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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직장 동료에게 말을 놓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by 밀리멜리 2021.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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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거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물어봐!"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 환영한다고 해주면서,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라는 말을 인사처럼 했다. 사양하지 않고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질문공세를 해댔는데, 아직도 배울 게 산더미다.

 

동료직원들은 나를 보고 '이전에는 어디에서 일했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내가 경력직처럼 보이나? 완전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인데... 첫 직장이라고 대답하니 놀라워하며 더 크게 축하를 해주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병원과 복지센터 등을 모두 아우르는 큰 조직이어서, 직원들은 이 조직 내에서 자주 일하는 곳을 바꿔가며 승진하기 때문에 새로 온 사람이어도 경력직이 많다.

 

참! 내가 일하는 곳은 아동복지센터이다. 보호자가 사라진 아이들,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거나 학대받는 아이들 신고가 들어오면 이 센터에서 차례차례 선별과정을 밟아가며 보호시설로 보내는 일을 한다. 복지센터와 보호시설이 가까이 있어서, 퇴근할 때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공무원 일은 지루하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이들을 돕는 일이라 생각하니 보람이 생긴다. 긴장감도 슬슬 사라지고. 첫날엔 바짝 긴장해서 어깨가 너무 굳어 아플 지경이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좀 낫다.

 

그런데 사람 이름이 너무 헷갈린다. 원래 일상생활에서도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매치하지 못하는 타입인데, 지금은 낯선 백인들 얼굴에 생소한 프랑스식 이름까지 더해지니 어렵다.

 

퀘벡에는 특이하게 이름에 -가 붙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쟝과 쟝-밥티스트는 다른 이름이고, 마리, 마리-크리스틴, 크리스틴은 각각 다른 이름이다. 오늘은 크리스틴과 마리-크리스틴을 헷갈려서 실수를 했다. 내일 만나면 다시 이름을 물어봐야 한다.

 

점심시간에는 프랑스라는 이름을 가진 직원이 친절하게 같이 밥을 먹자고 권했다. 붙임성이 좋은 동료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아직도 좀 얼어서 (그리고 프랑스어가 너무 어려워서) 대답만 간간히 하고 맞장구만 치는 수준인데, 그래도 계속 말을 걸어주니 정말 고마웠다. 프랑스는 카페테리아에서 쿠스쿠스와 소시지를 가져왔는데, 너무 맛이 없다며 불평을 했다.

 

"정말 맛이 없다. 내가 6개월 전에 코로나 걸렸었거든. 아직도 미각이 안 돌아왔어."

"아직도? 아직도 미각이 그대로야?"

"응, 진짜 못먹겠다. 미각 잃은 게 최악이야."

"어쩌다 걸렸는지 알아?"

"우리 아들이 걸렸거든. 난 아들이 둘 있는데, 큰아들이랑 나만 걸리고 둘째아들이랑 내 파트너는 안 걸렸더라고. 그때 딱 백신 보급되기 일주일 전이었는데, 운이 없었지."

"그랬구나. 진짜 아깝다, 일주일이라니!"

 

사실 프랑스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보다 아들을 둘이나 낳았는데 결혼을 아직 안해서 남편이 아니라 '파트너'라고 부른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 하지만 퀘벡에서는 결혼 안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알고보니 프랑스는 나보다 나이가 열두 살이나 많았다. 그런데 젊어 보이기도 하고 친근하게 수다를 떨어서 바로 말을 놨다. 이곳에는 퇴직을 앞둔 60대 직원들이 많아서 거의 말을 놓지 못했지만, 열두 살 차이면 반말이 낫다. 말을 높이면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다.

 

프랑스는 다른 5~60대 직원들에게도 말을 놓는다. 그렇다고 나도 놓을 순 없다.

 

말 놓는 이 기준이 정말 애매하다. 퀘벡 문화수업을 들을 때도 누구에게는 반말을 쓰고 누구에게는 존대어를 써야 하는가를 대충 배우긴 했지만, 그래도 애매하다. 일단 말을 놓으라는 말을 할 때까지 다른 직원들에게는 존댓말을 써야겠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어제 나에게 '일 처음 해보냐'고 한마디 꼽을 줬던 다이앤이 제일 많이 나를 도와주었다. 물론 부서가 달라서 한창 더 배워야 하지만. 직설적으로 쏘아대기는 하지만, 뒤끝이 없고 꼼꼼한 사람인 것 같다. 다이앤도 3월이면 곧 퇴직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종일 사무실 찾아 사람들을 만나고 질문공세를 해대니 오늘 일이 끝났다. 내 상사는 끝나기 5분 전부터 빨리 들어가라며 컴퓨터를 끄라고 성화였다. 

 

"오늘 많이 배웠나?"

"음... 한단계 한단계씩 배우고 있어요."

"하하하하! 한단계, 한단계씩, 그게 공무원이지."

 

공무원 일을 하다보니, 선생님이 꽤나 창의적인 직업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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