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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교통카드를 사고 첫 출근 오리엔테이션에 갔다

by 밀리멜리 202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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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첫 출근 날 해야 할 것은 거의 없었다.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듣고 출석체크를 하는 게 끝이었다. 

 

새벽에는 눈이 내렸다가 아침이 되서 기온이 올라가 진눈깨비가 되고, 결국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눈이 철벅철벅하게 녹은 도로를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타고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버스 타다가 잘못 탄 경우가 많아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차라리 눈이 많이 오는 날이 낫지, 이렇게 눈이 다 녹은 날은 걸어다니기가 힘들다. 

 

대중교통카드 발급 기계

 

오랜만에 교통카드를 샀다. 마지막으로 이 카드를 샀을 땐 학생이었는데...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한달에 96.5불을 내야 한다. 한국 돈으로 약 9만원 가량인데 역시 한국보다 대중교통이 비싸다.

 

몬트리올 교통카드

 

춥고 비오는 날 버스 안은 사람들의 입김으로 가득해서 창 밖을 볼 수가 없다. 내 앞자리엔 짧은 숏컷에 초록색으로 염색을 한 어떤 여자가 앉았다. 이곳에서는 초록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사람들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예전엔 초록색이나 핑크색 머리를 보면 눈을 뗄 수 없었는데...

 

사실 지금도 그렇다. 흔하게 볼 수 있어도 앞자리에 이런 사람이 앉으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사람의 초록색 머리와 버스 천장에 크게 쓰인 "버스 기사를 공격하는 것은 범죄입니다"라는 문구를 번갈아 보며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는 곳은 어느 대형병원의 강당이었다. 병원 입구에서 강당을 찾을 수 없어서 두리번두리번거렸다. 비가 너무 와서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던 곳

 

병원에 들어가면 누구나 마스크를 새로 바꿔 써야 한다. 병원 입구에서 경비원이 길다란 집게를 들고 파란색 일회용 마스크를 나눠준다. 내 앞에 있던 어느 금발머리 여자가 경비원에게 물었다.

 

"강당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강당? 연수받으러 오셨어요? 이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그리고 나를 보더니,

 

"당신도 연수받으러 오셨어요? 마스크 갈아끼고 들어가세요."

 

들어가라는 말만 하고 강당이 보이지 않는다. 금발머리 여자가 나에게 묻는다.

 

"강당이 어딘지 아세요?"

"저도 지금 강당을 찾고 있어요."

"나도요. 강당이 어딘지도 말해주지 않고 말이야..."

 

하고 그 여자가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병원 직원에게 물어물어 강당으로 향했다.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것 같은 사람들을 따라가니 금방 강당에 도착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연령대가 다양했다. 20대도 몇몇, 30~40대로 보이는 사람이 가장 많았고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회색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난 사람도 있었다. 흑인도 있고 남미 계통이나 히잡을 쓴 중동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 혼자 동양인이었다. 😲 오늘따라 외롭구만.

 

3분쯤 있다가 아까 그 초록머리 아가씨가 오리엔테이션 장 안으로 들어왔다. 어! 버스안에서 내 앞에 앉은 사람이잖아! 혼자서 내적 친밀감을 다지고 돌아왔다.

 

출석체크를 하고, 강의를 듣고 돌아왔다. 강의는 정말 별 게 없었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잘 쓰고, 기침할 때 팔에다 하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이런 오리엔테이션은 온라인으로 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강의평가를 해달라고 나눠준 종이에는 아무 코멘트 없이 만점을 주었다.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에 이상하게 사람이 별로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나와 어떤 아저씨 한 명, 그리고 머리가 희끗희끗했던 사람만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장에서 봤던 사람인 걸 알아채고 눈이 마주쳐서 살짝 눈인사를 했다.

 

버스가 올 때가 되었는데... 싶어서 구글 지도를 보고 있는데 아저씨가 나에게 말했다.

 

"버스 정류장이 여기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갱들이 다 저기 있어요."

"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알고보니 버스정류장이 바뀌어서 빨간색 임시 간판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버스를 놓치고 한참 기다릴 뻔 했다.

 

아저씨는 사람들을 부를 때 "갱"이라고 불렀다. 정확히 퀘벡 사투리로 표현하면 "레 걍"이라고 했다. 여기서 갱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깡패 갱단 할 때 그 갱이 맞다. 영어에서 온 말이고 그냥 사람들 무리라는 뜻이다. 프랑스 사람들도 이 말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부터 배워야 할 단어들이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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