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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일요일을 보내는 방법과 뺨싸대기 때리기

by 밀리멜리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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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부터 연이어 다섯권짜리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주말 내내 빈둥거렸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둘은 사랑하지만 서로 인연이 없다. 정은 깊지만 인연이 없다는 주제로 어떻게 이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을까?

 

세계관도 꽤나 복잡하다. 둘은 다른 모습으로 만났다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전에 이별하고, 만남과 이별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어휴... 이럴거면 그냥 아예 만나지를 말아라,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둘은 죽음 직전에 가서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러나 저러나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솔직히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예전엔 로맨스나 장르 소설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장르든 독자를 이토록 몰입시키는 힘은 정말 강력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여러 세계를 만들어 내고,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아무튼 누워서 책만 읽었더니 관자놀이가 짜르르 아프다. 편두통은 오랜만에 겪어보는데? 심하지 않지만 계속 거슬려서 타이레놀을 먹을까 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귀찮아져서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면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고 있었는데, 두통이 있으면 스트레칭을 하고 마그네슘을 먹으라는 만화를 보았다. 그렇군... 너무 집에만 누워 있으니 머리가 아프지. 좀 나가서 걸어야겠다.

 

마그네슘 한알을 먹고 느지막히 산책을 나갔다.

 

예쁘구나

여기는 뭔데 이렇게 이쁘게 꾸며놓았는지 잘 모르겠다. 표지판을 보니 '우리는 비록 빌딩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살지만 우리도 자연의 한 일부이다. 이 나무는 생명을 상징한다'라고 쓰여 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카페라면 좋겠다. 이렇게 이쁜 조형물 보면서 커피 한잔 하는 것도 좋겠지. 그런데 그냥 슈퍼마켓이다. 아깝다...

 

여기다 카페 만들어 주라 줘

 

코너를 돌아 나갔더니, 극장 앞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극장 앞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백발이 성성한 분들이 많다. 이곳의 노년층이 일요일을 보내는 방법은 연극이구나. 예술적인 취미다.

 

사람이 하도 많길래 나도 연극을 예매해볼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배우들의 프랑스어를 다 알아들을 수 있을까?

 

연극 제목은 EMBRASSE, 키스라는 뜻이다

인터넷으로 연극 사이트를 뒤져보니 다음주까지 매진이다. Embrasse(키스)라는 제목의 연극. 인기가 많은 연극인지, 시즌이 지났는데도 추가 공연을 한다고 쓰여 있다. 나도 다음주에 한번 볼까 싶어서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사람 구경

 

연극 설명을 보니, 이 연극이 인기 있는 이유가 나온다. 배우들이 뺨 싸대기를 찰싹 때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 소리가 그렇게 찰지다고 한다. 흐음... 뺨싸대기라니! 못알아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싸대기를 때린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남친이 어떤 유튜브 비디오를 보던 게 생각난다. 옆에서 자꾸 짝! 짝! 하면서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중얼중얼 해설 소리도 들리고, 관중들의 우오오오오!! 하는 소리도 들렸다. 도대체 뭘 보길래 저런 시끄러운 소리가 나나 싶었다.

 

"뭐야, 뭐길래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가 나?"

"아, 미안 미안. 이거 볼래? 러시아 아저씨들이 뺨 싸대기 때리는 거야."

"뭐? 그런 짓을 왜 해?"

"이래 뵈도 러시아에서는 이게 스포츠래. 해설진도 있고, 심판도 있고, 관중도 있다니까."

 

러시아의 싸대기 대회. 실제로 있다!!

무섭게 생긴 러시아 근육질 아저씨들이 정말 차례로 싸대기를 때린다.

 

왓...... 이게 뭐야? 

 

러시아어라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서로 한차례씩 뺨을 때린다. 강력싸대기를 맞고도 나가떨어지지 않으면 이기는 컨테스트.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근데 보다 보면 찰싹 소리에 넋을 잃고 보게 된다. 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팔근육만 우락부락하게 키운 불곰국 러시아 아저씨들이 한가득이다. 

 

혹시 보고 싶으시다면 유튜브에 "Russia slap contest"라고 검색하면 된다.

 

한국 아침드라마의 김치 싸대기든, 러시아의 무지막지한 싸대기 대회든, 프랑스어 연극의 예술적인 싸대기든, 문화와 국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싸대기 장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

 

김치 싸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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