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어 수업은 너무 어려운 텍스트를 가져다 준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부쩍 상승했다 싶어서 과학저널의 기사를 읽어주었는데,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하긴, 나마저도 잘 이해하기 힘든 기사였다.
"철학자와 과학자들 인간의 자유의지 실체 밝힌다(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7894)"라는 기사였는데,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는가? 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려고 찾은 기사였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어주었는데, 나만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자, 다들 왼손 한번 올려봐. 오, 그렇지. 잘했어.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방금 손을 올린 건 내 자유의지였나? 아니면 나의 뇌가 명령을 내린 걸까?"
아이들은 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손을 올리면 올린 거지, 그게 자유의지와 관련이 있나? 사실 자유의지라는 말 자체가 어려운 것 같다. 말하다 보니 나도 좀 혼란스러워졌다. 이런 토론주제를 정할 땐 나부터 좀 더 잘 알고 눈높이에 맞춰 컨셉을 잘 설명해주어야겠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볼까.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지?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잖아. 그러면 내가 한국어 수업을 듣는 건 내 자유의지일까? 음... 공부가 다 좋을 수는 없지만, 내 의지는 몇 퍼센트고, 외부의 영향은 몇 퍼센트일지 한번 말해보자."
"음, 저는 한 30% 정도 제 의지예요. 나머지는 엄마가 들으라고 해서..."
"저도 그래요. 엄마가 한국어를 잘 하면 나중에 도움이 잘 될 거고, 한국에 있는 친척들하고도 이야기 잘 할 수 있고, 커서 한국에서 일할 수도 있으니까 그 말 듣고 수업 듣기로 했어요."
"저는 80% 정도가 제 의지예요. 한국어 수업 제가 듣고 싶어서 듣는 거예요."
"그렇구나. 솔직한 답변 고마워, 얘들아. 그렇다면 다른 활동은 어때? 내가 좋아하는 활동, 예를 들어 이번 주말에 하고 싶은 활동은 뭐고, 몇 퍼센트 정도가 내 의지인지 말해보자."
"아, 저는 이번에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비디오를 올리려는데, 그건 100% 제 의지예요. 그런데 편집하는 게 어렵고 시간이 안 나서 어려워요. 그래서 미루고 있어요."
"저는 피아노를 칠 거예요. 피아노를 칠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피아노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자유의지고 뭐고 아무 생각 없이 피아노만 치는 거예요."
"오, 정말 그럴 땐 의지가 생각나지 않지. 그런 걸 몰입이라고 해! 피아노에 몰입했구나. 대단한걸?"
"헤헷😊"
"우리가 좋아하는 활동은 우리의 자유의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 하나도 없어. 그래서 과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했어. MRI가 뭔지 저번 시간에 들어봤지? 아주 커다란 하얀 기계에 사람이 들어가고, 거기서 뇌를 스캔해서 뇌의 활동을 밝혀주는 기계야. MRI는 이제 확실히 기억하겠다. 😁 아까 읽은 기사를 생각해 봐. 과학자들이 뇌를 스캔해서 자유의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는데, 과학자들이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실패했을까?"
"음, 실패했어요."
"맞아. 실패했어. 그래서 과학자들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 거지. 우리가 자유의지에 대한 질문 자체를 잘못 설정한 것 같다! 이건 철학자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정한 거야. 그래서 여러 철학자들을 연구실로 불러서, 철학자와 신경과학자가 함께 연구를 한대. 아까 그 기사에서 잠깐 나온 건데, 이 연구에 돈이 얼마 들어갔는지 기억나?"
"기억 안나요."
"자그마치 7백만 달러야! 이 연구가 재미있는 건 과학자들뿐 아니라 철학자를 불러서 연구한다는 거지. 그래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그럼 뇌 신경연구랑 자유의지를 함께 볼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 발언으로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저는 자유의지가 뭔지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인간이죠."
"오, 정말 좋은 말이네."
"그리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용어가 뭐였는지 까먹었어요. 아무튼 뭐 연결된 게 많으면 많을수록 기억을 잘 하고 뇌가 빠르게 반응한대요. 오늘 수업 들으니 그게 생각나네요."
"그 용어가 뭐였을까?"
"음, 프랑스어로 배워서 기억이 안나요!"
"아마 신경 시냅스가 아닐까 싶은데, 나중에 생각나면 알려줘!"
"그럴게요."
"저는 사람의 뇌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게 많구나 생각해요.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도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좀 슬퍼요. 그걸 잘 모른다는 게 무섭기도 해요."
"맞아. 우리는 정말 모르는 게 많고, 그것 때문에 무섭거나 슬픈 것도 이해가 간다."
"저는 우리가 진짜 백퍼센트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유를 얻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뇌가 먼저 생각하고 명령을 내리잖아요. 그럼 뇌의 명령을 따르는 거니 자유로울 수 없죠."
"와, 정말 철학적인 말인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말이다. 지금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고민하는 게 바로 그거야. 오늘 기사를 정말 잘 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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