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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영화 클래식을 보다가 수박이 먹고 싶어졌다

by 밀리멜리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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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래식에 나오는 음악들이 참 좋은데, 노래를 듣다가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설레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한국 옛날 로맨스 영화!!! 연애 분위기 나는 영화인데, 샹(남친)에게 클래식 같이 보겠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샹, 클래식 같이 볼래?"

"네~에↘"

 

이 '네에↘'는 음을 올렸다가 끝에서 축 쳐지는 소리인데, 절대로 긍정의 의미가 아니고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어의 No(노우)가 변형되어 Nah(나아)가 된 것인데, 가끔씩 샹은 이 Nah를 더 변형해서 '네에'라고 발음한다. (구글에 nah라고 치면 발음이 나온다. nah 구글검색결과)

 

Nah... (네에↘)

"클래식 영화 이미 봤어?"

"군대에서 봤어."

"왓더... 그럼 나 혼자 본다."

 

한참 나 혼자서 보다가 영화에서 원두막 씬이 나왔다. 난 이 장면이 황순원의 소나기 같아서 너무 좋단 말이지.

 

영화 클래식

이 장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샹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

 

"오, 수박이네. 역시 수박은 저렇게 쪼개서 먹어야 해. 아, 집에서 쪼개면 수박물 너무 튀겠다. 집에서는 끈적끈적해져."

"맞아, 맞아."

"이 영화에 수박이 나오다니, 클래식 대박이다. 평점 10점 줘야겠어."

"너 영화 안본다고 하지 않았어?"

 

샹은 대답할 생각은 않고 계속 수박찬양을 해댄다.

 

"수박이 나왔으니까 이 영화는 별점 다섯개 만점이야. 퍼펙트!"

"뭐 기준이 그래? 첨에는 안본다며 ㅋㅋㅋ 평론가는 영 안되겠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이거든. 수박 너무 좋아. 저렇게 원두막에서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

"난 바다에서 해수욕하고 먹는 수박이 제일 맛있던데. 있잖아, 바다에서 수영하고 나면 입이 엄청 짜잖아. 그때 수박 한입 먹으면 캬... 진짜 천상의 단맛이지."

"오, 운동하고 먹는 수박. 매우 동의한다."

 

샹은 한국어를 군대에서 배워서 그런지, 한국어를 이런 식으로 쓴다. 매우 동의한다라니... 한국어 웃기다고 말할까 말까 싶었는데 샹은 갑자기,

 

"잠시 기다리시오."

 

이러더니 갑자기 마스크를 쓰고 휑하니 나갔다. 

 

 

?????

 

 

 

몇 분 후, 샹은 커다란 수박을 품에 안고 들어왔다. 고새 먹고싶어서 마트에서 사온 모양이다.

 

"어디 갔나 했더니, 수박 사온 거야?"

"어. 먹자."

 

수박

"와.. 이 수박 왜이렇게 큰가 했더니 흰 부분이 좀 큰데? 맛있을까?"

"그곳에서 가장 좋은 수박을 골라왔다. 나를 믿어. 흰부분이 크긴 하지만 원래 엄청 커. 내가 깍둑썰기 해줄게."

 

깍둑썰기

샹은 현란하게 칼질을 해서 금새 깍둑썰기를 해서 수박을 내놓았다. 수박이 진짜 크긴 큰 모양이다. 왼쪽에 있는 납작한 조각만 잘랐는데 썰고 보니 양이 꽤 많았다.

 

"오... 맛있는데!"

"시원하면 좀 더 맛있겠는데. 냉장고 넣어놔야겠다."

 

샹은 랩으로 수박을 둘러쌌다. 난 장난기가 들어서 급 상황극을 시작했다.

 

"수박 전문가씨, 이 수박은 평점이 몇인가요?"

"네, 수박 connaisseur(전문가)로서 말하는데... B+입니다."

"어? 맛있는데 왜 B+죠?"

"A-는 그 해의 가장 맛있는 수박에만 줍니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으니, A-는 줄 수 없죠."

"오, 기준이 높군요. 그러면 A+는 어떤 수박에 줄 건가요?"

"그건 평생 제일 맛있는 수박에 줄 겁니다."

"해수욕하고 나서 먹는 수박보다 맛있는 게 있을까요?"

"음... 앞으로 살아가면서 먹을 수 있을 거야."

 

 

"샹, 너 진짜 웃기다. 너 보니까 이게 생각나. 인도인이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봤는데, 인도에서 노인들이 다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알아?"

"뭔데?"

"자신이 평생 먹었던 망고들 중에 어떤 망고가 제일 맛있는지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계속 반복해서 말한대."

"워우... 나도 늙으면 인도 노인처럼 이야기하겠네. 대신에 난 망고가 아니라 수박이 되겠군."

"나도 덕분에 이야기할 수박이 많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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