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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한국어수업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 은따, 내 이야기 같아요

by 밀리멜리 2021.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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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흔히 사춘기 아이들은 예민하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사춘기니까 그래." 하지만, 우리 모두가 예민하고 상처 받으며 고민하는 그 시기를 다 경험하고 자랐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청소년 문학이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가슴 찡한 장면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다현이는 중학교 2학년, 사춘기의 절정을 겪으며 학교생활과 친구가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를 배워나간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 황영미 저

나는 이 책의 주인공 15살 다현이와 꼭 같은 나이의 학생들과 함께 읽었다. 한글 수업을 위해 고른 책이지만, 이 책은 한글 수업 그 이상의 깨달음을 준다. 한 학생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이건 꼭 내 이야기 같아요. 나도 친구하고 이런 거 많이 겪었거든요. 아, 이야기하기 힘든데. 아무튼 나도 친구한테 상처 받고 마음 아프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괜찮아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니까 나만 겪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안심도 되고."

 

이 친구의 이야기를 작가님이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진짜 중학생에게서 나온 진짜 칭찬이다.

 

 

 

 왕따는 싫어

 

학교가 우주의 전부인 아이들에게 친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로운 왕따, 은따가 되지 않으려면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다. 너무 큰 목소리로 나대도 안되고, 귀여운 척을 해도 안되고, 예뻐도 예쁜 걸 알면 안 된다. 원래 왕따인 아이들과 말 걸지 않아야 하는 것도 필수다.

 

하지만 사실 왕따가 되는 데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다. 이유가 있더라도 그게 뭐가 중요한가? 친구를 싫어하는 이유는 백만가지도 더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냥 싫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주인공 다현이는 왕따에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항상 친구 심부름을 해 주며, 선물 공세를 하고, 친구들 눈치를 보며 부탁은 거절하지 못한다. 왕따가 되기 싫어서이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이런 다현이에게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다'라는 소설 속 설정은 정말 기가 막히다. 

 

다현이가 학교에서 은근히 놀림을 받거나, 친구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받거나, 미움받거나 무시받는 상황이 나오면 어김없이 다현이의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스트레스가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다현이 배가 아플 때마다 사실 아팠던 건 다현이의 마음이었다는 걸 은근하게 말해준다.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에게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설명하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똥, 방귀, 설사 말만 들어도 빵빵 터진다! 인간은 똥을 싫어하면서도 사실 좋아한다. 🥱😜

 

스트레스 받으면 어딘가 한군데씩 아프지 않나요?

 

 

 모두가 날 좋아하는 건 불가능하대

 

너도 내 이름을 불러줘. 알았지? 우리 반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듯. 이름이야 알 테지. 하지만 나에게 관심이 없어. 학교에서 하루는 백만 년 같아. 나는 말이지, 먼지처럼 교실을 떠다녀.
다현이의 블로그, p. 85

 

그런데 나는 영원한 친구 같은 거 안 믿어. 너무 잘해주더라 싶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보험 영업하러 나온 거더라. 그래도 처지가 비슷하니 가끔 통화하고 톡 주고받고 밥 먹고, 영화 보고 하는 거지 뭐. 친구는 그런 거야. 살다 보면 멀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만나기도 하고. 인간관계가 다 그래.
엄마의 말, p.88

 

인간관계가 그런 거지 

 

엄마!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살았으면 좋겠어. 불가능하다는 건 알지만. 생각해 봤는데, 나를 싫어하는 애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싫어하더라고. 노력해도 그 애들의 마음은 돌릴 수 없어. 그래서 결심했어.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만 신경 쓸 거야.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그냥, 내가 먼저 좋아할 거야.
다현이의 말, p.90

항상 웃기기만 하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아니라도 좋다. 소설을 읽으면 책 주인공에게 공감하면서 나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 주인공이 겪은 일과 내가 겪은 일을 떠올리며 비교하다 보면, 그런 상처가 별 것 아니었구나, 극복할 수 있는 일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결국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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