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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햄버거가 먹고 싶을 때

by 밀리멜리 2021.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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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가 먹고 싶지만 남친은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집밥을 선호하는 편이다. 밖에서 배고프다고 말했더니 남친이 '외식은 주말에 하자'며 슬쩍 운을 띄운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지...

 

우선, 햄버거 가게가 가까운 쪽으로 산책을 한다. 그래서 가게 간판을 볼 수 있도록...

이쪽으로 갈까?

약국 옆에 바로 햄버거 가게가 있는데, 마침 철분제가 필요해서 약국에 들어갔다. 철분제를 다 사고 약국 안을 둘러보는데 생리대 할인을 하고 있었다.

 

할인하는 걸 보자마자 나보다 남친이 먼저 가서 다섯 박스를 집는다.

 

"뭐하러 그렇게 많이 사? 집에도 많은데..."

"너 필요하잖아. 그리고 가격 봐. 엄청나게 싸다."

 

평소에 5천원 정도인 한 박스가 2800원이라니, 엄청나게 싸긴 했다.

 

약국

한국에서는 생리대 살 때는 보이지 않게 꼭 검은 봉지에 담고, 뭐 생리하는 게 죄라도 되는 것처럼 몰래 사왔는데... 여기서는 모두 당당하게 들고 다닌다. 남자가 생리대를 들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게 본다.

 

근데 아무래도 너무 많이 사는 것 같은데... 두 손 가득 다섯 박스도 모자라 세 박스를 더 집어 나에게 건넨다.

 

"자, 너도 좀 들어."

"이거 여덟 박스를 다 사게?"

"조만간 생리 끝날 일도 없으니까...(It's not like you're gonna stop menstruating soon...)"

 

그런데 뒤에서 푸웁! 으하하하! 하고 웃음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우리 뒤에서 재고 정리를 하던 점원이 우리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맞아요! 하하하하하하! 이번에 엄청나게 할인하고 있으니 많이 사가요."

"그렇죠?!"

"유통기한도 없으니까 많이 사서 쟁여놔요. 저라도 그러겠어요."

"고마워요. 좋은 주말 보내요!!"

 

그 점원은 한창 웃었다. 남친은 자기 의견에 맞장구를 치는 사람을 만나 반가운 모양이다. 게다가 예기치 않게 다른 사람을 웃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가 진짜 웃겼나 봐, 그치? (I think I really cracked her up, right?)"

"맞아, 웃기긴 웃겼어. 블로그에 적어야겠다."

 

아무튼 이렇게 모르는 사람하고도 생리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과는 정말 다른 점이다. 생각해보니 별로 감추어야 할 이야기도 아니다.

 

약국을 나서면서도 아직 햄버거 생각이 계속 난다. 기분이 좋아진 남친에게 햄버거 가게의 존재를 환기시켰다.

 

"이쪽으로 가면 파이브 가이즈가 있는데... 다섯 남자들이 만든 햄버거! 르 상크 멕(Le cinq mecs: 다섯 남자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레 상크 멕(Les cinq mecs)이지."

 

하고 남친이 내 프랑스어 오류를 고쳐준다. 나는 별 상관하지 않고 계속 햄버거 속재료를 나열했다.

 

"부드러운 빵에, 양상추도 들어가고, 토마토랑, 구운 양파, 구운 버섯, 생양파, 바베큐 소스, 소고기 패티 두 장.... 감자튀김 조금만 시켜도 엄청 많이 주고, 땅콩도 공짜로 받아와서 간식으로 먹고..."

 

"한 입 베어물면 소스랑 육즙이 쫙 나오고, 양파는 달달하겠지? 양상추도 아삭아삭하고..."

 

이렇게 계속 햄버거에 대한 묘사를 하다 보면 패스트푸드를 꺼리고 건강 챙기는 사람도 입에 침이 고이기 마련이다. 약국 바로 옆에 있는 햄버거 가게를 지나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햄버거 먹을까?"

 

하는 말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드디어 걸렸구나...ㅋㅋㅋ

 

짜잔

그래서 결국 햄버거를 먹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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