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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

긴장했던 날, 면접 앞두고 꾼 지난밤 꿈 이야기

by 밀리멜리 2021.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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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척집에 하룻밤 놀러 왔다. 사방이 어두컴컴했지만 어스름하게 푸른빛이 보이는 이른 새벽이었다. 창밖으로 마당을 살펴보니, 상하의 모두 새까만 옷을 입고, 역시 검은 비니를 쓴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 수상한 사람을 몰래 지켜봤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미친 거 아냐! 나는 무섭기도 하고 당황해서 그 자리에 바로 누워서 자는 척을 했다. 왜 자는 척을 하면 그 사람이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 사람이 집안을 둘러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내 쪽으로 오는 게 느껴졌다. 

 

"야, 일어나 너 안 자는 거 다 알아."

 

나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속으로 '아 망했네 결국 들켰어' 하고는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보니, 이 사람은 내 친구였다. 

 

"아, 뭐야. 깜짝 놀랐잖아! 이렇게 들어오면 어떡해!"

"일단 밖으로 나와. 할 말 있어."

 

다행히 알고보니 친구였다

 

나는 대충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 새벽이라 조금 쌀쌀했다.

 

"뭔데?"

"나랑 알바 하나 같이 하자. 책 배달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책 배달? 그거 하자고 새벽에 날 깨운 거야?"

"너 어차피 안 자고 있었잖아. 빨랑 가자."

 

나는 별 생각 없이 친구를 따라나섰다. 버스를 타고 한참 가다가, 익숙한 건물이 나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그 친구가 말했다.

 

이상한 통로

 

"우리 가는 곳은 엘리베이터로 못 가. 다른 통로로 가야 해."

"그래? 그쪽으로 가자, 그럼."

 

친구는 건물 내부를 빙 돌아 관계자 출입금지 구역으로 갔다. 그 안에는 페인트칠도 하지 않은 콘크리트 벽이 있었고, 사다리를 타고 좁은 통로를 통해 위로 올라가야 했다. 한참 동안을 낑낑거리며 올라갔다.

 

도착하니 커다란 수영장 같은 원형 풀이 있었다.

 

"여기야?"

"아니, 이 풀장에서 잠수해서 안으로 들어가야 해."

"뭐?! 나 수영 못해. 잠수도 못하는데?"

"괜찮아, 들어가는 거 쉬워."

 

하고 그 친구는 풍덩 수영장에 빠져버렸다. 위에서 보니 수영장 바닥 중앙에 더 깊은 수로가 있었고, 친구는 겁도 없이 그 수로로 잠수해서 들어갔다.

 

난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다가 별 수 없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수해서 따라 들어갔다. 막상 수영해보니 비밀통로 안으로 잠수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원형 풀장 안에 비밀 통로가 있었다

 

수로를 빠져나오니 어느 화려하고 휘황찬란하게 금색으로 장식한 방이 나왔다.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키가 작고 대머리에 흰색 그리스식 토가 전통옷을 입은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책 배달을 하러 온 거면, 서점으로 가서 이 책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면 돼."

 

하고 책 제목이 적힌 쪽지를 주었다.

 

무척 화려했던 방

 

쪽지를 가지고, 대머리 아저씨가 가르치는 출구를 통해 나왔다. 밖에서 보니, 이 건물은 내가 수영장을 통해 들어왔던 건물과 형태는 똑같지만 색깔이 달랐다. 들어올 때는 회색이었지만 지금은 건물 외관이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나는 그게 매우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서점을 찾아 나섰다.

 

서점은 무척 멀리 있었다. 산 하나를 넘어가야 서점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산길이었다. 이 산은 이상한 힘이 있어서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힘이 내 몸을 짓눌러 왔다. 중력이 너무 세서 그냥 쓰러져서 누워 있고만 싶었다. 그렇지만 걸어야 해... 한 걸음 한 걸음 떼기도 힘들었고, 어깨와 목으로 엄청난 짐을 짊어진 것처럼 뭔가 꽉 누르는 느낌이 났다. 

