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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내 학생들의 플레이리스트

by 밀리멜리 2021.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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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을 하다가, 책 속에 플레이리스트 이야기가 나왔다.

 

"이 친구는 이런 노래를 좋아하네! 너희들은 어떤 노래를 좋아해? 플레이리스트에 무슨 노래가 있어?"

 

갑자기 조용하던 아이들 표정에 생기가 돈다. 자기 관심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BTS 좋아해요."

"그래? BTS 좋지! 그 중에서도 어떤 노래 좋아해?"

"아, 너무 많아서 다 못 말하는데... 요즘에 나온 Butter도 좋고, 유명한 Dynamite도 좋아요.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알기도 쉽고요."

"오! Butter 나온 건 아는데, 들어봐야겠다."

"선생님 들어볼 거면 잠깐만 기다려요."

 

BTS 좋은거 말해 뭐해 진리지

하더니 Butter, Dynamite, Outro:ego, Dope, Dis-ease, Telepathy, Mic drop, Filter, On, Idol, DNA, Life goes on, Burning up, Boy with luv 하며 방탄 노래를 줄줄이 알려준다. 이 친구는 아무래도 한 곡을 선택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수업에 심드렁하던 또다른 학생은 아예 화면공유를 해서 자기의 플레이리스트를 보여준다. 주르르르 스크롤하며 내려가는 수백개의 곡들...

 

"우와, 이게 다 몇곡이야?"

"나도 몰라요. 엄청 많죠? 아, 뭘 고를지 모르겠어요."

"주말이니까, 주말에 들어볼 만한 노래 어때?"

"음... 주말에 들을 만한 노래...."

 

하고 고민하더니 일본 애니메이션 OP의 한 노래를 틀어준다. 줌 수업이라서 아이들 말 한마디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데, 본인이 알아서 줄줄 말하니 고맙기도 하다. 정작 선생님인 나는 소리 공유를 하는 법을 몰라 당황했는데, 역시 아이들이 줌 수업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런 쪽은 아이들이 더 잘 안다.

 

애니메이션 페어리 테일

"오, 괜찮은데? 노래 좋다."

 

하면서 노래 제목을 받아적으니 이 친구는 쑥쓰러운 듯 씩 웃더니 금세 화면 공유를 끝내버린다.

 

"아, 벌써 껐어? 아쉽다. 더 들어보고 싶었는데!"

"다음에 또 들어요."

 

자기는 한국어를 잘 못한다며 항상 수줍어하던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전 K-pop 별로 안좋아해서... 케이팝 노래는 없어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어떤 노래 좋아해?"

"전 R&B 좋아해요."

"오! R&B! 어떤 거?"

 

하니까 이 학생도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 클릭한 가수는 브루노 마스!

 

 

"와, 선생님도 브루노 마스 노래 자주 들었어. 반갑네!"

"네. Grenade도 좋고, Treasure도 좋아요. 이 중에 뭐가 유명한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두개 추천해요."

"고마워! 이따 들어봐야겠다!"

 

그 다음 항상 수업에 대답 잘하는 학생 차례다. 이 학생도 역시 케이팝을 좋아한다.

 

"저는 NCT Dream의 My youth라는 노래 좋아해요. 아, 그리고 Rainbow도 좋고요."

"우와, 알겠어. NCT라는 그룹 들어봤어! 여기 적어놓고 꼭 들어볼게!"

 

누군가가 불쑥 묻는다.

 

"선생님! 근데 NCT Dream하고 NCT 127 차이가 뭐예요?"

"음, 나도 모르는데? 한번 찾아볼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유닛 그룹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이 학생이 정말 이 그룹의 차이점이 궁금했던 게 아니라 이런 질문으로 수업시간을 떼우려고 한다는 것을... 😏😏 

 

나도 그 장단에 맞춰 한 술 더 떴다.

 

"제일 좋아하는 멤버가 누구야?"

"재현이요!"

 

NCT 재현

 

그리고 재현의 사진을 검색하면서 또 시간을 떼웠다. 이런 게 또 지루한 수업에 오아시스 같은 게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해 본다.

 

아이들이 추천해 준 노래를 들어보겠다고 했으니,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들어보고 다음시간에 감상을 말해 줘야겠다. 그래야지 나에게 신뢰가 쌓일 테니까.

 

이제 겨우 아이들과 두번째 만남이라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대면수업이었다면 더 빨리 친해졌을 텐데, 줌 수업은 역시 아직도 어색하다. 사춘기가 한창인 중학생이기도 하고...

 

이 수업 덕분에 청소년 글쓰기에 관한 책도 읽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얼른 다 읽고 내용도 정리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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