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전 만들기로 다짐하고 호기롭게 재료를 사 왔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나는 부침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데, 남친은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사온 재료를 꺼내서 정리하려니까, 그가 말한다.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내가 다 할게."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셰프."
"저기 가서 앉아서 책을 읽든지 하세요."
"아, 그래도 내가 재료라도 다듬을게!"
요리는 항상 남친 담당이다. 항상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데, 내가 주방에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불편하다나... 그래도 부추전은 처음 해보는 요리인데 혼자 하도록 다 맡기기 미안해서 부추, 마늘, 할라페뇨를 씻고 다듬었다.
"그럼 하나하나 깨끗하게 씻어야 해."
"알겠습니다. 내 요리실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야채 씻는 것도 못할까 봐?"
"으흐흐, 고마워!"
정말 요 몇 달간 남친의 요리실력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칼질도 잘하고, 불 조절도 잘한다. 덕분에 요즘은 먹는 재미가 있다.
새우는 자기가 손질하겠다며 가져갔는데, 정말 순식간에 껍질 제거를 빠르게 했다.
"오, 새우 벌써 다 손질했어? 엄청 빠르네."
"당연하지. 내가 버리는 부분 최소화하고 엄청 정성들여 빠르게 손질했다고. 마늘도 간 마늘 필요 없다니까, 나 칼질 잘해. 마늘이랑 할라페뇨 진짜 잘 썬다."
요리하는 사람에게 칭찬 세례를 해주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한번 띄워주면 한없이 올라가려고 해서 ㅋㅋㅋ 자화자찬이 펼쳐진다.
이제 부침가루와 물만 넣으면 되는데...
"이 정도면 되겠지? 어때?"
눈대중으로 재료를 넣고 뒤적뒤적 섞더니 그가 반죽그릇을 보여준다. 보여준다고 해서 내가 알 리 없지만...
"괜찮아 보이는데?"
"부침가루가 좀 적어 보이기는 하는데... 여기 흰건 다 마늘이거든."
"오.. 그럼 마늘이 좀 많아 보이기는 하다."
"마늘 많을수록 맛있어. 부쳐보자."
"자 먹어봐. 첫 판이라 뒤집기 무서워서 조그맣게 만들었어."
"우와, 냄새도 너무 좋고 맛있겠다! 잠깐 나 부추전 사진 좀 먼저 찍자."
사진을 찍겠다니까 옆에 초간장까지 곁들여준다. 처음으로 만든 부추전 맛은 정말 좋았다.
"오, 대박! 진짜 맛있는데?! 새우 덕분에 진짜 고급진 맛 난다."
"정말? 내가 마트에서 새우 제일 좋은 걸로 고른 거야."
"역시 고른 보람이 있네! 이제 이걸로 한식 레스토랑 내도 되겠다. 몬트리올 완전 꽉 잡겠는데?"
"그렇단 말이지~ 😁😁"
첫번째 부추전이 성공한 덕분인지, 남친은 자신감이 붙어서 이번엔 크게 반죽을 둘렀다.
"이거 봐, 이거 봐, 나 플립해서 뒤집는다!"
하더니 훌쩍 부침개가 뒤집혔다. 뭐야?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해?
"오.... 👏👏👏👏 손목의 스냅을 잘 이용하는군."
"그렇지, 그렇지. 근데 그 말 어디선가 들어본 말인데?"
"노라조의 '카레'에 나오는 말이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거라~' 하는 가사가 있어. 요새 내 애창곡인 거 알지?"
"그럼, 다음엔 카레 해먹어야겠다."
"내가 카레가 먹고 싶다는 말은 아닌데..."
금세 두 번째 판이 잘 익었다. 첫번째보다 더 바삭바삭 노릇노릇한 것이 꽤 그럴싸했다.
"와, 두번째 판 더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잘했네. 그 새 성장했다니."
"자, 얼른 먹어 봐. 맛있지, 맛있지?"
"진짜, 진짜, 엄청 맛있어"
"잘됐다. 난 요리 잘하는 남자 친구가 되고 싶어."
"오, 그게 소원이라면 벌써 이루어졌으니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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