 

"아, 이래서 책 몇 권 가져오는데도 알바가 필요한 거구나!"

 

이렇게 혼잣말을 하니 주변에서 모르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중력이 세서 그렇대. 그래도 거의 다 왔으니 힘내."

"고마워. 으... 진짜 무겁다! 걷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치? 알바비라도 많이 주면 좋겠네."

 

거의 기다시피 해서 산을 올랐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 발걸음을 하나씩 옮겨 겨우 서점에 도착했다. 나는 쪽지에 쓰인 책 몇 권을 금방 찾았다. 그 책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아마 다른 알바생들이 책들을 가져간 모양이다.

 

책들을 가방에 넣고, 다시 그 산을 탔다. 뭐가 날 누르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 산은 걷기가 힘들었다. 책 몇권 가방에 넣었다고 숨까지 쉬기 힘들 정도로 중력이 내리눌렀다.

 

그 산을 지나자, 다시 그 휘황찬란한 방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입구로 가니, 선글라스와 검은 양복을 입은 시큐리티 경호원이 서 있었다. 그를 지나쳐 입구로 들어서려고 하니 경호원이 나를 막는다.

 

"입구 말고 담을 타서 들어가세요."

"저 여기 책 배달 온건데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담 올라타서 들어가세요."

"네??"

 

황당했지만, 멀쩡하게 있는 입구를 놔두고 높은 담을 타야 했다. 다른 알바생들도 열심히 담을 오르고 있길래, 나도 따라서 담을 탔다. 담은 그래도 발 디딜 곳이 많아서 수월하게 올라갔지만, 끝까지 올라가니 높이 때문에 무서웠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담벼락에서 건물까지, 꽤 먼 거리를 뛰어야 했다.

 

뛰어야 한다고...?

한참 망설였지만 다른 길이 없어서 그 높은 담벼락에서 건물까지 크게 점프했다.

 

어휴... 살 떨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아까 봤던 화려한 금색 방이 아닌 일본식 다다미가 깔린 방이 나왔다.

 

여긴 어디?

뭔가 잘못 들어온 것 같아서 살금살금 몰래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뒷걸음쳐서 나가려는데,

 

"누구야!!!"

 

하고 초록색 기모노를 입은 사람이 소리쳤다. 나는 좀 겁을 먹고 말했다.

 

"책 배달하러 왔는데요."

"책 배달은 저쪽으로 가세요."

 

하고 샐쭉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 사람이 가르쳐준 곳으로 나오니, 또 다른 방이 나왔다.

 

고요한 명상실

그 방은 명상실이었다. 티베트 승려처럼 차려입은 사람이 네다섯 명이 향을 피우고 싱잉볼을 두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여자가 눈을 뜨고 나와 눈을 마주쳤고, 나는 어색하게 말을 걸었다.

 

"저도 이런 명상에 참여하고 싶은데요."

"오고 싶을 땐 언제든지 오세요. 언제든 환영이에요."

"그러면 좋겠는데, 여기 오는 게 너무 힘들어요. 잠수도 해야 하고, 입구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높은 담벼락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니까요."

"아, 원래 그럴 필요가 없으신 분인데... 여긴 원래 다 당신 거예요. 앞으론 입구에서 이걸 보여주세요. 이 목걸이를 드릴게요."

 

하면서 그 여자는 자기 목에서 붉은 루비가 달린 금목걸이를 빼내더니, 그걸 내 목에 걸어 주었다.

 

"이걸 차고 오면 경호원도 들여보내 줄 거예요."

"고마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제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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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알바비는요?

 

하고 꿈에서 깼다. 이름도 들었는데, 꿈에서 깨니 잊어버렸다.

 

면접을 앞두고 압박감을 느껴서 이런 꿈을 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 침입자가 왔을 때, 잠수해야 할 때, 산을 오르내릴 때, 담벼락에서 뛸 때 모두 비슷한 압박감과 약간의 공포심을 느꼈다. 그래도 꿈이 너무 재밌고 생생해서 남겨놓고 싶다. 그 와중에 살뜰하게 알바비를 챙기려고 했던 나도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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