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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한국어수업

역사는 뭐하러 배워요? 지루하기만 한데.

by 밀리멜리 202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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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근데 역사는 뭐하러 배워요? 다 쓸모없고 지루하기만 한데. 역사 수업은 다 필요 없는 거 같아요."

 

기습 질문이 들어왔다.

 

역사가 중요하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학교에서 가르치니까, 그리고 교과서에서 중요하다고 하니까. 역사 교과서 첫 페이지에 매번 등장하는 E.H 카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인용해봤자, 이미 역사가 따분하고 지루한 아이들에게 먹힐 리 없다. 

 

역사, 이 지루하고 쓸데없는 걸 뭐하러 배워?

 

나는 매 수업 20분 정도 자유토론 시간을 정해놨는데,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되겠다 싶어서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역사 수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보니까, 그렇잖아요. 만약에 내가 의사 되거나, 요리사 되거나, 변호사 되고 싶다고 한다면... 역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별로 관련도 없고. 오히려 과거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지 않아요? 미래 기술 같은 게 더 중요하잖아요."

"미래 기술이 중요하지! 그런데 그 미래 기술은 어떻게 만들어? 과거의 기록을 봐야 알 수 있잖아. 아무런 기록도 역사도 없으면 미래 기술도 만들 수 없지."

"하하, 그건 그렇네요. 그래도 그런 거 배우잖아요, 레볼루션, 크리스티아니티, 마이오나지... 왜 배워요?"

"마이오나지가 뭐지?"

"어, 그게 한국어로 뭐지... 영어로도 모르는데. 역사를 프랑스어로 배워서 모르겠어요."

 

학생의 버터발음 때문에 못 알아들었는데, 마이오나지는 중세 시대, Moyen Âge를 말하는 것 같다. 

 

중세시대 역사 뭐하러 배우냐구요

 

"아무튼, 쓸데없는 게 많아서 싫다는 거구나. 또 다른 학생은 어떻게 생각해?"

"선생님 말처럼 미래 기술 만들려면 역사가 중요한데, 그래도 요리사 하려면 역사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과거에 뭐 했는지, 문화 같은 거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중요하죠. 전에 뭐 잘못한 게 있으면 미래에는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어서 역사는 좋은 것 같아요."

"그렇긴 한데, 너무 지루하고 쓸데없는 게 많아요."

 

"쓸데없는 게 많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네. 선생님은 여기서 퀘벡 역사 수업 딱 한번 들어봤어. 정말 지루하더라. 나한테 필요 없는 내용도 많고. 그래도 다 듣고 나니까 좀 깨닫게 되는 건 있었어. 예를 들어서, 여기 퀘벡에서는 가톨릭 용어가 다 욕이잖아? 신성한 용어들이 다 욕이란 말이야. 난 그게 항상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역사 수업을 듣고 나니 가톨릭 교회가 퀘벡 사람들한테 잘못을 많이 했더라. 그래서 과거엔 모두가 카톨릭을 싫어하는 거였고, 카톨릭 용어가 모욕적인 말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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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말처럼, 직업 찾는 데 도움은 되지 않아도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겉으로 보면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의 과거, 역사를 보면 아! 저 사람이 이런 걸 겪었기 때문에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지."

 

"맞아요. 중요한 것도 있는데, 그래도 지루하긴 지루해요. 진짜! 너무 철학적이고! 학교에서 선생님은 '왜 인간은 인간인가!' 이런다니까요."

 

"네 말이 맞아. 역사를 배우다 보면 정말 길고 지루해. 나한테 쓸데없는 것도 있고, 필요한 것도 있지.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뭐가 나한테 중요한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 없어. 일단 배우고, 나중에 '아! 이게 나한테 쓸모 있었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거지. 우리가 아직 그만큼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어. 일단 다 배우는 수밖에. 나중에는 내가 필요한 것만 쏙쏙 골라내는 안목을 가지게 되겠지만, 지금은 모르니 그래. 어쩔 수 없지. 지루한 것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게 배움이니까."

 

 

"어휴, 그러고 보니 진짜 이상한 수업도 있어요. 그냥 기본예절을 배우는 수업인데, 너무 당연한 거라서 어이가 없어요. '친구에게 선물을 받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이런 게 문제라니까요."

"오, 그런 수업이 다 있구나. 그런 당연한 걸 왜 가르칠까?"

"그러니까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너무 쉬운데."

"아마 사람들 중에는 그 너무 쉽고 당연한 에티켓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어?"

"음,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하긴, 그 사람들도 배워야죠. 평등하게 배워야 하니까. 그래야 또 인간사회를 잘 살아나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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