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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사무실 동료의 쿠바 아바나 이야기

by 밀리멜리 202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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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사무실을 쓰는 이프레옌은 쿠바 출신이다. 나는 말이 적은 편인데 이프레옌은 정말 말이 많아서 좋다. 5년 안에 퇴직을 생각하고 있어서 일주일에 3일은 재택근무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프레옌이 오지 않는 날은 사무실이 썰렁하지만, 이프레옌이 오는 날에는 일을 하다가도 가끔씩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듣게 된다.

 

"쿠바는 작은 섬나라거든. 게다가 공산주의 국가라서 정말 많이 달라."

"그렇겠네요."

"너는 퀘벡에 온 지 3년 됐다고 했지? 난 20년이 됐어. 여기 오고 나서 한국에 가본 적 있어?"

"코로나 전에, 2019년에 한번 갔었죠. 판데믹 이후로는 못 갔어요."

"그렇지, 요즘은 여행가기가 너무 힘드니까. 그런데 난 20년동안 한 번도 간 적이 없어. 내 아들이 거기 있는데도 말이야."

"그럼 20년동안 한번도 아들을 못 본 거예요?"

"응. 마이애미에 친척들은 보러 가긴 하지만, 쿠바는 못 가. 내가 쿠바에 갈 수도 없고 아들이 여기로 올 수도 없어. 다 금지되어 있거든. 쿠바 정부에서 보면 나는 국가를 배신한 사람이니까."

"정말요?"

"민주주의 국가로 나간 사람들은 배신자야. 외국이라고 해 봐야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 정도만 갈 수 있지. 하지만 그것도 엄청나게 비싸서 쿠바 사람들은 사실 섬에 갇힌 거나 다름없어."

"몰랐어요. 그렇게 심각했군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래. 20년 전에 달랑 5달러만 들고 캐나다에 왔어. 내 친척들은 미국 마이애미로 하나씩 하나씩 이주했는데, 나는 여기로 왔고. 아들도 데리고 오려고 했었는데, 시기를 놓쳤더니 결국에 올 수가 없게 됐어."

 

5달러만 들고 난민 자격으로 온 이프레옌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20년 동안이나 가보지 못한 고국을 그리워하는 건 알 수 있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쿠바의 수도 하면 노래 '하바나'부터 먼저 떠오른다. 카밀라 카베요의 '하바나 은나나' 노래하면서 상상했던 낭만적인 하바나가 쿠바 국민들에게는 살기 힘든 나라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쿠바 사람들은 수도를 아바나라고 부르고, 미국식 영어로 부르면 하바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CjNJDNzw8Y 

 

"아바나에 계셨어요?"

"아바나에도 있었고, 여행 가이드로 일했어서 여러 관광지를 잘 알지. 무엇보다도 바다가 정말 예뻐. 혹시 한국드라마 '릴 드 차차차' 봤어?"

 

'릴 드 차차차?' 릴(L'île)은 프랑스어로 섬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최근에 넷플릭스에 나온 '갯마을 차차차'가 프랑스어로는 '릴 드 차차차'인가 보다.

 

"처음 두 편 봤어요!"

"나는 다 봤어. 한국 드라마는 보다 보면 끊을 수가 없단 말이야. 릴 드 차차차, 거기 보면 주인공이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창문으로 바다가 쫙 보이거든. 내가 일하던 곳도 그랬어. 창문으로 바다가 보이고, 정말 그림같은 곳이었지."

"정말 멋있겠네요. 우리 사무실에서는 눈 밖에 안보이는데. 😁"

 

쿠바의 해변

 

"여기는 정말 눈밖에 안보이지! 아무튼, 쿠바에는 정말 예쁜 해안가랑 별장이 많은데... 사실 정말 예쁜 곳들은 쿠바시민들한테 금지되어 있어."

"왜요?"

"다 관광지니까. 외국인만 갈 수 있는 곳들이 많아. 정작 쿠바국민들은 못 가지."

"오히려 본국 사람들이 못간다고요? 공산주의 국가라 금지된 게 많군요."

"그것 뿐만 아니고, 소고기 스테이크도 금지되어 있고, 해산물도 금지되어 있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국민이 해산물을 못 먹는다는게 말이 돼?"

"진짜 안믿겨지네요. 그것도 외국인 관광객은 먹을 수 있고요?"

"해산물은 다 외국인들을 위한 거야. 쿠바 사람들은 다 금지!"

 

이프레옌이 손사래를 쳤다. 

 

"그것 뿐이면 괜찮게, 아들한테 돈을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도 없어."

"왜요?"

"송금하면 국가에서 돈을 거의 다 가져가거든. 관광 수입 다음으로 제일 많은 수입이 뭔지 알아? 바로 송금에서 떼가는 거야."

"그게 국가 수입원이라구요?"

"반 넘게 떼가지."

"으, 정말 너무하네요!"

"그게 공산주의 국가야. 어쩔 수 없지."

 

'하바나'를 부른 쿠바 출신 카밀라 카베요는 나쁜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을 고향 하바나에 빗대어 표현했다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이해가 간다. 비록 사회적 환경은 혹독하지만, 아름다운 해변과 따뜻한 기후가 쿠바 사람들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쿠바는 정말 예쁠 것 같아요. 사진만 봐도 정말 가보고 싶네요."

"한국도 예쁘지 않아? 드라마 보니까 한국 정말 아름답던데."

"예쁘고 아름다운 곳 많아요. 그치만 드라마에서 보는 건 정말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는 거예요. 실제 사는 건 항상 예쁘지만은 않아요!"

"하하하하, 그거야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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