에 빅토리아 시대 여성이 폭탄과 총을 들고 정치운동을 한다고?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내가 좀 이상한 건가? 영국 역사를 좀 공부해 봐야 겠다.

 

로맨스. 제일 플롯이 약한 부분이다. 자작과 에놀라가 함께 한 시간은 채 이틀도 되지 않고, 서로 모험을 하는 와중에도 케미스트리가 터지지 않는다. 그냥 친한 친구같은데, 마지막에 꽃을 주며 손에 키스를 한다. 자작 얼굴이 매우 잘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로맨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둘이 대체 언제 반한 건데?

 

4. 개연성 부족 - 범인 스포 해도 되나요?

 

범인이 정말 말도 안되는 인물이다. 그냥 스포 하겠다. 어차피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다. 자작의 할머니가 바로 자신의 아들을 죽였고, 손자까지 죽이려 한다. 범행 동기는 투표권 개혁을 막기 위해서이다. 투표권 개혁하는 게 싫어서 자기 아들과 손자를 죽이는 사람이 있나? 말이 안된다. 아무리 미친 시대였다지만, 정치 신념을 위해서 자기 아들과 손자를 죽이는 여자가 어디 있을까? 백 번 양보해서 정말 이 할머니가 미쳤다고 치자. 그럼 그 광기를 미리 보여주어 복선으로 깔아줘야 한다. 정신 멀쩡한데 자기 아들과 손자를 죽일 수가 있나?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하다. 

 

5. 홈즈 캐릭터 부수기

 

홈즈의 이름을 갖다 써놓고, 홈즈를 망가뜨리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건 정말 이 영화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이다. 셜록 홈즈는 원래 빼빼 말랐고, 오만하며 까다롭다. <에놀라 홈즈>에서의 셜록은 근육질 빵빵, 당장이라도 미스터 코리아에 나갈 만한 몸매를 갖고 있으며, 여동생에게 다정하며 부드럽다. 이런 건 괜찮다. 누구나 자신만의 홈즈를 가질 수 있으니까.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이렇게 다른 건 인정한다.

 

내가 충격에 휩싸일 정도로 싫어했던 장면은 따로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셜록은 자작 실종 사건을 두고 여느때처럼 추리로 이를 풀어낸다. 하지만 여동생 에놀라가 자기보다 먼저 사건을 풀어내 셜록은 놀라고, 여동생을 기특해하며 씩 웃는다. 

 

이게 제일 엉터리인 장면이다. 우선, 셜록 홈즈의 세계관에서 셜록 홈즈가 사건 해결에 뒤쳐지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 셜록 홈즈 세계관에서는 셜록 홈즈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고, 여동생의 행보를 다 예상하고 있어야 하는 인물이다. 페미니스트 운동이고 자시고, 나중에 만들어진 캐릭터인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보다 똑똑할 수가 없다. 있어서는 안 되는 장면이다.

 

정말 백 번 양보해 셜록이 에놀라에게 추리력으로 졌다고 치자. 진짜 많이 양보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셜록은 충격을 먹고 질투가 나서 끙끙 앓든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든, 누군가가 자기보다 추리력이 좋다는 걸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오만함의 덩어리인 셜록이, 그걸 인정한다고? 그것도 기특해서 씩 웃는다고? 셜록이라면 여동생을 돌봐주기야 하겠지만,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할 캐릭터는 아니다.

 

내 동생이 나보다 먼저 사건을 풀었다니! 허허허.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에놀라 홈즈>는 원작 <셜록 홈즈 시리즈>의 팬픽 영화인 셈이다. 그렇다면 팬픽 캐릭터가 오리지널 캐릭터를 붕괴시켜서는 안되는 법이다. 이런 캐릭터를 '메리 수(Mary Sue)'라고 하는데, 2차 창작 캐릭터가 너무도 강한 나머지 오리지널 캐릭터, 세계관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캐릭터가 나오면, 원작 팬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이 초대형 슈퍼스타들이다. <기묘한 이야기>의 히로인, 밀리 바비 브라운도 그렇고, 셜록을 연기한 <위쳐>의 주인공 헨리 카빌, 영원한 영국의 국민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는 말할 것도 없다. 초대형 거물들만 모아 연기했기 때문에, 이 배우들을 좋아한다면 또 잘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 자작을 연기한 배우는 신인인 것 같은데 잘생겼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대박 배우들을 가지고 이렇게밖에 만들 수 없나 싶었던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안다. 이 영화를 유쾌하게 보고 내 리뷰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넷플릭스, 좀 더 분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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