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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

나의 고베 여행기 - 낯선 온천마을에서 느낀 당황스러움

by 밀리멜리 202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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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와 헤어지고 나서 이제는 푹 쉬러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온천마을이라...?

온천마을에 많은 목조건물

이때는 벌써 해가 어둑어둑하게 질 무렵이었고, 노란 조명을 켜 둔 예쁜 목조건물이 많았다. 다 료칸이나 온천이 포함된 숙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역 앞에는 엄청나게 많은 버스와 봉고차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료칸에서 제공하는 송영 서비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 계획도 없이 털렁털렁 이곳을 방문했기 때문에, 료칸에 갈 수는 없었다. 인기 있는 곳을 가려면 몇 달 전, 하다 못해 며칠 전에라도 예약해야 한다. 여행 계획 없이 온 대가를 여기서 치르는구나! 이때 료칸을 가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워서 이후로 일본 여행을 한 번 더 했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안내소에 가서 물었다.

 

"예약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온천 있어요?"

 

하니 안내원이 나더러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맞다고 하니 한국어 팜플렛을 주며,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어느 온천에 동그라미를 쳐 주고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팸플릿에 그려진 지도를 따라서 다리를 하나 건너고, 골목길을 돌아 나오니 곧 온천이 보인다. 옆 건물처럼 예쁜 조명이 걸린 멋진 온천이 아니라 다 낡은 공중목욕탕 느낌이다.

 

들어가니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정말 옛날 목욕탕에 온 느낌! 할머니들은 날 보더니 이리로 가면 욕탕이고, 수건을 빌릴 수 있고 등등을 설명해 주었다. 할머니들이 하는 일본어는 특히나 어려워서 거의 못 알아들었다. 그냥 눈치로 알아듣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온천에 들어갔다.

 

욕탕 안에 들어서니 더 낡은 느낌...! 바닥은 콘크리트 맨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벽은 오래된 푸른색 타일이 깔려 있었는데, 그마저도 군데군데 다 떨어져 있었다. 겉모양은 좀 아쉽지만... 온천물은 똑같은 온천물이겠지.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한결 개운했다. 이때 여행은 친구들이랑 빠듯한 예산으로 간 것이라, 숙소도 작은 게스트하우스였어서 여행 내내 공용 샤워실밖에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러다 느긋하게 뜨뜻한 물에 온천욕을 하니 여행 피로가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때 온천욕을 즐길 대로 즐겨야지 하는 마음에 너무 욕탕에 오래 있다가 결국 뜨거운 물 때문에 몸이 새빨개졌다. 온천욕도 좋지만, 이제 또 떠날 때가 되었군...

 

온천욕을 끝마치고 나니 할머니들이 드시던 간식을 함께 나눠먹자며 주셨다. 그 간식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만쥬 같은 식감이었다. 할머니들이 또 뭔가 물었지만 나는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또 고맙다고 웃으며 온천을 떠났다.

 

그리고 지하철역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런? 아무리 가방 속을 뒤져봐도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앗차...! 눈앞이 깜깜해졌다. 지갑 안에 지하철 패스가 들어있는데...! 까딱하다가는 연고 없는 이 온천마을에 돈도 없이, 지하철도 못 타고 갇히게 생겼는걸?

 

여행지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다니...!!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떡하지? 일단 찾아보기야 하겠지만, 만약에 지갑이 없으면? 그 온천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일을 구할 수 있을까? 오사카까지 가는 차비만 있으면, 친구들과 만나서 친구들에게 돈을 좀 빌리면 될 터였다. 아!! 도대체 어디에서 잃어버린 거야, 내 지갑!!! 그 할머니들이 친절했는데... 내가 돈이 없다고 하면 좀 도와주려나?

 

패닉한 상태로 다시 그 온천을 향했다. 과연 할머니들이 아직도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혹시 지갑 보셨나요?"

"응? 지갑을 잃어버렸어?!"

 

하더니 할머니들이 서로에게 찾아보라며, 온천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렇지만 지갑이 나오지 않았다. 

 

"어떡하지, 지갑이 없네. 왔던 길을 잘 찾아봐!"

 

라는 말을 듣고 온천을 다시 나왔다. 갈 곳이 없어 걷다 보니 다시 지하철 역이었다. 무임승차라도 해야 하나? 어차피 지키는 사람도 얼마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까지 하다가 다시 가방을 열어보니 가방 속에 속주머니가 있었다. 과연 그 속주머니 안에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지갑이 있었다. 잘 챙기려고 가장 안쪽 주머니에 넣어놓고는 그걸 까먹고 잃어버렸다고 생난리를 피운 것이다. 호들갑을 떨며 할머니들까지 동원해 온천 구석구석을 찾게 만들고.....

 

하지만 가방 속에 있는 지갑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놓였던지! 그제야 안심이 되고 다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때 경험이 매우 강렬해서 아직도 잊을 수 없는데, 내가 이 이야기를 남친에게 했더니 이런 말을 한다.

 

"정말 너답다. 아주 전형적인 너야."

"왜?"

"너 몬트리올 처음 올 때도 여권 없어졌다고 난리피웠잖아! 알고 보니 가방 안에 있었고!"

"아, 그랬지..."

 

하.... 진짜 이 덜렁대는 성격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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