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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한국어수업

봄비가 내리는 날, 예감의 인과관계

by 밀리멜리 2022.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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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한국어 수업 시간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벌써 '아몬드' 책을 반이나 읽었네! 오늘 읽었던 부분에서 제일 인상깊은 부분은 뭐야?"

"저는 비오는 부분이요."

"오! 그 부분 한번 읽어 줄래?"

 

"빗줄기가 창문에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봄비다. 엄마는 비를 좋아했다. 비 냄새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빗소릴 들을 수도, 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오, 정말 좋다."

"네. 이거 하이라이트했는데, 왜 했냐면요, 제가 이 부분을 학교 끝나고 버스 안에서 읽었거든요. 근데 그때도 마침 비가 내리고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이어폰으로 음악 듣고 있어서 빗소리는 안났지만, 그래도 봄비니까 딱 맞아 떨어져서 좋았어요.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코로나 걸렸다가 나았거든요. 몸은 다 나았는데 아직도 냄새랑 맛은 잘 못 느껴요. 그래서 봄비 냄새가 안 나서 아쉬워요."

"저런! 아직 후유증이 남아있구나."

"네, 그래도 이제 조금씩 돌아오긴 해요."

"다행이네. 회복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선생님은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밑줄을 쳤어."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예감이라는 게 ‘그냥 문득 느껴지는’ 건 아니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은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조건과 결과로 나뉘어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무의식적으로 결과를 예측하게 된다. 그러니까 예감이란, 사실은 매우 인과적인 데이터다. 과일을 믹서에 갈면 주스가 될 것을 아는 것처럼. 남자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나에게 그런 ‘예감’을 주었다.

 

"우리가 살다 보면 가끔씩 예감이라는 걸 느낄 때가 있잖아. 뭔가 걱정하고 있는 일이 있거나,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을 때, 뭐 그런게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문득 문득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다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

 

아이들이 마이크는 음소거로 해놓고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입모양이 움직이며 뭐라 뭐라 말 하는데 들리지가 않는다.

 

"마이크 꺼져 있다. 켜고 말해 봐."

"앗, 꺼져 있었네요. 진짜 있어요! 그런 적!"

"어떨 때?"

"음, 음... 지금 막 말하려니 생각 안나요. 근데 진짜 예감 맞은 적 있어요!"

"어, 저는 숙제 많이 안내줬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오늘은 숙제 많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 적 있거든요? 그런 날은 꼭 숙제가 많아요."

"맞아. 걱정하는 일은 가끔씩 현실로 이루어지더라. 또 다른 친구는?"

 

숙제가 안 많으면 좋겠는데...

 

"저는 일상생활보다도 특히 책을 읽을 때 그래요. 책을 읽다 보면 '어, 이 부분 이상한데? 앞으로 이렇게 될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 꼭 그런 일이 벌어져요."

"책을 읽는 감이 좋네! 또 있어?"

 

"저는 어느 날 멋부리고 나간 적이 있거든요. 크롭탑에 힐도 신고. 그런 날에 아울렛 매장에 가려는데 옛날 친구를 만나면 이상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진짜로 딱 매장에서 만난 거예요! 으아... 거짓말 아니예요! 진짜! 진짜! 어떻게 그렇게 만났는지!"

"그랬구나. 이 친구하고 무슨 인연이 있어?"

"음, 사실 좀 사귀었다가 몇 달 전에 헤어졌어요."

"하하하, 그러면 어색했겠네. 

 

예전 연인을 만날 것 같은 예감?

 

"다들 재밌는 의견 고마워. 이 책에서는 예감이 인과관계의 데이터가 쌓인 거라고 하네. 인과 관계가 무슨 뜻인지 알아?"

"아니요."

"인과 관계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는 뜻이야.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생긴다는 뜻이지. Cause와 Effect. 우리 무의식은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경험 데이터를 쌓아나가고 그 관계를 연결해놓는 모양이야. 예를 들어 우리 친구가 이전에 남자친구를 사귀었을 때 자주 예쁜 옷을 입었겠지?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도 오랜만에 예쁜 옷을 입었는데 그전까지 무의식에 쌓인 데이터가 예전 남자친구를 우연히 만날지도 모르겠다고 알려준 모양이야. 뭐, 이 책에 따르면 그렇다는 거지!"

"아, 진짜! 남자친구 아니예요!!!! 그냥 잠깐 만난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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