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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한국어수업

말하기대회 준비 - 생각을 확장하는 질문을 던지자

by 밀리멜리 202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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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회에 참가하고 경쟁하는 건 은근 준비할 게 많고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어떤 경험이든지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보는 건 좋은 경험이다. 

 

이번 주 수업에는 모두가 말하기 주제를 정했고, 원고도 거의 마무리단계가 끝났다. 이 원고단계가 제일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글을 손봐주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서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가 어렸을 때, 대회에 나가야 하면 주제를 뭘로 해야하나, 글은 어떻게 써야 하나 하고 며칠동안 끙끙대며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거리, 주제에서 생각을 넓혀나갈 수 있는 질문거리를 준비했다. 특별한 질문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항상 쓰는 언제/어디서/왜/어떻게... 등등의 육하원칙만 상황에 잘 맞춰주면 된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아이들이 자세하게 대답하게 되니 말할 거리를 찾는 건 의외로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상상력이 풍부한 대답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냥 멍하게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만 있지 않고, 머리를 써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내 수업목표이다. 상상력을 쓰든, 논리를 쓰든 상관 없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

 

좋은 질문을 하면 좋은 답이 나온다.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내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철칙이 몇 가지 있다.

  • 생각을 확장할수 있는 질문을 던지자.
  • 칭찬을 많이 하자.
  • 인정해 주자.

이런 원칙은 있지만 막상 수업하다보면 질문을 제대로 던졌나, 칭찬을 충분히 해주었나 돌아보게 된다. 쉽지가 않다.

 

"저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을 말하고 싶어요."

"오! 너 유튜버구나. 그럼 얘기 들어볼까? 언제 처음 만들게 되었고, 무슨 계기가 있었어?"

"글쎄요, 어렸을 때부터 아이패드를 많이 썼어요. 엄마아빠가 바빠서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지금은 중독이 되었어요."

"아, 그랬구나...!"

 

갑자기 아이패드에 중독이 되었다는 말에 좀 놀랐다. 이 친구는 항상 밝고 거침없이 자기 이야기를 표현하는 편이다. 요즘 전자기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지만, 자신이 중독되어 있다고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중독을 치료하는 첫 발자국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런 말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걸.

 

"그러다 2년 전에 가차라이프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게 뭐냐면, 내가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이미지를 영상으로 만드는 앱이에요. 이 앱으로 영상을 만들면 만화나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임을 표현하고 비디오를 만들 수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이걸 이용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중학생 때부터 꼭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캐릭터 디자인, 애니메이션이 가능한 가차라이프

"그래서 시작했구나. 계획을 행동으로 옮긴 게 대단하다. 어려운 점은 없었어?"

"음, 학교 공부랑 같이 해서 힘들었어요. 공부도 해야 하는데 비디오 만드는 게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스케줄 조절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러면, 유튜브 비디오를 만들어서 좋았던 점은?"

"사람들이 코멘트 달아주는 게 좋아요. 제가 시작한지 얼마 안된 초보인데도 격려 댓글을 달아주고, 힘내라고 서포트를 받아서 그게 제일 좋아요."

"와, 좋은 경험인데! 그러면, 혹시 유튜브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있어?"

"음... 정말 하고 싶다면 말이죠, 진짜로 그 하고 싶은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해요. 그 의지와 마음을 잊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야 해요. 포기하지 말고. Never give up!"

 

하고 싶다면 하고 싶은 마음을 잃지 말라는 명언을 남겨준 학생. 이제 중학생이 된 지 얼마 안되었는데 참 기특하다.

 

우리 반에는 또 말하기를 꺼려하고 수줍어하는 아이가 있는데, 이번에 이 학생이 자발적으로 말하기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해서 또 기특한 마음이 든다.

 

"요즘에 학교랑 공부 말고 또 하고 있는 활동이 뭐야?"

"수영이요. 요즘 재밌어졌어요."

 

어떤 아이들은 주제 하나만 던져줘도 신나서 말하는데, 수줍어하는 아이들은 조금 더 유도가 필요하다.

 

"그럼 수영을 시작한 계기가 뭐야?"

"음... 8살 때 올림픽 경기에서 수영선수들을 봤거든요. 너무 멋있어서 나도 꼭 저렇게 되야지 하고 결심했어요. 이제 13살인데 벌써 꿈을 이뤄가는 것 같아서 뿌듯해요."

"멋지다! 꿈을 이뤄가는 모습 정말 좋아. 수영을 하면 어떤 게 좋아?"

"그냥 재밌어요. 행복하고,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수영 자체도 재밌지만, 매주 연습하고 내가 지난주보다 더 나아졌다는 기분이 좋아요. 또 물을 젓는 기분도 좋고, 발차기를 하면 내 몸이 나아가는 것도 좋아요."

"와, 구체적이어서 이해가 잘 된다. 그리고 힘든 건 뭐가 있어?"

"아무래도 몸이 힘들죠. 지치고 하기 싫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계속 꾸준히 하니까 체력이 좋아지는 건 느껴요. 걷거나 뛸 때도 다리가 덜 힘들어요."

"와, 힘든 걸 잘 극복했네. 수영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어?"

"음...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 어떤 꼬마애가 너 수영하는 거 보고 멋있다고, 자기도 수영하고 싶은데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거지. '언니! 나도 언니처럼 수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라고 물어보면?"

"어... 글쎄요."

 

이 학생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내 대답했다.

 

"그냥 하는 거예요. 그냥 생각이나 걱정 없이 행동부터 하면 되요. 처음에는 어렵지만 언젠가 재미를 찾을 때가 올 거예요. 그래서 그냥 하는 거예요."

 

이 대답은 예전 김연아 선수의 내공이 담긴 우문현답을 생각나게 했다. 

김연아의 우문현답 "그냥 하는 거지!"

아이들의 현명한 대답에 정말 깜짝 놀랐다.

 

* * *

 

소설 수업에서도 큰 발전이 눈에 보였다. 아이들에게 읽기를 시켰더니 발음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한국어 단어를 영어처럼 말하는 것도 크게 줄었다. 또 하나 발견한 것은 아이들의 독해력이 상승한 것이다. 시험을 보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예전보다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소리내어 읽기를 할 때, 글을 띄엄띄엄 읽으면 텍스트의 부분만 인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번에 쉬지 않고 길게 읽어내는 걸 보면서, 아이들 스스로가 텍스트를 더 잘 인식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독해력이 상승하고 글을 빠르게 이해하려면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

 

띄엄띄엄 읽기와 한번에 읽기

토요일 한국어 수업이 가끔 지칠 때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배우는 점이 많다. 그리고 오늘처럼 아이들이 훌쩍 성장한 걸 보니 뿌듯하다. 역시 한국어 수업은 계속해야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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