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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한국어수업

학생들이 생각하는 케이팝 아이돌 시스템의 문제점

by 밀리멜리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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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에 토론시간을 마련해 놓았다. 여러 토론주제를 준비해 가긴 했는데, 우리 학생들이 하고 싶은 토론은 따로 있었다. 

"선생님, 우리 수업 끝나고 이따 오후에 방탄 콘서트 라이브로 극장에서 보여주거든요. 그거 보러 갈 거예요!"
"와, 방탄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가면 진짜 재밌겠네."
"선생님, 저도 거기 가요."
"엇, 너도 가? 어디 극장?"
"우리 집 근처 극장. 너는?"
"나는 다운타운 있는 곳이야."

BTS Permission to dance 콘서트 


방탄소년단 서울 콘서트 영상을 실시간으로 영화관에서 상영해 준다고 한다. 날짜는 우리 수업이 있었던 12일 토요일 오후, 전체 극장이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상영한다. 몬트리올뿐 아니라 전세계 75개 국가의 3,711 극장에서 콘서트를 상영했다고 한다.

콘서트를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니! 참 기발한 발상의 전환이다. 한번에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고, 이 생중계로 400억 원 매출을 벌어들였다고 하니... 주최측도 좋고 팬도 좋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콘서트라니,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콘서트에 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케이팝 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주제다 보니, 아이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제가 제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말이죠, 소속사가 너무 엄격하다는 거예요. 멤버들 다 성인이고, 25살이 넘었는데, 연애도 못하잖아요."
"25살이라고 다 연애해야 해? 그건 아니잖아! 우리 언니는 27살아지만 연애 안하는 걸."
"아니, 연애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자유가 없잖아."
"아이돌이 연애를 하면 팬들이 싫어해서 그런가? 그래서 연애 금지시키나 봐."

 

아이돌은 연애를 어떻게 하나요? (사진: 오마이걸 승희)

"다 성인인데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건 좀 그래. 자기가 하고싶은 활동을 못하고, 소속사에서 정해준 활동만 해야 하잖아. 블랙핑크가 그래. 음악활동을 안 하고 광고촬영이나 모델만 하잖아."
"난 좀 다르게 생각해. 아이돌은 연애를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연애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예를 들어 동생이 태어나면 부모님이 봐주고 사랑을 반으로 갈라서 나눠줘야 하잖아. 그렇듯이 팬들에게 소홀해 질 수도 있지. 만약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연애를 하면 난 서운할 것 같아."
"그렇긴 하지만, 팬들에게 소홀해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어. 꼭 연애 때문만은 아냐. 문제는 소속사가 억지로 시킨다는 거지."
"아, 그건 나도 동의해. 예를 들어 소속사는 아이돌에게 너무 심하게 다이어트를 시켜. 트와이스 모모는 살을 빼야 해서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얼음만 먹었대. 그건 너무 심하잖아?"

 

7kg을 빼기 위해 일주일동안 얼음만 먹었다는 트와이스 모모


"진짜 심하다. 꼭 말라야만 이쁘다고 생각하고, 안 마르면 욕먹고. 조금만 살쪄도 악플이 엄청 달리더라."

아이들이 한국어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하다니! 나는 내심 놀라기도 하고 대견스러웠다. 물론 몇몇 단어는 영어를 섞어 쓰기도 했지만, 꽤 논리정연하고 사회에 문제가 되는 주제들을 잘 꼬집어내는 능력이 대단했다. 아이들의 토론은 더욱 심화되었다.

"너희들 정말 재미있는 의견을 많이 냈네. 정말 다 맞는 말이고 설득력이 있어서 나도 끄덕끄덕했어. 어떻게 보면 아이돌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만들어 내는 것 같기도 해. 말라야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음... 소셜 미디어가 정말 큰 역할을 하죠.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보면 다 마르고 이쁘게 나오잖아요."
"맞아요.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예쁜 사람을 보면 내 얼굴하고 비교하게 되요."
"그런데 그 얼굴은 진짜가 아니고 포토샵으로 다 고친 거잖아. 사실 없는 얼굴과 몸매를 따라하고 싶어하는 게 말이 되냐구."

 

얼굴형을 바꾸는 틱톡 필터 (사진: 구혜선)


"정말 좋은 지적이네. 정말 그래. 남과 자꾸 비교하게 되고, 포토샵으로 고친 걸 따라하고 싶게 만들지. 이렇게 내가 생각한 아름다움의 기준은 내 생각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영향이 많을까?"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생각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왜냐면 이런 실험이 있었거든요. 왼쪽 선과 가장 길이가 비슷한 선은? 이 질문을 했을 때 정답은 당연 C지만요, 앞사람 9명이 모두 A라고 대답하면 마지막 사람도 A라고 대답하게 된대요. 그런 실험이 있대요. 그러니까 남들의 의견을 따라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왼쪽 선과 가장 비슷한 선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동조하게 되는 심리


"오, 그런 실험까지 인용하고. 대단한데?"
"맞는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 안 예쁜 것도 다른 사람이 다 예쁘다 하면 내 의견은 감추고 동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적 있어요. 내 의견이랑 다르더라도 감추고 동의하는 척 한 적 있어요. 의견이 다르면 싸우게 되기도 해요."
"저도요. 예를 들어 친구들이 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 저는 솔직히 싫었지만 싫다고 말하지는 않았어요."
"남하고 다르면 싸우게 되요."

"맞아, 좋은 지적이야. 남과 다르면 싸우게 된다는 게 재미있네. 남과 다른 걸 못 견딘다는 표현을 뭐라고 할까? 우리가 아몬드 소설책에서도 읽었는데. 맞출 수 있는 사람? 주인공이 감정을 느낄 수 없어서 다른 사람과 다르잖아. 그걸 보고 주인공의 할머니가 '사람들은 남과 다른 걸 못 OO다.' 라고 했어. 우리가 한 시간 전에 읽은 대목인데, 그 표현이 뭐였지?"
"아, 뭐였지. 아까 봤는데?!!"
"맞아, 기억날 것 같은데.... 뭐였지."
"정답은 못 배긴다! 였어. '못 배긴다'의 뜻은 참지 못한다,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한다는 뜻이었어. 남과 다른 걸 싫어하는 거, 참 신기하지?"
"그러지 않고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요."
"맞아. 우리가 생각해 볼 만한 좋은 주제인 것 같아. 이렇게 재밌는 주제를 찾아내줘서 모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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