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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한국어수업

소설을 친구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점

by 밀리멜리 2022.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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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어 수업에서는 계속해서 소설 '아몬드'를 읽었다. 아이들과 함께 밑줄 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가 놓친 참신한 아이디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설 아몬드에 '곤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곤이는 어릴 때 놀이동산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 미아가 되고, 이후 낯선 부부 밑에서 자라다가 아동 보호시설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도 입양이 되었다가 파양이 되고, 이런저런 사고를 쳐서 소년원에도 들락날락거렸다.  

 

곤이의 부모는 아이를 찾을 거라는 희망을 놓아버렸고,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13년이 지난 후에야 시설에서 연락을 받고 곤이의 아버지, 윤 교수는 아들 곤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곤이는 윤 교수가 기대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들락날락하고, 학교에서도 주인공 선윤재를 폭행하고 정학을 맞는다.

 

며칠 뒤, 나와 곤이는 피자집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곤이의 눈빛은 더 이상 이글거리지 않았다. 옆에 윤 교수가 앉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곤이의 말썽을 전해 들은 윤 교수는 곤이에게 처음으로 매질을 했다고 한다. 윤 교수는 신사였기 때문에 고작해야 움켜쥔 컵을 벽에 내던지고 회초리를 들어 종아리를 몇 차례 때린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건 평소 그가 지켜오던 '지식인'이라는 자기 이미지에 오점으로 남았고, 원체도 어색했던 부자 관계는 더 멀어졌다.

십몇 년만에 만난 진짜 아빠에게 매를 맞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서로를 더 잘 알거나 친해지기도 전에 말이다.

 

학생이 물었다. 

 

A: "선생님, 이해가 안 가요. 곤이 아빠는 왜 곤이에게 화가 난 거예요?"

나: "오, 좋은 질문이야. 왜 화가 났을까? 생각해 보자."

A: "곤이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아들이잖아요.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나: "그게 정상이겠지. 그렇지만 왜 그럴까?"

B: "아들이 깡패짓을 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A: "흐음, 그게 다인가...?"

나: "곤이 아빠가 바로 윤 교수지? 윤 교수가 왜 화났는지 알려면 윤 교수에 대해 알아야겠지. 바로 다음 부분에 윤 교수에 대한 설명이 나오네."

 

윤 교수는 투박한 사람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평생 지켜온 윤 교수는, 갑작스레 돌아온 자신의 피붙이가 그런 신조에 철저히 위배되는 짓을 일삼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곤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도,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이 '이런 모양'으로 나타난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손원평, <아몬드>. 창비.

 

"이걸 보니 윤 교수는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인 걸 알 수 있네. 윤 교수를 설명할 때 지식인이나 엘리트, 교양이라는 말이 예전에도 나왔지? 남 앞에서 점잖고 예의를 지키는 걸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아들은 전혀 자기의 기대와는 다르지. 그래서 분노가 컸다고 하네."

"흐음, 물론 아들이 폭력을 저질렀으니 이해는 가요. 그치만 곤이 아빠는 십몇년이나 함께 있지 않았으면서 말썽 저지를 때만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리려는 건 좀 그래요. 그런데, 그러면 곤이는 왜 그렇게 화가 나서 다른 사람을 때리고 그럴까요?"

"오오, 진짜 좋은 지적이다. 읽으면서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인데, 한번 답을 찾아볼까?"

"곤이는 공격적이기도 하지만 욕을 진짜 많이 해요."

"사실 곤이가 파양되고 보호시설에 가고 그런 건 곤이 잘못이 아니잖아요. 사실 자신을 찾지 않은 아빠가 미운 걸 텐데, 아빠한테 밉다고 할 수 없으니 욕을 하고 다른 친구에게 공격적이 된 것 같아요."

"우와... 그럴 수 있겠다. 통찰력이 좋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생각치 못했던 내용이다. '곤이'라는 캐릭터는 첫 등장부터 공격적이며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고, 말썽에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왜 곤이는 공격적인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신을 버린 아빠에 대한 미움을 직접 아빠에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니...! 그래서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거라니!

 

이 책에는 그런 말이 직접적으로 써 있진 않지만, 캐릭터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정말 대단하다. 아이들에게 오히려 내가 배우는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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