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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한국어수업

나는 뭘 잘하고 싶을까? - 연습과 기다림, 칭찬

by 밀리멜리 202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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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업을 하다 연습과 노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감정을 느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데요? 타고난 머리의 문제라면요. 엄마가 시켜서 매일 아몬드도 먹었지만 아무 소용없었어요.
- 음, 글쎄. 아몬드를 먹는 대신 자극을 주는 건 조금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뇌라는 놈은 생각보다 멍청하거든. 

편도체가 작게 태어났지만 노력을 통해 가짜 감정이라도 자꾸자꾸 만들다 보면 뇌가 그걸 진짜 감정으로 인식할지도 모르는 게 심 박사의 말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게 조금은 쉬워질지도 모른다고.

- 예를 들어 주마.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금메달 스케이터가 될 순 없겠지. 타고난 음치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불러 박수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연습을 하면,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절 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라 한계란다.

아몬드. 손원평. 창비

 

"이 이야기가 납득이 가지? 우리 친구들은 연습해서 잘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가 있어? 물론 운동이나 공부, 그런 건 학교 다니면서 매일 하고 있지만 특별히 혼자서 연습해서 잘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즉흥적으로 이런 두루뭉술한 질문을 던지는 걸 좋아한다. 사실 나조차도 갑자기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갑자기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그런데 수업을 진행하며 깨달은 게 있다. 아무리 애매한 질문이어도 잠깐의 침묵을 참고 기다리면 아이들이 근사한 대답을 생각해 낸다는 것이다. 

 

20초 정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질문을 던지자 한 아이가 용감하게 말한다.

 

"저는 친구를 사귈 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잘 구별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오? 그렇구나. 무슨 의미야?"

 

좋은 친구를 알아보는 법

"그러니까... 저는 사람들이  좋고 친한  알았는데, 어떤 친구들은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고, 어떤 친구들은 정말 저랑 친해지니까요. 저를 정말 아껴주고, 마음의 친구가 되어주고. 처음에 만났을  좋은 친구를  알아보고 싶어요."

 

"와, 정말 좋은 생각이네. 처음 만났을 때 누구나 타인의 마음을 알기 어려운데, 그걸 알고 싶다니 꽤 욕심이 많은데? 그럼 어떤 친구가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음, 만약에 제가 슬플 때 함께 슬퍼해주는 친구였으면 좋겠어요. 함께 이야기할 때 마음을 잘 들어주고, 서로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거요. 서로 진심으로 챙겨주고 그런 친구가 좋은 친구죠."

 

"의견 고마워. 또 다른 친구는?"

 

"저는 말을 하고 싶어요. 친구들끼리라든지,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때든지 둘 다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하면 긴장하는 같아요. 영어나 한국어는 괜찮은데 특히 프랑스어로 이야기할 천천히 이야기해야 하니까 상대방이 답답해할까 봐 마음이 급해져요. 그래서 말을 하고 싶어요."

 

말을 잘하고 싶어요

"선생님도 똑같은 고민을 해서 공감이 간다.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알아듣지 못할 때도 많거든. 그럴 때 상대방이 답답해하고, 이야기 못한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되니?"

 

"좀 그런 걱정이 있어요."

 

"나도 그래. 그럴 때 그냥 아예 '천천히 말할게.'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시작하면 훨씬 마음이 편해. 그런 말을 들으면 상대방도 여유로워지거든. 같이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

 

"저는 한국어로 말을 잘하고 싶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음... 한국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텐데, 제가 한국어가 서투르니까 항상 저한테 한국어 잘해야 한다 말하거든요. 그런 말 그만 듣고 싶어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잔소리는 그만 듣고, 칭찬 듣고 싶은 거구나!"

 

"네, 맞아요."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국어가 있는 세상에서만 살아오셨기 때문에 네가 겪는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어. 너는 지금 영어하고 프랑스어만 있는 곳에 살고 있잖아. 그 세상에서 한국어를 한다는 건 확실히 더 어려운 일이야. 그런데 지금 너를 봐. 얼마나 많이 발전했어? 말도 차분하게 하고, 하고 싶은 말은 하잖아. 네가 얼마나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인지 잘 알아. 너 한국어 정말 잘해!"

 

학생이 부끄러운지 배시시 웃는다. 정말 잘해서 잘한다고 이야기해준 것인데,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평소에 더 칭찬을 잘해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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