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업을 하다 연습과 노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감정을 느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데요? 타고난 머리의 문제라면요. 엄마가 시켜서 매일 아몬드도 먹었지만 아무 소용없었어요.
- 음, 글쎄. 아몬드를 먹는 대신 자극을 주는 건 조금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뇌라는 놈은 생각보다 멍청하거든.
편도체가 작게 태어났지만 노력을 통해 가짜 감정이라도 자꾸자꾸 만들다 보면 뇌가 그걸 진짜 감정으로 인식할지도 모르는 게 심 박사의 말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게 조금은 쉬워질지도 모른다고.
- 예를 들어 주마.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금메달 스케이터가 될 순 없겠지. 타고난 음치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불러 박수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연습을 하면,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절 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라 한계란다.
아몬드. 손원평. 창비
"이 이야기가 납득이 가지? 우리 친구들은 연습해서 잘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가 있어? 물론 운동이나 공부, 그런 건 학교 다니면서 매일 하고 있지만 특별히 혼자서 연습해서 잘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즉흥적으로 이런 두루뭉술한 질문을 던지는 걸 좋아한다. 사실 나조차도 갑자기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갑자기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그런데 수업을 진행하며 깨달은 게 있다. 아무리 애매한 질문이어도 잠깐의 침묵을 참고 기다리면 아이들이 근사한 대답을 생각해 낸다는 것이다.
20초 정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질문을 던지자 한 아이가 용감하게 말한다.
"저는 친구를 사귈 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잘 구별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오? 그렇구나. 무슨 의미야?"
"그러니까... 저는 사람들이 다 좋고 친한 줄 알았는데, 어떤 친구들은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고, 어떤 친구들은 정말 저랑 친해지니까요. 저를 정말 아껴주고, 마음의 친구가 되어주고. 처음에 만났을 때 좋은 친구를 잘 알아보고 싶어요."
"와, 정말 좋은 생각이네. 처음 만났을 때 누구나 타인의 마음을 알기 어려운데, 그걸 알고 싶다니 꽤 욕심이 많은데? 그럼 어떤 친구가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음, 만약에 제가 슬플 때 함께 슬퍼해주는 친구였으면 좋겠어요. 함께 이야기할 때 마음을 잘 들어주고, 서로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거요. 서로 진심으로 챙겨주고 그런 친구가 좋은 친구죠."
"의견 고마워. 또 다른 친구는?"
"저는 말을 더 잘 하고 싶어요. 친구들끼리라든지,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때든지 둘 다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하면 좀 긴장하는 것 같아요. 영어나 한국어는 괜찮은데 특히 프랑스어로 이야기할 때 천천히 이야기해야 하니까 상대방이 답답해할까 봐 좀 마음이 급해져요. 그래서 말을 잘 하고 싶어요."
"선생님도 똑같은 고민을 해서 공감이 간다.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알아듣지 못할 때도 많거든. 그럴 때 상대방이 답답해하고, 이야기 못한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되니?"
"좀 그런 걱정이 있어요."
"나도 그래. 그럴 때 그냥 아예 '천천히 말할게.'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시작하면 훨씬 마음이 편해. 그런 말을 들으면 상대방도 여유로워지거든. 같이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
"저는 한국어로 말을 잘하고 싶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음... 한국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텐데, 제가 한국어가 서투르니까 항상 저한테 한국어 잘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그런 말 그만 듣고 싶어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잔소리는 그만 듣고, 칭찬 듣고 싶은 거구나!"
"네, 맞아요."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국어가 있는 세상에서만 살아오셨기 때문에 네가 겪는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어. 너는 지금 영어하고 프랑스어만 있는 곳에 살고 있잖아. 그 세상에서 한국어를 한다는 건 확실히 더 어려운 일이야. 그런데 지금 너를 봐. 얼마나 많이 발전했어? 말도 차분하게 하고, 하고 싶은 말은 하잖아. 네가 얼마나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인지 잘 알아. 너 한국어 정말 잘해!"
학생이 부끄러운지 배시시 웃는다. 정말 잘해서 잘한다고 이야기해준 것인데,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평소에 더 칭찬을 잘해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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