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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우당탕탕 정신없었던 진짜 첫출근

by 밀리멜리 202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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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어제 오리엔테이션이 끝났건만 오늘 아침까지도 도대체 어디서 일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잉? 일해야 하는데 언제 어디서 일한다는 말이 왜 없지...?

 

메일함을 열어보니 내 상사가 곧 연락할 것이라는 메일 하나와, 출입증 카드가 나왔다고 하는 메일이 있었다. 일단 출입증 카드 메일에는 주소가 적혀 있어서 그걸 먼저 받으러 갔다. 출입증 카드 만드는 장소도 따로 있구나. 이쪽 동네가 정말 예뻤는데 정신이 없어서 사진 찍을 생각도 못했다.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내리는데, 개찰구 출구 여는 방법을 몰라서 헤맸다. 🤣 미치겠다... 왜 지하철에서조차 어리버리한거야...? 😂 못나오고 두리번두리번하고 있으니 지하철역에서 구걸하던 노숙자가 한 마디 한다.

 

"마담! 부뿌베@#$%부똥(버튼)!"

"아, 이 버튼! 감사합니다."

"부부버버모네?"

"네? 뭐라고요?"

"부부버버모네?"

 

노숙자들이 하는 말은 특히 더 알아듣기가 어렵다. '부부버버모네'라고 진짜 그렇게 들렸다. 다시 물어봐도 똑같이 들렸다. '모네(monnaies, 동전)'만 알아들어서 동전 달라는 소리구나 그냥 눈치로 알아들었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건 오랜만인데 나를 도와줬으니 또 안 줄 수가 없다. 지갑에서 1달러 동전을 꺼내 건넸다.

 

"메르씨, 마담."

 

하고 동전을 가져갔다.

 

핸드폰을 꺼내서 구글지도를 보고 방향을 찾아 걷고 있는데, 그 노숙자가 갑자기 자전거에 올라타더니 훌쩍 달리는 것이 아닌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는구나?!

 

내 돈을 받고 자전거 타고 달리는 아저씨

 

잠깐 속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아냐... 자전거 타도 구걸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지.

그나저나 이 꽝꽝 언 눈길 위로 자전거를 타다니. 기인이다! 

 

아무튼 그렇게 카드를 받아가지고 집에 도착했는데, 그래도 일하라는 연락이 없다. 어디서 일하는지 주소도, 연락처도 없어서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슈퍼 가서 장까지 봐왔는데, 그제야 연락이 왔다.

 

"오리엔테이션날이 끝났는데, 왜 일하러 안 와요?"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계약서에 다 주소랑 시간이 다 써 있잖아요."

"네? 주소가 안 쓰여져 있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잠깐 기다리세요. 흠... 정말 없네요. 오류가 있었나 보네요. 지금 주소를 줄테니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리겠어요?"

"어... 지금 출발하면 40분 걸릴 것 같아요."

"그래요. 당신 상사에게 메일에 오류가 있었다고 말해줄게요."

"네, 연락해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렇게 처음 사무실로 가는 날부터 대지각을 했다. 내 탓은 아니지만...

 

사무실에서 생긴 일도 정말 우당탕탕 서투름 백퍼센트였다. 상사를 만나서 인사하고, 이 센터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들었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 인수인계를 해줘야 할 전임자는 그냥 저번주에 바로 떠나버렸다고... 🙄 나는 어떡하라고?

 

사무실 전화가 울려서 받았는데 나를 찾는 전화가 아니었다. 다른 비서를 찾는 전화여서 전화를 바로 돌려줘야 하는데, 전화 돌리는 방법을 몰라서 내용을 쪽지에 써서 직접 전달했다. 그 쪽지를 본 다른 비서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가 1년동안 휴직을 하다 방금 왔는데... 이렇게 쪽지를 주면 어떡해요? 양식에 맞춰서 줘야지. 그리고 이 전화는 나한테 돌렸어야 하는 거잖아요? 일 처음 해봐요?"

"아, 네. 첫날이예요. 그래서 전화번호를 몰라요."

"처음이라구요?"

"네, 오늘 시작했어요."

"해야 할 게 많구만. 일단 이 쪽지는 가져갈게요. 내일 아침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

 

대박. 나에게 업무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생겼다. 다른 부서 사람이지만..?

 

다행히 상사도 동료도 좋은 사람인 듯 하다. 내가 다른 비서에게 한마디 듣고 온 걸 알았는지 '돈 워리~ 돈 워리~'라는 말로 걱정을 덜어주고, 다른사람에게 소개할 때에도 '처음 시작하니 많이 도와주라'는 말을 덧붙였다. 동료도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친절하게 읽을거리를 계속 인쇄해 주었다.

 

문제는 내가 새로운 직원이어서 컴퓨터에 접속할 아이디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이디가 없으니 컴퓨터를 켤 수가 없고 어차피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퇴근하기 30분 전에서야 아이디가 나왔다. 😅 공무원 일은 원래 이렇게 처리되는 모양이다. 뭐 하나를 하려고 해도 꼭 관련부서에 요청해서 빠르면 몇시간, 늦으면 며칠 후에 처리가 되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여러 문서를 읽고 회의에 참석할 사람들 이름을 마커로 쓰는 일만 하고 끝이 났다.

 

일단 새 환경에 부딪히고 나니 긴장은 많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온 신경이 새로 생긴 직장에만 가 있어서 블로그를 쓰는 지금도 이 글이 재밌는지 아닌지 읽을만한지 판단하기도 힘들다. 🤔 재미가 없어도 앞으로 며칠간은 아마 직장에서 생긴 이야기 위주로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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