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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 -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by 밀리멜리 2020.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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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 저녁식사를 하면서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시청했다. 한 마디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영화가 아니라 10편짜리 시리즈로 보고 싶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면 되겠다. 나는 가볍게 시작했다가 4편까지 쉬지 않고 봐 버렸고, 밥그릇을 설거지통에 넣는 걸 까먹어 버렸다.

 

1. 눈이 즐거운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 (넷플릭스 이미지)

 

 

일단, 예쁜 애가 예쁜 도시에서 예쁜 옷 입고 예쁜 남자를 만나니 눈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주인공 릴리 콜린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연기를 너무 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영국 태생이었는데, 미국밖의 세상을 잘 모르는 미국인을 완벽한 미국 발음으로 잘 표현한 것 같다.

 

파리의 도시 풍경도 예쁘다. 에펠탑, 미슐랭 식당, 파리의 풍경이 보이는 다락방 숙소, 동네 빵집, 한적한 공원, 센 강, 야외 테라스의 카페 등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어차피 여행도 못가는데, 에밀리가 파리를 배경으로 셀카 찍을 때마다 나도 찍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에밀리의 패션도 볼만한데, 프렌치 시크의 느낌과는 거리가 먼 화려한 드레스를 자주 입고 나온다. 마케팅 회사의 파견 직원 치고는 너무 과한 패션이 아닌가 싶지만, 예쁘니까 됐다. 이왕 과하게 입는 거, 제대로 과하게 입는 게 좋다.

 

2. 낯선 문화를 경험해보는 에피소드

보다 보면, 파리 사람들 정말 저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과장한 면이 있다. 나는 파리 문화를 아무것도 모르지만, 파리 사람이 보면 좀 기분 나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집세고 오만한 파리지앵들의 성격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이 드라마를 본 파리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정말 기분 나빠할까, 아니면 파리지앵은 원래 그래, 하고 끄덕일까.

 

파리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처음 다른 나라에 왔을 때 경험하는 충격이나, 공감 가는 장면이 많다. 파리에 막 도착한 에밀리는, 오자마자 초코빵을 사러 동네 빵집에 들른다.

 

 

그렇게 발음하는 게 아니라구, 앙!

 

영어식 억양으로, '운 판 오 쇼콜라트!" 라고 말하는 에밀리에게, "앙! '운'이 아니라, '앙'하고 발음하는 거야."라고 빵집 주인이 발음을 고쳐준다. 하지만 발음 지적에도 에밀리는 하나도 동요하지 않고, 자기 할 일 하며 관심이 없다.

 

다시 빵집 주인이 "Ça sera tout?" (더 주문할 건 없니?) 라고 묻지만, 못 알아들은 에밀리는 가볍게 그녀를 무시한다. "1유로 40센트야." 라고 말하자 에밀리는 동전들을 세지도 않고 우르르 쏟아내고,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 빵집 주인은 거기서 동전을 세어내며 말한다. "말이 안 통하는군." 에밀리가 이 말을 듣지 못한 건 물론이다.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퀘벡에서 처음 빵집에 들어가 프랑스어로 주문했을 때의 내가 에밀리와 다르지 않았다. 나도 에밀리처럼  초코빵을 샀는데, 혹시나 못알아들을까봐서 '앙 쇼콜라틴!"을 강조해서 앙!하며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빵집 주인이 웃으며 '윈 쇼콜라틴!"이라며 고쳐주는 것이 아닌가. 아하, 내가 잘못 말했구나. 다음 빵집 주인이 이 시리즈처럼 정확하게 "Ça sera tout?" (더 주문할 건 없니?)" 라고 물었지만, 하나도 못 알아들은 나는 그냥 빙구같이 웃었다. 캐셔기에 떠 있는 숫자를 보고 다급하게 동전을 꺼냈지만, 동전을 몰라서 헤매고 있자 나에게 동전을 그냥 쏟으라고 했다. 물론 그 말도 못 알아 들었지만, 동전 가득한 내 손을 가져다 하나하나 동전을 집어 발음해가며 계산을 마쳤다. 아기들 숫자 가르치듯, 25, 50, 75, 1달러, 1달러 25. 하면서.

 

에밀리처럼 못 알아들으면 무시하고, 당당하게 행동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내 발음이 이상할까 걱정했고 잘못 말할까 봐 너무 걱정을 했다. 내 앞에서 궁시렁대든 말든, 하나하나 작은 지적에 상처 받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곧 배워나갈 테니까.

 

여하튼, 그 이후 동전을 배워 딱 맞게 가져온 다음, 같은 빵을 사러 그 빵집에 갔더니 다른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나는 배운 대로 '윈 쇼콜라틴'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또 웃으면서 '앙 빵 오 쇼콜라?"하며 또 고쳐주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이 빵집 점원은 프랑스계 이민자였고, 이 초코빵을 프랑스 사람들은 '빵오쇼콜라'라고 부르고, 퀘벡 사람들은 '쇼콜라틴'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로 자기가 맞다고 싸운다. 아직까지도, 난 잘 모르겠다. 퀘벡에 사니 퀘벡 사람들 하는 대로 '쇼콜라틴'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퀘벡에 사는 프랑스인들은 내가 쇼콜라틴 말만 꺼내도 '빵오쇼콜라'라고 고쳐준다. 참 내, 둘 다 초코빵이면 초코빵이지 어휴.

 

 

초코빵! (위키피디아 이미지)

 

 

 

 

3. 주눅들지 않는 에밀리

프랑스어를 못하는 에밀리를 보며 파리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저 당돌하고 무식한 미국 아가씨를 어쩌면 좋아...' 하는 느낌이다. 열심히 일하고, 성공에서 보람을 느끼는 에밀리를 보고 '삶을 즐길 줄도 모르는 미국 애'라며 무시하고, 에밀리를 다시 미국으로 쫓아내고 싶어 안달하는 상사도 있다. 이 때문에 직장의 파리지앵들에게 무시당하고 소외당하지만, 에밀리는 자신의 능력을 선보여 점점 인정받게 된다.

 

사실, 마케팅 회사에서 선보이는 에밀리의 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 게다가 운도 좋다 - 무인도에 던져놓아도 혼자서 잘 살아올 것 같다. 회사에서 일하지 않고 혼자 창업하면 금방 백만장자 되실 것 같은 정도이다. 에밀리가 좌절할 만한 큰 갈등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에밀리가 다른 사람들의 무시와 소외에 크게 상처 받지 않는 멘탈갑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에밀리의 발랄한 성격이 돋보이고 보는 사람 마음 졸이지 않아 가볍게 볼 수 있다.

 

4. 잘생긴 이웃집 남자

 

아랫집 남자, 가브리엘 (출처: 플립보드)

 

말이 필요한가? 에밀리의 주변에 많은 남자들이 꼬이는데, 일단 내 픽은 아랫집 남자 가브리엘이다. 하지만 사실 누구와 이어질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에밀리가 이끄는 대로 느긋하게 즐기면 된다.

 

5. 마치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가벼운 로맨스 코미디를 즐기고 싶다면 정말 좋다. 너무 심각하지 않게, 명랑하고 예쁜 주인공이 문화충격을 겪고 성장하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면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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