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을 하다가 어느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선비질이 뭐예요?"
한국에서는 다들 쌤, 쌤, 이렇게 줄여 부르는데 이곳 아이들은 음절 하나하나 선생님이라고 불러준다.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기까지 하다.
요즘 아이들과 청소년문학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에서 '선비질', '진지충'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어가 서툴어 '선비'와 '진지하다'라는 뜻도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 이 단어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음, 일단 이 말은 사전에는 없는 슬랭이야. 남을 욕할 때 쓰는 나쁜 말인데..."
선비가 무엇인지부터 알려줘야겠다 싶어서 구글에 선비를 검색했다. 줌 수업을 하고 있어서 화면공유를 하면 이미지를 바로 보여줄 수 있어서 편하다.
"한국의 사극 드라마에서 이런 복장을 본 적 있지? 이런 복장을 입은 사람을 선비라고 해. 조선시대에는 선비가 귀족이었고, 엘리트였어. 서양의 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작위가 정해지지만, 우리나라의 귀족들은 출신이 좋아도 공부를 많이 해야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었어. 공부도 잘하고, 잘난 사람들이지."
"그런데 엘리트주의라는 말도 좋은 뜻이 아니지? 그거랑 비슷해. 지금은 옛날처럼 계급도 없는데, 옛날 선비들처럼 잘난 척 하고 똑똑한 척 하는 사람들을 두고 '선비질한다'라고 말하기도 해."
"그럼 진지충은 뭐예요?"
"그것도 비슷한 의미로 안 좋은 말인데... 진지하다는 뜻은 대충 알지? 거기에 '충'이 붙어서 안 좋은 의미가 돼. '충'은 곤충에서 나온 말인데, 곤충을 생각하면 징그럽지? 그렇게 안좋은 말을 붙여서 잘난 척 하는 사람을 모욕하는 말이야."
"그럼 '나댄다'는 무슨 뜻이에요?"
"그것도 비슷한 뜻인데...."
잘난 척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별 생각없이 쓰이는 단어들을 곱씹어 풀어주다 보니 이런 단어들이 왜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는지 궁금해진다. 이것도 문화차이일까?
'선비'라는 말이 한국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잘난척 하는 사람이 얄미운 것은 세계 보편적인 감정일 것이다.
나대는 것은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생각해보니 나대는 사람은 결국에 인기를 얻는다. 먼저 나서서 지적하고, 남들에게 알려주고,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는 사람은 보통 리더가 되지 않던가? 물론 인기를 얻으면 또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단어들은 소수의 취향과 의견을 무시하는 데 쓰일 수 있어 위험하기도 하다.
"저는 팝송 안 듣고, 케이팝도 안 들어요. 진짜 옛날 노래를 좋아하는데,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봐 좀 걱정돼요. 올드하다고 할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이나 가곡을 좋아하는 학생에게 "나대지 마" 한 마디만 하면, 그 애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또 이런 이야기도 해보았다.
"만약에 친구가 나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물어볼 거예요. 그리고 그 친구가 대답을 안하면... 이제 친구 사이가 사라지는 거죠."
"친구들을 직접 봐야 하는데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요. 아마 그 친구랑 말을 안 할 것 같아요."
"저는 그 친구 어머니한테 가서 직접 따질 거예요."
내가 질문을 던졌지만 나도 딱히 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더 생각해 보자고 하고 수업을 끝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업이 끝나고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라는 프로그램에서 오은영쌤이 정답을 말해준다.
남이 나를 미워해서 상처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미워하는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이란다. 이것은 타인의 감정이니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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