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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못알아듣는 프랑스어 연극을 본 후기

by 밀리멜리 202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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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극장 앞에 사람이 바글바글하길래, 좋은 연극인가 싶어서 예매를 했다. 하지만 프랑스어로 하는 연극은 처음이라,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이 되는데...

 

참고 글: 일요일을 보내는 방법과 뺨싸대기 때리기

 

일요일을 보내는 방법과 뺨싸대기 때리기

금요일 밤부터 연이어 다섯권짜리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주말 내내 빈둥거렸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둘은 사랑하지만 서로 인연이 없다. 정은 깊지만 인연이 없다는 주제로 어떻게 이렇게 긴

milymely.tistory.com

 

아무튼 이것도 좋은 경험이겠다 싶어서 가보기로 했다.

 

극장 가는 길

 

도착! 갈색 건물이 극장이다

오늘은 연극 EMBARASSE의 막공연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저번보다 더 많은 것 같다.

 

길게 줄을 선 사람들
극장 떼아트 뒤 누보 몽드

떼아트 뒤 누보 몽드(Théâtre du nouveau monde)는 신세계 극장이란 뜻이다. 

 

엄청나게 긴 줄

 

맨 뒤로 가서 줄을 서니 극장 직원이 안내를 한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ㅠㅠ

 

"빠떼~ 빠떼~? 빠떼?"

 

빠떼가 무슨 뜻이지? 고기 파이를 빠떼(pâté)라고 하는데... 설마 나보고 고기파이 먹냐고 묻는 건 아닐 테고...

그 직원은 줄 선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빠떼~?"라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물었다.

 

"빠떼가 뭐예요?"

"오, 발코니 자리가 있고 1층 자리(빠떼)가 있어요. 제가 표 봐드릴게요."

 

알고 보니 빠떼는 par terre, 지상층이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한 단어씩 배워가는 거지 뭐...

 

"발코니 자리네요. 다른 쪽 입구로 입장하세요~"

 

하길래 건물 옆쪽으로 돌아갔다.

 

여기는 줄이 좀 더 적군!
백신여권 보여주세요~

백신 여권을 보여주고 곧 극장에 들어갔다. 줄이 별로 없어서 다행!

 

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입장하자마자 마스크를 바꿔 끼라고 파란 일회용 마스크를 나눠준다.

 

내껀 한국에서 가져온 KF94인데... 내꺼가 더 좋은데!!! 버리고 다시 갈아 쓰기 좀 아깝네. 

 

이곳에서는 KF94처럼 질 좋고 튼튼한 마스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층 자리
1층자리 = 빠떼자리

좀 전에 직원이 그렇게 불러재꼈던 빠떼~가 이 자리이다. 

 

내 자리는 어디인가...

발코니 층에 와서 내 자리를 찾았는데, 아무래도 내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앉아있으면 좌석번호가 보이지 않아서 직원을 불러 이야기했다.

 

"제 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요. K11인데요."

"표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오늘 날짜가 맞나요?"

 

직원은 내 표를 확인하더니 무전기에 대고 뭐라뭐라 한다. 그리고는 내 자리 K11에 앉은 사람에게 말했다.

 

"마담, 표 좀 보여주시겠어요? 흠, 이 자리가 아니네요. 저쪽으로 옮겨주시겠습니까?"

 

직원이 도와줘서 겨우 자리를 찾았다. 다른 사람이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아도 직접 말하기 뭐했는데, 직원에게 말하니 다행이다.

 

연극 시작

 

연극이 시작했다. 연극 제목은 키스.

 

웹사이트 설명에는 뺨싸대기로 시작한다고 했는데, 뺨싸대기 장면이 없었다. 

 

하긴 이 연극이 상연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배우들이 그때마다 뺨을 맞으면 한 달 내내 맞아야 하니 고역스러울 것 같다. 뺨싸대기 장면은 어깨를 팡 치고 지나가는 장면으로 대체된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나는 20%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딱히 어려운 말을 쓰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연극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사람들이 와하하하하 웃는데 왜 웃는지 이해가 안 가서... 사실 좀 졸았다 😴

 

그래도 대충 짐작해본 내용은 이렇다.

 

연극 제목은 키스

엄마와 아들이 의상실을 운영하는데, 엄마는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다. 길가다가 멀쩡한 사람을 한 대 쳐서 경찰에게 체포된다. 체포되고 경찰서에서 조서를 쓰면서도 엄마는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막말을 한다. (엄마의 대사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웃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아무튼 누군가를 비아냥대는 말이라는 것 정도만 이해했다.)

 

엄마의 이런 불안정한 성격 때문에 심약한 아들은 괴로워한다. 사고뭉치 엄마의 뒷수습을 하러 다니면서 경찰관과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경찰관이 독백으로 "그가 나에게 키스했어."라는 말을 한다.

 

경찰관과 피의자 아들이 사랑하는 사이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 아들은 엄마가 때린 여자하고도 키스를 하고, 지나가던 사람하고도 키스를 한다. 알고 보니, 이 아들은 엄마가 난장판을 칠 때마다 엄마의 행동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키스를 하고 뒷수습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제목이 키스였다. 사고 뒷수습을 키스로 때우는(?) 남자.

 

무대인사

가운데 심약해 보이는 청년이 사고를 키스로 뒷수습하는 주인공, 바로 왼쪽이 성질 불같은 엄마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키스를 당한(?) 사람들. 참고로, 엄마 역할을 한 배우의 카리스마가 엄청나서 제일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다. 웃긴 장면에서 웃질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아마도 연극은 나중에 나중에 좀 더 프랑스어가 더 익숙해지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좋은 경험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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