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고 한국어 수업이 다시 시작했다. 3개월의 겨울 방학이 끝나고 처음 보는 거라, 아이들을 만나는 게 기대된다.
먼저, 이번 학기에 읽어볼 소설 한 권을 골랐다.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
베스트셀러 칸을 쭉 훑으며 소설마다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방탄소년단 RM과 슈가가 읽은 책이라니! 이번 학기 아이들과 뭘 읽을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이거다! 싶었다.
멤버들끼리 책 재밌냐며 돌려볼 정도이니 정말 궁금해진다. 특히 RM은 독서를 많이 하는 걸로 유명해서, 그의 독서 리스트가 알려질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학생들과 만나서 함께 이 책 '아몬드'를 읽을 거라고 말했다. 과연... 😊 우리 학생들 중 한 명은 이미 이 책을 종이책으로 갖고 있었고, 아미 친구도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이 책, 원래 RM이 읽던 건데, 슈가도 읽고, 제이홉도 읽었어요!"
"우와, 그랬구나! 세 명이나 읽었네. 재밌겠다, 그치?"
우리는 첫 장을 펼치고, '일러두기'부터 읽기 시작했다.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표현불능증은 정서적 장애이다. 이는 아동기에 트라우마가 있거나 정서발달 단계를 잘 거치지 못할 경우,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아미그달라)가 작은 사람일 경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감정이 무미건조해지며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
"이거 읽으니까, 주인공은 감정표현불능증을 가진 사람인가 봐! 편도체에 이상이 생기면 이 병을 앓게 된대. 편도체는 뇌에 있는 기관인데, 우리 한번 그림을 볼까? 정말 아몬드처럼 생겼네. 편도체는 또 아미그달라(amygdala)라고 해. 그런데 신기한 게, 아미그달라는 '아몬드'라는 뜻의 그리스어라고 하네! 그래서 책 제목이 아몬드인가 봐. 이 병을 앓으면 공포나 불안을 잘 느끼지 못한대. 내가 만약에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에 불안하지 않다면, 뭐 편하지 않을까요?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면요."
"편하기도 하겠는데, 또 어떨 땐 위험한 걸 모를 수도 있겠어요."
"맞아. 공포와 불안도 살아가면서 필요한 감정이지. 하지만 그뿐 아니라 모든 감정에 둔해진다면 어떨까?"
"진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행복한 걸 모를 수도 있겠네요."
"사람들하고 잘 지내기 힘들지 않을까요?"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겠어요.
"맞아! 그럴 수 있겠다. 좋은 생각들이 많네."
아이들이 책을 읽기도 전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미리 상상하는 능력이 놀라웠다.
첫 부분에 사람들이 죽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징어게임 같은 드라마를 다 본 아이들도 이 책의 몇 줄이 더 강렬하다고 덧붙였다.
"이상해요. TV로 보는 것보다 책으로 읽는 게 더 생생한 것 같아요."
"그래?"
"네, 책은 엄청 디테일하잖아요. 영화나 드라마는 빨리 지나가니까 이렇게까지 intense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 맞아, 맞아! intense는 한국어로 강렬하다고 표현해. 나도 가끔 그렇게 느껴. 또 그런 작품 읽어본 거 있어? 영화보다 책이 더 재미있었던 거?"
"어, 저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요!"
"저는 학교 수업에서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Outsider)' 영화랑 책으로 다 읽었는데, 그것도 책이 더 재밌었어요. 영화는 너무 오래되서 그런가 별로였어요."
아이들이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책을 읽을 때는 책의 내용과 함께 작가가 왜 그렇게 썼는지, 나라면 어떻게 이야기를 쓸 것인지까지 생각하면 독서의 영역을 확 넓힐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하면서 읽어본 적은 별로 없어서, 아이들과의 독서 수업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참고: BTS RM이 읽은 책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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