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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한국어수업

사랑이란 뭘까, 그 흔한 말.

by 밀리멜리 2022.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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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랑이라니!

 

사랑?

 

그 시작은 소설 아몬드의 다음 부분을 읽으면서부터였다.

 

텔레비전에서 데뷔 삼 년 만에 처음으로 1위를 한 5인조 걸그룹의 수상 소감을 보고 있던 그 일요일 오후도 그랬다. 짧은 치마에 가슴을 겨우 가린 탑을 입은 내 또래의 여자애들이 부둥켜안고 방방 뛰었다. 리더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의 매니저와 사장, 기획사 직원들과 스타일리스트, 팬클럽의 이름을 달달 외운 듯 속사포로 뱉어 내더니 울먹이며 익숙한 대사를 읊었다.

-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해요. 아름다운 밤입니다!

가요 프로를 즐겨 보던 엄마 덕에 수없이 봐 온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의문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저렇게 흔하게 쓰여도 되는걸까.

- 아몬드, 손원평. 창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사랑이 정말 흔히 쓰이는 말인 것 같아?"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원래 사랑이란 건 정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요즘은... 그냥 너무 쉽게 쓰는 것 같아요. 감정 없이 말로만, 그냥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그런 거 같아요. 그냥 말로만 사랑한다고 쓰고. 가짜 사랑이 많은 것 같아요."

 

"가짜 사랑이 뭘까? 어떨 때 그런 걸 느껴?"

 

"음... 친구들이 남자친구 사귀면서 사랑한다고들 하는데, 제가 보기엔 진짜 사랑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흔한 말, 사랑

 

"그랬구나. 그럼 우리 다같이 이야기해보자. 사랑이란 게 뭘까?"

 

너무 막막한 질문에 모두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하지만 얼마간 생각 끝에 다들 각자의 답을 내놓았다.

 

"근데 사랑이란 건... 음, 상대방이랑 함께 하고 싶은 것 아닐까요? 그리고, 같이 무언가를 할 때 기쁜 거. 그게 사랑인 것 같아요."

"연인간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친구간의 사랑도 사랑이잖아요.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사랑이고요. 너무 의미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사랑한다면 존중해 주는 거 아닐까요? 함께 있어도 좋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싫어질 수도 있잖아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땐 그렇게 해주고... 아무튼 상대방이 원하는 걸 존중해주는 게 사랑인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사랑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랑을 못 느끼겠어요."

"왜 그렇게 느껴?"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진 이후로는... 그냥 사랑이라는 게 다 허무한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사랑이 깨지고...

 

"어휴, 그랬구나. 한 사람이랑 사귀었다가 헤어지니 마음이 어때? 좋은 경험이 아니었던 것 같아?"

"글쎄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긴 한데... 아이,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제 사랑 안 할거예요."

"그랬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구나. 선생님은 너희가 예전에 우정에 대해서 말할 때 그 말이 많이 생각났어. 누가 얘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진정한 친구라면 나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적 있지?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그 말이 많이 생각났어."

 

실제로는 '판단'이라는 한국어가 어려워서 "they would not judge me."라고 영어로 말했지만, 아이들도 그 수업이 생각나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나는 그게 사랑에도 통한다고 생각해. 사랑한다면, 상대방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는 것 같아.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는 거지. 연인도 그렇고 친구도 그래. 특히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더 그렇지? 부모님은 우리가 착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예뻐서, 혹은 뭔가를 잘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야. 좋다/나쁘다를 아예 생각하지 않지. 물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 위해 조언을 해 주시지만, 우리 자체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잖아. 그냥 우리 그 자체니까 사랑하는 거지. 아마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사랑은 의미가 너무 많아서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학생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야기를 나눠도 다 이야기하지 못한 뭔가가 남아있는 느낌이다. 오늘 수업을 끝마치며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했는데, 아마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수업시간 내내 김동률의 '사랑한다는 말'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는데, 한국 옛날노래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한번 소개해 주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fY08euV7raY

 

 

김동률 - 사랑이라는 말

 

첨으로 사랑한다 말하던 날
살며시 농담처럼 흘리던 말
못 알아들은 걸까
딴청을 피는 걸까
괜히 어색해진 나를 보며 웃던 짖궃은 너

넌지시 나의 맘을 열었던 날
친구의 얘기처럼 돌려 한 말
알면서 그런 건지
날 놀리려는 건지
정말 멋진 친굴 뒀노라며 샐쭉 토라진 너

사랑한다는 말 내겐 그렇게 쉽지 않은 말
"사랑해요" 너무 흔해서 하기 싫은 말
하지만 나도 모르게 늘 혼자있을 땐
항상 내 입에서 맴도는 그말
사랑한다는 말 내겐 눈으로 하고 싶은 말
"사랑해"난 맘으로 하고 싶은 말
나 아끼고 아껴서 너에게만 하고 싶은 그 말

시처럼 읊어 볼까
편지로 적어 볼까
그냥 너의 얼굴 그려놓고 끝내 못하는 말

사랑한다는 말 내겐 그렇게 쉽지 않은 말
"사랑해요" 너무 흔해서 하기 싫은 말
하지만 나도 모르게 늘 혼자있을 땐
항상 내 입에서 맴도는 그말
사랑한다는 말 내겐 눈으로 하고 싶은 말
"사랑해"난 맘으로 하고 싶은 말

언제나 이렇게 너에게 귀기울이면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말
꼭 너에게만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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