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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크리스마스 포트럭 파티 - 뭘 가져와서 먹을까?

by 밀리멜리 202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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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프랑스어로 '노엘'이라고 부르는데, 20일쯤에 노엘 맞이 점심 파티를 한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함께하지는 못하고, 4~5명씩 팀을 짜서 파티를 하는데, 나도 초대받아서 기분이 좋다. 참석자 모두 음식을 각자 한가지씩 준비하는 포트럭(potluck) 파티이다.

 

공무원답게(?) 포트럭파티를 준비하는 것도 회의 준비하는 거랑 똑같아서 놀라웠다. 메일로 참석여부를 확인하고, 모두 '예'라고 대답하면 일정표를 공유해 각자 가져올 음식을 적는 방식이다. 😂 

 

쿠바에서 이민 온 이프레엔은 '임페리얼 쿠바 라이스'라는 음식을 가져오기로 했고, 나는 김밥을 적어냈다. 음... 김밥이 제일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점심시간까지 포트럭파티 이야기로 한창 열을 올렸다.

 

"난 디저트 할래. 내가 빵이랑 초콜릿케익 가져올게."

"그래, 그렇게 해. 근데 디저트는 사도 되잖아?"

"아냐. 난 내가 손수 만드는 걸 좋아해서, 만들어 가져올게."

"난 뭘 가져오지?"

"넌 생트-위베에서 푸틴 사오는 거 아냐?"

"에.. 생트-위베는 좀 별로인데. 너, 생트-위베가 뭔지 알아?"

 

마리-크리스틴이 나에게 물었다. 

 

생트-위베 레스토랑

 

"으음... 아니? '생(saint)'자가 들어가니깐 무슨 휴일 아냐?"

"아하하하! 아니야, 아니야. 생트-위베는 레스토랑 체인점이야. 뭐, 그냥저냥 먹기에 좋아."

"아아! 지나가다가 간판 본 적 있다. 이제 기억나네!"

"그치그치? 암튼 고민이네. 빠떼 시누아 만들까? 너, 빠떼 시누아는 뭔지 알아?"

"시누아... 무슨 중국 음식이야?"

 

프랑스어로 '시누아(Chinois)'는 '중국의'라는 뜻이다. 중국 레스토랑은 '레스토랑 시누아', 차이나타운은 '빌 시누아즈'라고 부른다. 시누아가 붙었으니 중국과 관련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사실 중국하고 전혀 관련이 없어. 빠떼 시누아는 뭐냐면, 간단한 음식인데, 가장 밑에다 고기를 쫙 깔고, 양파나 야채를 층층이 올리고, 그담에 옥수수도 올리고 마지막으로 맨 위에 감자를 쫙 올려서 먹는 음식이야."

"오! 맛있을 것 같은데?"

"에... 글쎄, 이게 퀘벡 전통음식이긴 한데, 옛날 가난할 때 먹은 음식이라 그렇게 대단하진 않아. 퀘벡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될 때 만들어진 음식이야. 공사를 하니 중국 이민자들도 많이 와서 함께 만들어 먹은 음식이라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나봐."

"그거 코스트코에 팔지 않아?"

"코스트코에 판다고?! 오, 드디어 이런 것도 마트에서 파는구나!"

 

빠떼 시누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상사인 쟝이 밥을 다 먹고 남은 숟가락을 두드리며 리듬을 탔다. 

 

"쟝! 파티에서 음악 담당 할 건가봐? 그렇게 리듬을 타고."

"나야 원래 파티에서 맨날 스피커 들고 음악 담당하잖아."

"이번엔 스피커가 아니고 숟가락으로 음악 틀 거야?"

 

상사인 쟝은 우리 조직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사람인데, 모두가 쟝에게 반말을 하고 거리낌없이 농담하는 걸 보면 난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다. 😅

 

"퀘벡 전통악기에 숟가락도 있으니까, 한번 잘 연주해 봐."

"오, 정말 좋네. 언제 어디에서나 가져올 수 있는 악기잖아?"

 

마리-크리스틴과 이프레옌이 계속해서 농담을 했는데, 난 이 말이 진짜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안간다. 모를 땐 그냥 웃어... 하하하

 

"전통악기 하니깐 생각나는데, 꼬로느뮤즈도 있잖아. 쟝, 그거 가져와서 연주하는 건 어때?"

"너희들 완전 귀 터질껄."

"너, 꼬로느뮤즈는 뭔지 알아?"

 

마리-크리스틴이 세번째로 나에게 물었다. 대화에서 소외될 뻔 할 때마다 자꾸 챙겨줘서 정말 감동이다. 다행히 꼬로느뮤즈는 프랑스어로 숨은그림찾기 게임을 하다가 알게 된 단어라서 알고 있었다. 판데믹 격리기간동안 숨은그림찾기 게임에 한창 빠졌었는데,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

 

숨은그림찾기의 백파이프(꼬로느뮤즈)

 

"그거 영어로 백파이프 맞지?"

"오, 맞아 맞아! 예전에는 시내 가면 백파이프 소리 자주 들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듣기 힘드네."

 

마리-크리스틴은 정말 말이 빨라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겨우 알아들은 대화가 이 정도이고, 못 알아들은 대화가 더 많다. 어쩔 수 없지, 몇 달 지나면 좀 귀가 더 뚫리지 않을까 싶다. 

 

퇴근하기 직전에 마리-크리스틴이 내 사무실로 와서 초콜릿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누와?"

"뭐라고??"

"!@#@#%$^#*&누와?"

 

정말 '누와'밖에 안들렸다. 내가 누와라고 들은 게 맞다면 누와르 영화 할 때 그 noir, 검은색이란 뜻인데... 초콜릿이 블랙초콜릿이란 뜻인가? 

 

내가 아직도 이해못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마리-크리스틴이 다시 물었다.

 

"음식 알러지 있어?"

"아! 알러지 없어. 고마워. 하나 가져갈게."

"하하, 만약에 알러지 있는데 먹으면 큰일이니까."

 

초콜릿

 

그제서야 마리-크리스틴이 말한 누와가 Noix, 호두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곳에서는 포트럭파티가 아닌 이상 간식이나 음식을 전혀 나눠먹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간식 나눠줄 때 알러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일종의 에티켓인 듯 하다. 

 

아무튼 엄청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캐나다에서 첫 직장을 구한 신입 직원이라고 다들 부둥부둥 챙겨줘서 다행이다. 조직 내에서 유일하게 아시아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친절한지 모르겠지만 다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챙겨줘서 환영받는 느낌이 들었다.

 

퀘벡 사람들이랑 함께 일하니 퀘벡문화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여기 살면서도 솔직히 잘 모르는 게 많았구나 싶다. 음식이나 레스토랑도 특이하지만 직장문화가 제일 놀랍다. 

 

오늘도 쟝은 퇴근시간이 되기 30분전에 신발을 갈아신더니 바로 퇴근해 버렸다.

 

"일찍 가도 되니까 정말 좋네요. 한국에서는 매일매일 야근이었는데."

"여기는 야근하는 일 절대 없으니 걱정 마. 너도 일 끝났으면 20분 전이든 10분 전이든 일찍 가도 돼."

"그래도 된다구요? 난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 일단 적응할 때까지는 딱 퇴근시간에 가려구요."

"원하는 대로 해. 먼저 간다!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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